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2차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김옥주 부산저축은행비대위원장이 저축은행 피해자들과 함께 정부의 피해자 구제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토요판] 르포/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의 21개월
▶뉴스도 제대로 안 보고 살았다. 학생들이 ‘데모’라도 하면 ‘왜들 저러나’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평범했던 ‘부산 아지메’는 2011년 2월17일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 그날 이후 ‘거리의 투사’가 됐다. 부산저축은행에 넣어둔 살림밑천 1억여원 가운데 영업정지 사태 이후 돌려받은 돈은 예금자보호법이 보장하는 5000만원이 전부.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을 오간 것이 70여차례다. 그에게 과연 희망은 남아 있는 걸까.
작년 2월 부산저축 담벼락엔
‘김옥주: 010-9×××-2×××’
피해자들 모아 비대위를 꾸렸다
검찰로 법원으로 국회로…
108배도 해봤고 고함도 질러봤고
금융서류들과 씨름도 해봤다
은행 바닥 한뎃잠도 벌써 530일
“정부 잘못이 너무 명백해요
감독을 잘해서 부실은행 알았다면
어떤 사람이 돈을 맡겼겠어요?
그런데도 법 운운하면 속 터져요” “정·관계 로비로 얼룩진 저축은행 사태 정부는 책임져라.”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50살 ‘아줌마’가 검은색, 붉은색 페인트로 적힌 손팻말을 든 채 큰 소리로 외쳤다. “피 같은 내 돈 돌려줘라!”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서울중앙지법에선 이날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2차 공판이 열렸다. 아줌마는 이 공판을 보기 위해 저축은행 피해자 “할매·할배 45명과 함께 새벽부터 전세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올라온” 김옥주 부산저축은행비대위원장이다. 할매·할배들의 고함, 재판장의 엄포 김 위원장과 할매·할배들은 이날 번호가 적힌 출입증을 받고 몸수색을 거치고서 공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에 들어설 수 있었다. “우리 돈 내놔라 이놈아.” 이 전 의원의 얼굴을 보자 부아가 치밀어 막말과 고성이 절로 나왔다. “감정 조절이 안된다면 법정을 떠나고, 이성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이들만 방청하세요.” 재판장의 엄포에 고함이 잦아들었다. 검찰은 이날 이 전 의원이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돈을 직접 건네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증거자료들을 내놨다. 2007년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80억원 선거자금 대출 당시 이 전 의원이 연대보증인으로 서명했던 대출신청서, 두 사람의 통화 내역, 김 회장 사무실에서 발견된 이 전 의원의 명함 등이 제시됐다. 김 회장의 운전기사와 미래저축은행 전무이사도 나와 2007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 회장이 이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할 당시의 상황을 진술했다. 이 전 의원 쪽 변호인은 혐의를 부인했다. “김 회장과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직접 만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은 없다”는 것. 오늘 ‘싸움’은 여기까지. 다음 공판은 오는 29일에 하겠다고 재판장이 얘기했다. “법정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 다들 잘 알잖아요.” 할매·할배를 다독이는 말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의 서울행은 이달만 벌써 5번째다.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가 이뤄진 지난해 2월 이후 한 70여차례는 서울을 오간 것 같다”고 김 위원장이 말했다. 저축은행 비리를 제대로 수사해달라고 검찰과 법원으로 달려갔고, 피해자 구제 법을 만들어 달라고 여의도 국회로, 각 정당 당사로 뛰어다녔다. 108배를 하며 읍소도 해봤고 “죽일 놈 살릴 놈” 목청껏 소리도 질러봤다. 말리는 경찰들과의 몸싸움은 기본, 법정에 출석하는 이상득 전 의원의 멱살을 잡았다가 ‘형님멱살’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저축은행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줄어들자 저축은행 비리 관련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호소하는 펼침막을 단 차를 몰고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길을 돌고 또 돌며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스스로 알리고자 했다. “원래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성격”이지만, 처음부터 ‘싸움꾼’이었던 건 아니다. “나나 여기 할매·할배들, 어디 뉴스나 제대로 보고 살았나요. 학생들이 데모하면 왜들 저러나 하면서 딴 세상 얘기 취급하듯 했던 사람들인걸. 그런데 내가 이 기막힌 처지가 되고 보니 우리 억울한 사정 좀 들어달라고 이렇게라도 소리를 쳐야 그나마 눈길이라도 주는 걸 어쩌겠어요.” ‘그날’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이렇게 싸움꾼이 될 줄은 몰랐다. 