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의동의 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안보강연을 듣는 어르신들. 단체활동 모습과 함께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다양한 사진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최우리 기자
[토요판] 르포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의 대선
박근혜냐 빨갱이냐, 밥이냐 라면이냐
박근혜냐 빨갱이냐, 밥이냐 라면이냐
▶ 여론조사를 보면 60대 이상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율은 항상 60%를 웃돕니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그의 책 <박근혜 스타일 2012>에서 “(이들은) 박정희와 육영수 딸로서 그녀를 지지한다. 새마을운동을 경험하는 등 매우 깊은 감정이입 상태에서 손을 들어준다”고 그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박 후보의 당선을 정열적으로 소망하는 어버이연합 어르신의 투표의지 역시 강렬했습니다.
박정희 향수와 박근혜 지지
가족·친척도 설득하란 독려
“당당하게 이야기하세요
대한민국 정체성 회복을 위해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운영난 대책 임원회의 시간
밥 먹어도 사람이 안 는다 하자
라면을 먹자는 제안이 나왔다
“박근혜 되면 빌딩…” 운운엔
사무총장이 서둘러 말을 끊었다 일본 최대 민방 <티비에스>(TBS)의 여기자가 스탠딩 리포팅을 했다. 그의 뒷배경은 노인 150여명이 주먹을 꼭 쥔 손을 하늘 높이 뻗는 장면이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빨간색 글씨로 적은 피켓을 높이 든 할아버지도, 10m 크기의 모형 로켓을 나르는 할아버지도 모두 얼굴에 주름이 깊었다. 12일 오후 3시, 이날 오전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자 보수·안보 단체인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케이티(KT) 본사 건물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12월 들어 처음 하는 외부행사였다. 어버이연합은 대선을 앞두고 “어르신들의 건강과 선거법 위반행위를 우려”해 행사를 자제해왔지만, 북한의 기습적 로켓 발사 소식에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인 김정은의 사진을 붙인 인형이 빨갛게 타들어가자, 보청기를 낀 한 회원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만족해했다. 또다른 회원은 취재 나온 외신기자에게 다가가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냐고 물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유리하지 않겠냐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듯 돌아섰다. 벽면에도 지갑에도 박정희·육영수 사진… 눈이 내렸던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의동 어버이연합 사무실 안은 바깥 날씨와 달리 열기로 후끈했다. 온풍기가 돌아가고, 주변에 어르신 수십명이 티브이 시사프로그램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 있었다. 사무실 중앙에 놓인 이규일 수석지부장의 책상 위에는 박 후보 쪽 국민소통본부에서 만드는 ‘통통통 통신기사’가, 탁상용 달력에는 12월19일에 ‘18대 대통령선거일’이라고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2011년도 달력이라 그런지 달력 속 12월19일은 월요일이었다. 기자가 다가가 인사하자, 어르신들은 전날 있었던 대통령 후보 3인의 토론회를 본 소감을 앞다퉈 쏟아냈다. 대부분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비난하고 박 후보를 추어올렸다. “박근혜 대표도 많이 참았어. (속이) 끓어올라도 많이 참더라고. 역시나 그랬지. 대표감이다. 98~99점의 대통령 후보지.”(이규일·79) “이름이 이 뭐? 박근혜 이번에 꼭 떨어뜨린다고? 그런 깍쟁이 같은 ×이 어딨어.”(홍동표·82) “그래 봐야 문재인 표 떨어지는 소리니 신경쓰지 마. 박근혜만이 희망이오.”(조남권·69) “어제 같은 토론회는 안 하는 게 나아.”(윤아무개·77)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소란스러웠던 토론회 품평이 잦아들자 그제야 생경한 사무실의 살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들의 공간인 이곳은 유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우주선인 듯했다. 보통 새벽이나 아침에 집을 나서는 어르신들이 주워 온다는 폐지를 쌓아둔 옆 벽면과 또다른 벽면을 박정희·육영수·박근혜 가족사진들이 차지했다. 종종 전두환 전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사진도 섞여 있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 액자가 태극기와 함께 나란히 걸렸다. 