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인 홍콩섬 도심 완차이
정부가 건물서 주민 내쫓으려 하자
청년들 시위·민간단체 호소로 변신
사건 계기로 홍콩 시민사회 각성돼
주요 도시재생 민간협력으로 결정
정부가 건물서 주민 내쫓으려 하자
청년들 시위·민간단체 호소로 변신
사건 계기로 홍콩 시민사회 각성돼
주요 도시재생 민간협력으로 결정
홍콩섬 도심 완차이는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낡은 건물도 빼곡하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지하철 완차이역 앞 지도엔 ‘블루하우스’, ‘옛 완차이 시장’, ‘홍콩 최초 우체국’ 등이 안내돼 있다.
지난달 30일 완차이역에서 시장 골목을 지나 스톤널러 거리에 이르자 파란색으로 외벽을 칠한 블루하우스가 나타났다. 블루하우스는 1920년대에 지은,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상업용 4층 건물이다. 연면적 1052㎡ 규모로, 1층은 가게들이 쓰고 2~4층은 주거공간이다.
홍콩의 옛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관광명소로 이름나 있는데, 지금도 블루하우스에 주민들이 그대로 살게 된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
■ 퇴거 압력에 맞선 주민·청년·시민들 2006년 4월 홍콩 정부는 이 건물을 리모델링해 생활사박물관으로 만들겠다며 33가구 주민들을 내쫓으려 했다. 퇴거 위기에 놓인 주민들의 호소에 세인트제임스복지관은 사람들이 예전처럼 거주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비바 블루하우스’(블루하우스여, 영원하라) 프로젝트를 정부에 제안했다. 문화유산 전문가, 공동체문화 단체 등이 힘을 보탰다. 주민들이 특유의 공동체적 삶을 이어가면서 자력으로 유산들을 보존해가는 전범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7년 ‘퀸스피어(여왕의 부두) 시위’로 일컬어지는 7개월 남짓 장기 갈등을 치르고서야 홍콩 정부는 2007년 12월 주민 퇴거 계획을 접었다. 세인트제임스복지관에서 완차이 문화유산 보호 업무를 하는 수키 차우는 “굉장히 크고 감당하기 힘든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
2007년 7월1일 영국의 조차지였던 홍콩이 155년 만에 중국으로 반환된 지 10년 된 날, 퀸스피어 시위는 꼭짓점에 이르렀다. 홍콩섬 부두인 퀸스피어엔 청년들이 두 달 전부터 세운 천막이 놓였다. 철거 반대 뜻을 담은 “떠나지 마”(不告別) 등의 구호를 적은 펼침막이 내걸렸고, 즉흥 공연과 토론, 집회가 이어졌다.
홍콩 정부가 도시 재개발을 추진하며 퀸스피어 건물, 웨딩카드 거리의 인쇄업소, 블루하우스 등 낡은 건물들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퇴거시키려 하자, 연인원 1000여명이 참여한 불복종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스티브 창 아시아학센터 소장은 당시 <비비시>(BBC) 방송 기고문에서 “퀸스피어 철거는 무자비한 개발과 환경 파괴, 문화유산에 대한 무지를 의미한다”고 썼다. 이 시위는 홍콩 시민사회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수키 차우는 기억했다.
■ 일방적 개발에서 민-관 협력 도시재생으로 퀸스피어 시위를 계기로 홍콩 정부는 주요 도시재생 사업을 시민사회와 함께 결정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블루하우스 2~4층엔 주민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됐고, 1층 가게 한 칸은 이들의 일상을 전시한 ‘완차이 민간생활관’이 들어섰다. 20명 안팎의 탐방단이 한달 평균 스무 차례쯤 찾는다. 블루하우스와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의 직원은 25명이다. 수입의 절반은 이들의 급여로 쓰고, 나머지는 홍보에 쓴다고 했다. 주거층인 2~4층엔 주민들 사생활 보호를 위해 탐방객을 들이지 않는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비좁았고, 계단참에 각종 생활용품을 쌓아놓은 모습이 한국의 임대아파트와 닮았다. 집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없어 배설물을 밖으로 치워내야 한다. 관광안내인은 “거주자가 많았을 땐 임시 칸막이로 공간을 구분해 살았다”고 설명했다.
주민 가운데 고령으로 숨진 이도, 정부 거주시설로 이주한 이들도 생겨나면서 지금 블루하우스에는 8가구가 산다. 건설노동자, 미화원, 물리치료사 등 극빈층이다. 홍콩 정부는 올해 블루하우스 주민들이 쓸 공동화장실과 채식 식당, 탐방객들을 위해 건물의 역사를 설명할 역사관 등을 건물 뒤쪽에 지을 계획이다. 주민그룹과 세인트제임스복지관은 식당을 완차이 지역 전통음식을 파는, 극빈층이 일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하고 빈집들도 지역 소상공인이나 문화예술가 등에게 싸게 빌려줄 참이다. 새 입주자는 ‘재능기부’를 통해 블루하우스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 ‘역사문화재를 보존하며 자립하는 공동체’라는 프로젝트의 이상을 조금씩 실현해가는 것이다. 비바 블루하우스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홍콩/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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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완차이 스톤널러 거리에 있는 ‘블루하우스’. 1970년대에 보수하는 과정에서 홍콩 정부 상수도부 건물에 쓰고 남은 파란색 페인트로 외벽을 칠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오른쪽 가장자리 부분이 원래 건물의 색으로, 페인트가 부족해 전부 칠하지 못했다고 한다.
블루하우스 1층엔 홍콩 완차이 주민들의 과거 생활상과 소품들을 전시한 완차이민간생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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