김 위원장에겐 2011년 1월14일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산저축은행에 넣어둔 돈 1억여원 생각에 불안해져 뉴스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초등학교 5학년 늦둥이 딸내미와 둘이서 살아갈 밑천, 사업을 시작하려고 모아뒀던 종잣돈”이었다.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말을 믿었다. “당분간 영업정지는 없다”는 그 말에 설마설마하면서도 놀란 가슴을 다독였다. “명색이 금융수장이 하는 말인데, 믿어야지. 좀 걱정된다고 너도나도 돈을 빼면 어느 은행이 안 무너지겠나” 싶어서였다. 한달 뒤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영업정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은 울부짖는 피해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억울해서 못 참겠습디다. 돈도 돈이지만 ‘어떻게 금융당국자가 서민들을 속일 수 있나’ 그게 더 용납되지 않더라고요.”
“영업정지 없다”더니 속은 게 더 분해
김 위원장은 가만히 울고만 있지 않았다. ‘김옥주: 010-9×××-2×××.’ 은행 담벼락에 전화번호를 붙여놓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1월14일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당시 ‘당분간 저축은행 영업정지는 없다’고 해놓고 추가로 영업정지 조치를 내려 재산상 큰 손해를 봤으니까 김석동 위원장을 경찰에 고소하자”고. ‘뜻을 같이하겠다’며 사람들이 하나둘 연락을 해왔다. 부산저축은행비상대책위원회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꼭 내가 총대를 메야 하나, 다른 사람들이 나서주길 바랐지요.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은 잘 나서질 않았고, 소송을 해서 돈을 찾아주겠다는 브로커들만 들끓더군요.” 결국 비대위원장이란 감투를 쓰게 됐다. “시작하고 나니 나만 바라보고 있는 할매·할배들 때문에 발을 뺄 수가 없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늦둥이 딸 잘 키우는 일 외엔 관심이 없던 아줌마 김옥주씨가 ‘거리의 투사’가 된 까닭이다.
그는 ‘무조건 도와달라’고 감정에만 호소하지 않기로 다짐했단다. 논리적인 근거들을 찾기 시작했다. “혹 소송까지 가게 된다고 해도 제대로 된 근거자료가 없으면 10원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금융감독원에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자산총액만 달랑 적힌 재무제표 한 장만 돌아왔다.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처음엔 만나주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금보험공사가 들이닥치기 전 부산저축은행에는 아직 관련 ‘서류’들이 제법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낮에는 집회를 하고 돌아와 새벽 3시까지 서류를 들여다봤지요.” 생경한 금융용어와 숫자로 가득한 서류들을 ‘해독’하게 될수록 기가 막혔다. “곳곳에서 돈이 줄줄 새고 있는데 감시를 해야 할 정부와 금융당국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 싶더군요.” 김 위원장은 특히 2008년 부산저축은행 대표이사 등의 ‘영남알프스 컨트리클럽 배임사건’ 당시, 울산지검 검사가 보낸 의견서를 발견하곤 혀를 내둘렀다. 영남알프스 컨트리클럽은 부산저축은행 임직원들이 지인과 친척들을 내세워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으로, 부산저축은행이 이곳에 대출을 해준 것은 저축은행 대주주 등에 대한 신용공여를 금지한 상호저축은행법 위반. 검사의 의견서엔 울산지검이 부산저축은행의 불법대출을 적발하고 이를 금융감독원에 통보했다는 내용과 함께 “은행이 아무런 견제나 검토도 받지 않고 예금주들의 돈을 가지고 맘대로 투자사업을 벌일 수 있다면 이는 도덕적 해이가 극치에 이르고 그 피해는 결국 소액의 예금주인 국민들이 진다”는 경고까지 섞여 있었다. “그때 제대로 손만 썼더라도 오늘날의 사태까지 벌어지진 않았겠죠.” 김 위원장이 분통을 터뜨리는 대목이다. 그는 낯선 금융 전문용어가 가득한 서류들을 읽고 또 읽어 중요한 내용을 추려 아침이면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돌렸고,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면서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한 기자는 “김 위원장이 아니었다면 저축은행 사태가 이렇게까지 이슈화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8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저축은행 문제를 담당했던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도 “저축은행 사태 초기 김 위원장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잘못이 너무 명백했어요.” 그가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여긴 까닭이다. 지난해 7월 열린 국회 ‘저축은행 비리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도 ‘저축은행의 부실화는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소비자 보호를 등한시한 채 저축은행의 영업기반 확대에만 초점을 두어온 잘못된 정책 및 부실이 발생한 저축은행에 대한 적절한 조치의 지연 등 금융당국의 책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결과가 나왔다. 금융당국도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했다.