박 후보를 “우리 박근혜 대표”라고 부르는 길인식(74) 강북1지부장의 지갑을 열었더니 박 전 대통령의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2008년 1월호를 내고 발행을 잠정 중단했다가 이날 재창간호를 낸 월간 <박정희> 발행인인 김동주씨의 명함에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에 “부끄럼 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초인, 그리고 한 소박한 서민이었다”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글이 적혀 있었다. 옆방인 식당방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마찬가지다. 소고기미역국과 무생채, 콩나물 등을 은색 식판에 배식하는 어르신들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사진 아래로 태극기가, 그 아래로 환한 미소를 짓는 박근혜 후보가 액자 속에 들어가 있었다. 어버이연합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느끼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논리는 배제돼 있거나 잘 맞지 않았다. 감정이 이끄는 기억은 박 후보 지지로 쉽게 이어졌다. 현재에 대한 소외감이 과거로의 회귀를 부추기는 듯, 젊은이들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그 아버지 핏줄이 어디 가? 더 잘하지.”(원호상·70) “유신·독재자 딸 운운하는데 그게 아냐. 그분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잘살게 하기 위한 경제개발 5개년까지 세워놨다가 (돌아)갔는데, 박 후보가 뒤를 잇는다면 반드시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믿어.”(윤아무개·77) “우리 때 4·19가 있었지. 혁명에 성공한 60~70대가 박수를 치고 나왔어. 그러다 5·16으로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니까 4·19 때 박수치던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환영했다 이거야. 교육이 잘못됐어. 나라, 안보, 도덕 그런 걸 안 배워. 그러니까 젊은이는 무조건 민주당 찍으라고 ××하는 것 아냐.”(익명 요구·70) 식판을 들고 방을 나가는 어르신들을 검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한 어르신이 전장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길을 안내했다. 어버이연합의 식사시간은 오전 11시부터 12시40분. 지난 8월15일부터 사무실 아래 1층에서 추선희(53) 사무총장 가족이 운영하는 뼈해장국 가게에서 반찬을 준비하고, 밥은 어르신들이 직접 짓는다. 그 이전에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100여명의 어르신이 월~토요일까지 어버이연합에 나와 점심식사를 한다. 말 그대로 회원들은 ‘식구’였다. 홍일점 할머니가 열심히 ‘출근’하는 이유 오후 1시. 추 사무총장을 포함해 몇몇 강사가 돌아가면서 어르신들께 시국에 대한 진단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하루 2시간 남짓 안보강연을 하는 시간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1절 제창,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한 묵념이 순서대로 이어졌다. 이경식 자유언론수호포럼 대표와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가 이날 강사였다. 이 대표는 <조선일보>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칼럼을 소개하며 ‘깡통 빨갱이’에 대한 비판을, 김 대표는 탈북 주민들의 고통을 설명하며 종북세력의 척결을 주장했다. “이번 대선이 고비입니다. 지난 4·11 총선 앞두고 야권 단일화라며 미군 철수, 해군기지 폐기,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공약을 내놓았던 후보가 문재인입니다, 여러분.” “옳소~!” 이 대표의 우렁찬 목소리에 어르신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꾸벅꾸벅 졸던 몇몇도 화들짝 놀라 따라서 손뼉을 쳤다. 강연이 한창인 2시15분쯤 한창동(83)씨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떠난다. 집이 대부도라서 일찍 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한씨는 전령을 가던 중 차 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룩거린다. 이규일 수석지부장이 한씨 어깨에 검은색 배낭을 걸어주면 한씨가 표표히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간다. “빨갱이가 싫어서” 여기까지 나온다는 한씨가 말했다. “그 양반 오마니가 훌륭한 양반이었어.” “그 시절이 좋으셨나봐요.” “아니, 지지리도 못살았어. 공산주의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먼저 쳐들어와서 수십만명을 죽였어.”
‘오매불망’ 박근혜 후보 지지는 강연 중에도 계속됐다. 강연 도중 갑자기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 후보의 유세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본 어르신들이 창문을 열고 응원을 한 것이다.
