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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오래된 정원, 구청이 사들이고 시민이 가꾸고

등록 2012-09-17 20:24수정 2012-09-19 08:58

일본 도쿄 신주쿠 스미레바공원
팔릴 위기 정원을 민·관이 보존
개발 막고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낡은 빈집 빌려 소통공간 활용
일본 도쿄 신주쿠 남서쪽의 도시철도 지토세후나바시역을 나서 10분쯤 걸으면 수십년 된 듯한 나무들이 한눈에 가득 찬다. 스미레바 자연공원이라는 안내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넓은 잔디에서 먹이를 찾는 작은 새 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난 4일 오전 도쿄의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이곳을 찾았다는 후지타니 가지코(86) 할머니는 “단독주택들이 빼곡한 도심 주거지에 나무가 많은 공원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스미레바(민들레꽃이 서식한다는 뜻) 자연공원은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 옷감을 팔았던 장사꾼이 1977년 전 2만여㎡를 사들여 정원으로 가꾼 곳이다. 1990년대 초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 정원에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설 위기에 놓이자 시민단체와 세타가야구가 머리를 맞댔다. 세타가야구는 1994년부터 6400여㎡(1800여평)를 사들였고, 시민들은 정원 안에 생태연못을 만들거나 잡초 뽑기나 곤충 찾기 같은 가족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정원은 2004년 식물 300여종과 곤충 600여종이 살고 50~70여종의 새들이 찾는 생태공원으로 시민의 품에 안겼다.

4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 육아공동체 ‘루츠의 집’에서 한 엄마가 다른 엄마들에게 면으로 아기를 몸에 묶어 업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4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 육아공동체 ‘루츠의 집’에서 한 엄마가 다른 엄마들에게 면으로 아기를 몸에 묶어 업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세타가야구 주민들은 86만명이 소통하는 공동체 만들기에 공을 들여왔다. 오래된 빈집을 저렴하게 빌리거나 무료로 기부받아서 주민들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역공생의 집’이란 이름을 붙인 이곳은 독서토론·세미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주민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4일 찾은 루츠의 집은 비영리단체 ‘아미고’가 2008년부터 100여㎡의 빈집을 빌려 운영하는 육아공동체다. 1~3살의 아이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육아방법을 공유하고 삶을 나누는 사랑방 구실을 한다. 화·목·금요일마다 무료로 열고, 다달이 한 차례 아빠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세타가야구엔 이런 지역공생의 집이 12곳 있다. 미야시타(48) 루츠의 집 대표는 “이곳에서 도움을 받았던 엄마들이 자신이 터득한 육아법을 다른 엄마들에게 전수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세타가야구 후카사와에 있는 환경공생주택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으로 꾸민 곳이다. 35가구가 사는 목조주택이었던 것을 세타가야구가 1997년 300여억원을 들여 70가구의 친환경 임대아파트로 재생시켰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했고, 장애인과 노인들이 사는 아파트 목욕탕·화장실엔 문턱을 없애거나 낮췄다. 아파트 곳곳의 태양광 패널로 온수난방을 하거나 가로등을 켠다. 옥상의 풍력발전기로는 아파트 연못의 물을 순환시킨다.

4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 스미레바 자연공원을 찾은 방문객들이 숲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4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 스미레바 자연공원을 찾은 방문객들이 숲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세타가야구의 ‘친환경과 주민 소통의 주거정책’을 끌어내는 동력은 주민들이 스스로 꾸린 400여 비영리 조직(NPO)이다. 2006년 설립된 재단법인 ‘세타가야 마을만들기 트러스트’가 그 중심에 있다. 민과 관을 연결하고 주민 조직들을 묶고 연대하게 하는 창구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시민펀드를 조성해 주민 자생조직 재정을 지원한다.

1960~70년대 도심 베드타운으로 조성됐던 세타가야구는 20여년에 걸친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노력 끝에 녹지면적이 도쿄의 23개 구 가운데 으뜸인 곳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세타가야구와 협력해 만든 자연공원 11곳, 작은 숲 10곳은 도쿄 시민들이 날마다 찾는 안식처다. 세타가야 마을만들기 트러스트의 아사노우미 요시하루(55) 사무국장은 “세타가야구가 도쿄에서 가장 살고 싶은 구로 바뀐 것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희망제작소 안신숙(51) 연구위원은 “개발보다는 자연과 공생하는 주거환경을 만들고 주민이 소통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에 중심을 두는 세타가야구 주거정책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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