피해자구제법 무산…국가배상신청을 내다
이진복·허태열 의원 등이 이를 바탕으로 부실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내놨다. ‘2008년 9월 이후 영업정지된 18개 저축은행으로 인해 피해를 본 고객의 5000만원 초과 예금과 후순위채 투자금의 55% 이상을 예보 기금으로 보상’해주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저축은행 피해자를 위해 예보 기금을 사용하는 것은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행태”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후 예금보험공사 기금을 재원으로 피해를 보상한 뒤 추후 예산지원을 통해 이를 보전하자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도덕적 해이’ ‘법적 형평성, 안정성’ 논란으로 번졌다. 결국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특별법은 지난 5월 18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대검찰청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을 비롯해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등 굵직한 정·관계 인사들을 재판에 넘기는 등 124명을 적발(62명 구속 기소, 62명 불구속 기소)했고 책임재산 6500여억원을 환수했다는 지난 1년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사이 은진수 전 감사위원은 모범수로 가석방됐으며, 김두우(55)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석방됐다. 정·관계 인사, 저축은행 대주주·임원·경영진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달라지지 않은 건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처지뿐이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 3~4층을 531일(10월20일 기준)째 점거하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청소나 목욕탕 때밀이, 일용직 노동을 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되찾기 위해 매일 4~5명씩 은행 맨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 버티고 있다. 그사이 두어명의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현재로선 구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포퓰리즘 논란 때문에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까지 했던 피해자 구제 특별법이 무산됐는데, 무슨 동력이 있겠어요. 현실적으로 국회가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봐야죠.” 18대 국회에서 정무위를 담당했던 새누리당 보좌관의 얘기다.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속이 타들어간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다 보지 않고 무턱대고 5000만원까지만 보장해주도록 한 법을 운운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속이 터져요. 법이 그렇다손 쳐도, 처음부터 정부가 관리·감독을 잘해서 부실 은행이란 걸 알았더라면 어떤 사람이 그 은행에 돈을 넣어 이런 피해를 보겠어요. 이렇게 (국가가 잘못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되는 걸 보면, 역시 힘이 없어 당하는구나 싶어집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은 63.6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을 개별적으로 치르는 건 비용이나 기간 모든 면에서 피해자들에게 상당히 큰 짐이다. 그래서 택한 게 국가배상 신청이다. 저축은행 피해자 800여명은 지난 5월 정부를 상대로 490억원의 국가배상 신청을 제기했다. 서울고검은 다음달께 이 신청안을 심의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배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래도 싸움은 계속해야죠.” 김 위원장이 말했다. “부당하게 당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어요? 금융당국이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는 날까지 끝까지 싸워야죠.”