검은 옷, 검은 모자 사이에서 갈색 모피코트를 입은 홍아무개(74) 할머니는 쉽게 눈에 띄었다. 홍씨는 29살의 나이로 인천 연안부두에서 생선팔이를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이 잘해서 그 당시 술 먹고 비틀거리는 사람이나 깡패도 없었고 강간도 안 일어난 것 같다며, 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 지지율이 더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아냐고 묻자 홍씨가 말했다.
“그래도 100% 안심은 안 돼. 아랫집 사람이 문재인 찍으라는 말을 들었다니까 불안해. 그리고 부정선거 날까도 걱정이야.”
홍씨는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할까 봐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예전보다 자주 들른다고 덧붙였다. 어르신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에 6일을 안보강연을 통해 듣고 싶던 이야기를 듣고 정치를 배웠다. 같은 강사, 비슷한 강연 내용에도 어르신들의 반응은 항상 열렬했다.
11일 강연에서는 특별히 전날 저녁 열린 2차 대선후보 토론회에 대한 평가가 더해졌다. 강사인 송충복씨는 1차 토론회에 비해 나아진 모습을 보인 것으로 평가받는 문 후보를 견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재잘재잘 말 잘해봐야 소용없어요. 어눌해도 신(믿을 신)을 줘야 합니다. 박근혜 한마디가 훨씬 신뢰가 갔습니다.”
“누가 박근혜보고 표독하다고 하는데, 아니 아버지·어머니가 그리 죽었고 자기 목에 칼이 찔리기도 했는데 어느 누가 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박수가 쏟아졌다. 송씨는 직함을 묻는 기자에게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국정개혁상임위원장’이라고 말했다. 캠프에서 줬다면서 명함을 보여줬지만, 한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건네주지는 않았다.
“올해까진 버텨야지, 근데 땅 안 팔았어?”
다음 강사인 이종문(66) 경기 안산지부장은 발언 수위를 더욱 높였다. 앞 강연이 일찍 끝나거나 강사가 늦는 ‘자투리’ 시간을 맡는 강사 이 지부장의 결론도 이번 대선과 서울교육감 선거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8일인가 남았습니다.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진짜 대통령이 누구인가. (중략) 시급한 게 교육감이에요. 어린 새싹 잘 길러야 하는데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은 기호 1번 박근혜, 교육감은 기호 2번 문용린입니다. 박근혜와 문용린을 진심으로 투표해줄 것을 믿으며!” 그날 오전 문용린 후보는 보수단일 교육감 후보로 추대됐다.
마무리는 추 사무총장의 투표 독려였다. “(박근혜) 지지율 50% 넘었다고 선거 끝났다고 하면 보따리 싸야 합니다. 지금 보면 박근혜 유리해 보이지만 그런 생각 버리고 한 명이라도 더 투표에 적극 참여하고, 우리에게는 5~100명까지 가족, 친지 표가 (더) 있는 걸 아셔야 합니다. 당당하게 이야기하세요. (중략) 2012년 12월19일 대한민국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평소 오후 3시30분께 사무실은 텅 비지만 이날은 20여명의 임원들이 자리에 남았다. 추 사무총장이 임대료·밥값 부담 등 어려운 살림살이를 해결하기 위한 임원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안보정책이) 정상적이라면 (어버이연합은) 문 닫아야 해요. 그래도 내년 2월25일 이취임식까지는 버티고 싶었는데 오늘 어르신들 돈 때문에 싸우는 이야기 듣고 마음이…. 한달에 2000만원씩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마누라 고생시킬 수만은 없고….”
추 사무총장의 말을 듣고 있던 어르신들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대안은 식비를 줄이는 쪽으로 모아지는 듯했다.
“밥 먹으면 사람이 늘 줄 알았는데 아니야. 별 효과 없어요.” 이규일 수석지부장이 말을 꺼내자 이종문 지부장이 “처음처럼 라면을 먹자”고 제안했다.
“먹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인원 늘릴 필요 없습니다. 기회주의자들은 퇴출해야 해요. 열심히 하는 분들만 챙겨야지.” 추 사무총장이 농담을 섞어 말을 이었다. “우리 소기의 목적은 박근혜 대표예요. 다음에 박 대표 출마 못해요. 이번이 마지막인데 박정희 계승… 국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못하는 거예요. 일단 올해까지는 버틸 계획입니다. 이후는 모르겠어요. 근데 왜 아직 땅 안 팔았어?” 갑자기 길인식 지부장이 욕을 하며 소리쳤다. “개놈의 자식들이 대출을 안 해준단 말야! 내가 땅만 팔아봐!”
