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진(57)씨
고문 목격 재일동포 김병진씨
“과거청산 머뭇대는 한국에
경종 울리려고 추재엽 고발”
“당시기억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과거청산 머뭇대는 한국에
경종 울리려고 추재엽 고발”
“당시기억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추재엽(57) 전 양천구청장이 국군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근무 시절 민간인 고문 사실을 법정에서 부인한 혐의 등(위증·무고·허위사실 유포)으로 지난 11일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한겨레> 12일치 1면) 역사의 뒤안에 묻혔던 죄를 끈질기게 캐물은 이는 재일동포 김병진(57·사진)씨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씨는 재일동포 3세다. 일본 간세이학원대학 문학부를 다니던 김씨는 고국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1980년 3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2학년으로 편입해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1983년 7월9일, 김씨는 집 앞에서 보안사 수사관 4명에게 느닷없이 끌려갔다.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와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아들에게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다. 수사관들은 잠을 재우지 않거나 전기의자에 앉히며 김씨를 고문했다. 간첩으로 조작돼 구속된 다른 인물에게 포섭돼 간첩 활동을 했다는 거짓 사실을 인정하라며 윽박질렀다.
고문에 못 이긴 김씨는 거짓 진술서에 서명한 뒤 풀려났다. 보안사는 일본어에 능통한 김씨를 검찰이 기소 보류하도록 했고, 대신 강제로 2년간 보안사 군무원으로 일하도록 했다. 김씨는 1984년 1월부터 일본 출신 동포들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수사에서 통역을 맡았다.
이듬해인 1985년 서울 송파구 장지동 수사분실에서 김씨는 추재엽 당시 수사관을 만났다. 벌거벗겨진 채 각목에 매달린 재일동포 유재길(70)씨의 눈코에 추씨 등이 고춧가루 물을 들이붓던 장면을 김씨는 생생히 기억한다.
“제가 고문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너무 고통스러워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지난 4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전화기 너머 일본에 있는 김씨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나중에 유씨는 무죄로 풀려났다.
애초 약속했던 2년 근무가 끝날 무렵, 보안사 수사관들은 김씨를 붙잡았다. “너무 많은 일을 목격했다고, 저를 풀어주지 말자고 의논하더군요. 상관에게 뇌물도 바치고 술도 사면서 겨우 나왔습니다.”
1986년 1월, 김씨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자신이 겪은 고초를 글로 써서 <보안사>라는 책으로 냈다. 1988년 한국어 번역판이 나왔지만 노태우 정부는 이를 곧 압수하고 김씨에게 지명수배를 내렸다.
여권 발급을 금지당한 김씨는 2000년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2009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보안사는 김씨에게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하고 보안사 근무를 강요하는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했다”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일본에서 영어·일본어 학원강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김씨는 지난해 10월 추씨가 양천구청장 3선에 나선다는 사실을 알고 기자회견을 열어 추씨의 고문 경력을 폭로했다. “아직도 과거 청산을 머뭇거리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추씨를 고발했던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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