부산/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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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법 운운하면 속 터져요” “정·관계 로비로 얼룩진 저축은행 사태 정부는 책임져라.”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50살 ‘아줌마’가 검은색, 붉은색 페인트로 적힌 손팻말을 든 채 큰 소리로 외쳤다. “피 같은 내 돈 돌려줘라!”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서울중앙지법에선 이날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2차 공판이 열렸다. 아줌마는 이 공판을 보기 위해 저축은행 피해자 “할매·할배 45명과 함께 새벽부터 전세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올라온” 김옥주 부산저축은행비대위원장이다. 할매·할배들의 고함, 재판장의 엄포 김 위원장과 할매·할배들은 이날 번호가 적힌 출입증을 받고 몸수색을 거치고서 공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에 들어설 수 있었다. “우리 돈 내놔라 이놈아.” 이 전 의원의 얼굴을 보자 부아가 치밀어 막말과 고성이 절로 나왔다. “감정 조절이 안된다면 법정을 떠나고, 이성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이들만 방청하세요.” 재판장의 엄포에 고함이 잦아들었다. 검찰은 이날 이 전 의원이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돈을 직접 건네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증거자료들을 내놨다. 2007년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80억원 선거자금 대출 당시 이 전 의원이 연대보증인으로 서명했던 대출신청서, 두 사람의 통화 내역, 김 회장 사무실에서 발견된 이 전 의원의 명함 등이 제시됐다. 김 회장의 운전기사와 미래저축은행 전무이사도 나와 2007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 회장이 이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할 당시의 상황을 진술했다. 이 전 의원 쪽 변호인은 혐의를 부인했다. “김 회장과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직접 만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은 없다”는 것. 오늘 ‘싸움’은 여기까지. 다음 공판은 오는 29일에 하겠다고 재판장이 얘기했다. “법정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 다들 잘 알잖아요.” 할매·할배를 다독이는 말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의 서울행은 이달만 벌써 5번째다.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가 이뤄진 지난해 2월 이후 한 70여차례는 서울을 오간 것 같다”고 김 위원장이 말했다. 저축은행 비리를 제대로 수사해달라고 검찰과 법원으로 달려갔고, 피해자 구제 법을 만들어 달라고 여의도 국회로, 각 정당 당사로 뛰어다녔다. 108배를 하며 읍소도 해봤고 “죽일 놈 살릴 놈” 목청껏 소리도 질러봤다. 말리는 경찰들과의 몸싸움은 기본, 법정에 출석하는 이상득 전 의원의 멱살을 잡았다가 ‘형님멱살’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저축은행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줄어들자 저축은행 비리 관련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호소하는 펼침막을 단 차를 몰고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길을 돌고 또 돌며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스스로 알리고자 했다. “원래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성격”이지만, 처음부터 ‘싸움꾼’이었던 건 아니다. “나나 여기 할매·할배들, 어디 뉴스나 제대로 보고 살았나요. 학생들이 데모하면 왜들 저러나 하면서 딴 세상 얘기 취급하듯 했던 사람들인걸. 그런데 내가 이 기막힌 처지가 되고 보니 우리 억울한 사정 좀 들어달라고 이렇게라도 소리를 쳐야 그나마 눈길이라도 주는 걸 어쩌겠어요.” ‘그날’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이렇게 싸움꾼이 될 줄은 몰랐다. 김 위원장에겐 2011년 1월14일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산저축은행에 넣어둔 돈 1억여원 생각에 불안해져 뉴스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초등학교 5학년 늦둥이 딸내미와 둘이서 살아갈 밑천, 사업을 시작하려고 모아뒀던 종잣돈”이었다.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말을 믿었다. “당분간 영업정지는 없다”는 그 말에 설마설마하면서도 놀란 가슴을 다독였다. “명색이 금융수장이 하는 말인데, 믿어야지. 좀 걱정된다고 너도나도 돈을 빼면 어느 은행이 안 무너지겠나” 싶어서였다. 한달 뒤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영업정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은 울부짖는 피해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억울해서 못 참겠습디다. 돈도 돈이지만 ‘어떻게 금융당국자가 서민들을 속일 수 있나’ 그게 더 용납되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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