그때 한 임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총장님, 제가 의견 하나 드릴게요. 박근혜씨가 대통령 된다고 하는 쪽이랑 이야기해봤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하면, 빌딩 같은 데 만들어가지고… 아직 제의도 안 해보지 않았습니까.” 사무총장과 다른 임원들이 서둘러 어르신의 말을 끊었다. “에에~ 그건 아니에요. 우리는 박근혜랑 상관없어요.”
40분 동안 계속된 회의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어버이연합은, 앞으로도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하는 보수 속 진보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으니 문을 닫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재정문제는 토요일에 다시 의논하자.” 제18대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어버이들의 하루하루는 대선후보 캠프 못지않게 뜨거웠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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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친척도 설득하란 독려
“당당하게 이야기하세요
대한민국 정체성 회복을 위해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운영난 대책 임원회의 시간
밥 먹어도 사람이 안 는다 하자
라면을 먹자는 제안이 나왔다
“박근혜 되면 빌딩…” 운운엔
사무총장이 서둘러 말을 끊었다 일본 최대 민방 <티비에스>(TBS)의 여기자가 스탠딩 리포팅을 했다. 그의 뒷배경은 노인 150여명이 주먹을 꼭 쥔 손을 하늘 높이 뻗는 장면이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빨간색 글씨로 적은 피켓을 높이 든 할아버지도, 10m 크기의 모형 로켓을 나르는 할아버지도 모두 얼굴에 주름이 깊었다. 12일 오후 3시, 이날 오전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자 보수·안보 단체인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케이티(KT) 본사 건물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12월 들어 처음 하는 외부행사였다. 어버이연합은 대선을 앞두고 “어르신들의 건강과 선거법 위반행위를 우려”해 행사를 자제해왔지만, 북한의 기습적 로켓 발사 소식에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인 김정은의 사진을 붙인 인형이 빨갛게 타들어가자, 보청기를 낀 한 회원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만족해했다. 또다른 회원은 취재 나온 외신기자에게 다가가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냐고 물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유리하지 않겠냐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듯 돌아섰다. 벽면에도 지갑에도 박정희·육영수 사진… 눈이 내렸던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의동 어버이연합 사무실 안은 바깥 날씨와 달리 열기로 후끈했다. 온풍기가 돌아가고, 주변에 어르신 수십명이 티브이 시사프로그램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 있었다. 사무실 중앙에 놓인 이규일 수석지부장의 책상 위에는 박 후보 쪽 국민소통본부에서 만드는 ‘통통통 통신기사’가, 탁상용 달력에는 12월19일에 ‘18대 대통령선거일’이라고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2011년도 달력이라 그런지 달력 속 12월19일은 월요일이었다. 기자가 다가가 인사하자, 어르신들은 전날 있었던 대통령 후보 3인의 토론회를 본 소감을 앞다퉈 쏟아냈다. 대부분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비난하고 박 후보를 추어올렸다. “박근혜 대표도 많이 참았어. (속이) 끓어올라도 많이 참더라고. 역시나 그랬지. 대표감이다. 98~99점의 대통령 후보지.”(이규일·79) “이름이 이 뭐? 박근혜 이번에 꼭 떨어뜨린다고? 그런 깍쟁이 같은 ×이 어딨어.”(홍동표·82) “그래 봐야 문재인 표 떨어지는 소리니 신경쓰지 마. 박근혜만이 희망이오.”(조남권·69) “어제 같은 토론회는 안 하는 게 나아.”(윤아무개·77)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소란스러웠던 토론회 품평이 잦아들자 그제야 생경한 사무실의 살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들의 공간인 이곳은 유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우주선인 듯했다. 보통 새벽이나 아침에 집을 나서는 어르신들이 주워 온다는 폐지를 쌓아둔 옆 벽면과 또다른 벽면을 박정희·육영수·박근혜 가족사진들이 차지했다. 종종 전두환 전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사진도 섞여 있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 액자가 태극기와 함께 나란히 걸렸다. 박 후보를 “우리 박근혜 대표”라고 부르는 길인식(74) 강북1지부장의 지갑을 열었더니 박 전 대통령의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2008년 1월호를 내고 발행을 잠정 중단했다가 이날 재창간호를 낸 월간 <박정희> 발행인인 김동주씨의 명함에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에 “부끄럼 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초인, 그리고 한 소박한 서민이었다”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글이 적혀 있었다. 