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금씨가 서울 구로구 구로동 자택에서 가족을 잃었다가 46년만에 다시 만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경찰에 도움 청한뒤 엄마·언니 상봉
서울 부잣집서 일하며 학교도 못가
돈도 한푼 못받은채 서른살에 결혼
식당일등 악착같이 일해 자녀 키워
서울 부잣집서 일하며 학교도 못가
돈도 한푼 못받은채 서른살에 결혼
식당일등 악착같이 일해 자녀 키워
고향에 대한 기억은 산골짜기 밭 한구석에 덩그러니 쌓은 아버지의 무덤뿐이었다. 지독한 가난은 어린 여자아이를 남의 집 식모살이로 떠밀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1966년, 당시 8살이던 김순금(54)씨는 둘째 언니와 함께 한 탄광촌으로 일하러 갔다. 며칠 뒤, 자매에게 다른 일거리를 찾아주겠다던 아주머니가 밤에 김씨를 깨웠다. “언니가 서울에 갔으니 너도 가자”고 속여 서울 신당동의 한 부잣집으로 팔아넘겼다. 집주인은 한국은행에 다니는 ‘국장님’이었다.
서울 생활은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 설거지를 하다 손이 부르텄고, 겨울밤엔 연탄불을 가느라 잠을 설쳤다. 김장배추 100포기를 잠도 못 자고 절였지만, 다음날 아침에 다 못 절였다고 뺨을 맞은 설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주인아주머니는 “집 밖에 나가면 나쁜 사람이 술집에 팔아넘긴다”고 겁을 줬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서른살 노처녀가 돼서야 주인아주머니는 김씨를 한 공장노동자와 결혼시켜 내보냈다. 김씨는 “결혼해서 집을 나갈 때도 돈 한 푼, 쌀 한 가마니 안 준 게 그렇게 서러웠다”며 눈물을 쏟았다.
배우지 못한 김씨는 ‘인신매매’나 ‘강제노역’이 뭔지 몰랐다. 결혼하고 나서도 10년여 동안 명절마다 주인집에 인사를 갔다. 다만 아이들은 자신처럼 살게 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일했다. 남편은 공사판에서 철근을 멨고, 김씨는 집에서 인형을 만들고 컴퓨터 키보드 자판을 끼웠다. 아이들이 큰 뒤부터 평일엔 학교 앞 분식집에서, 주말엔 예식장 식당에서 일했다. 크고 작은 수술을 6번이나 받을 정도로 몸이 망가진 끝에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아들(23)은 대학을 다니고 있고, 딸(21)은 병원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46년 전 잃어버린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은 포기했다. 그런데 지난달 23일, 자신도 잃어버린 가족이 있으니 같이 경찰에 도움을 청해보자는 지인한테 이끌려 서울 구로경찰서를 찾아갔다. 어렸을 때는 고향 지명을 외웠지만, 주인아주머니가 “네 고향은 강원도 삼척”이라고 세뇌시키는 바람에 잊었다. 실종사건전담수사팀 서제공(56) 경위와 4차례 면담을 하고서야 ‘반야골’이라는 이름이 겨우 떠올랐다. 지난달 30일 서 경위와 함께 경북 봉화군 석포면 반야마을로 가 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다. 수소문한 끝에 극적으로 큰언니(58)와 연락이 닿았다.
지난 3일, 김씨는 경북 영주시에 사는 어머니와 두 언니, 동생을 만났다. 백발 할머니가 된 어머니 남아무개(88)씨는 “내가 오래 사니까 너를 만나는구나”라며 김씨의 얼굴을 수없이 쓰다듬었다. 동생보다 하루 먼저 다른 집에 식모로 팔려갔던 둘째언니(56)는 “몇 달 만에 탈출해 집에 돌아왔는데 너를 잃어버렸다고 어머니한테 맞아서 사흘 동안 일어나질 못했다”며 동생을 붙들고 울었다.
46년 만에 만난 다섯 모녀는 울고 웃으며 지난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지난 16일, 김씨는 새로 찾은 가족과 친족 관계가 맞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서 경위로부터 전해들었다.
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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