옆방인 식당방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마찬가지다. 소고기미역국과 무생채, 콩나물 등을 은색 식판에 배식하는 어르신들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사진 아래로 태극기가, 그 아래로 환한 미소를 짓는 박근혜 후보가 액자 속에 들어가 있었다. 어버이연합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느끼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논리는 배제돼 있거나 잘 맞지 않았다. 감정이 이끄는 기억은 박 후보 지지로 쉽게 이어졌다. 현재에 대한 소외감이 과거로의 회귀를 부추기는 듯, 젊은이들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그 아버지 핏줄이 어디 가? 더 잘하지.”(원호상·70) “유신·독재자 딸 운운하는데 그게 아냐. 그분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잘살게 하기 위한 경제개발 5개년까지 세워놨다가 (돌아)갔는데, 박 후보가 뒤를 잇는다면 반드시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믿어.”(윤아무개·77) “우리 때 4·19가 있었지. 혁명에 성공한 60~70대가 박수를 치고 나왔어. 그러다 5·16으로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니까 4·19 때 박수치던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환영했다 이거야. 교육이 잘못됐어. 나라, 안보, 도덕 그런 걸 안 배워. 그러니까 젊은이는 무조건 민주당 찍으라고 ××하는 것 아냐.”(익명 요구·70) 식판을 들고 방을 나가는 어르신들을 검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한 어르신이 전장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길을 안내했다. 어버이연합의 식사시간은 오전 11시부터 12시40분. 지난 8월15일부터 사무실 아래 1층에서 추선희(53) 사무총장 가족이 운영하는 뼈해장국 가게에서 반찬을 준비하고, 밥은 어르신들이 직접 짓는다. 그 이전에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100여명의 어르신이 월~토요일까지 어버이연합에 나와 점심식사를 한다. 말 그대로 회원들은 ‘식구’였다. 홍일점 할머니가 열심히 ‘출근’하는 이유 오후 1시. 추 사무총장을 포함해 몇몇 강사가 돌아가면서 어르신들께 시국에 대한 진단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하루 2시간 남짓 안보강연을 하는 시간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1절 제창,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한 묵념이 순서대로 이어졌다. 이경식 자유언론수호포럼 대표와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가 이날 강사였다. 이 대표는 <조선일보>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칼럼을 소개하며 ‘깡통 빨갱이’에 대한 비판을, 김 대표는 탈북 주민들의 고통을 설명하며 종북세력의 척결을 주장했다. “이번 대선이 고비입니다. 지난 4·11 총선 앞두고 야권 단일화라며 미군 철수, 해군기지 폐기,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공약을 내놓았던 후보가 문재인입니다, 여러분.” “옳소~!” 이 대표의 우렁찬 목소리에 어르신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꾸벅꾸벅 졸던 몇몇도 화들짝 놀라 따라서 손뼉을 쳤다. 강연이 한창인 2시15분쯤 한창동(83)씨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떠난다. 집이 대부도라서 일찍 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한씨는 전령을 가던 중 차 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룩거린다. 이규일 수석지부장이 한씨 어깨에 검은색 배낭을 걸어주면 한씨가 표표히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간다. “빨갱이가 싫어서” 여기까지 나온다는 한씨가 말했다. “그 양반 오마니가 훌륭한 양반이었어.” “그 시절이 좋으셨나봐요.” “아니, 지지리도 못살았어. 공산주의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먼저 쳐들어와서 수십만명을 죽였어.”
지난 6일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의 점심식사. 벽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사진이 걸려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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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쪽 온라인 여론조작 왜하나 봤더니…
■ 안철수 “과정 혼탁하면 절반 돌아선다”…새누리에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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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수장학회 해결 제안하자 날 멀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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