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17일 새벽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버스정류소에서 사람들이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토요판] 르포 막차를 타는 사람들
콜을 기다리는 대리기사
늦은 영업 끝낸 자영업자
거나하게 취한 직장인…
피시방서 하루 보낸 무직자는
“희망없는” 이 시대가 불만이다 막차 운전의 절대수칙은
늦게 떠나도 빨리 떠나지 말것!
그래도 막차를 놓친다면
첫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밖에 홀로 남아 빛나는 그곳은 버스정류장이었다. 7월31일 밤 12시가 넘은 시각, 아직 집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정류장에 모여들었다. 버스 도착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에 앞으로 올 버스가 ‘막차’임을 알리는 빨간색 글씨가 떴다. 전광판을 힐끗 올려다본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성격이 급한 사람 하나만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버스가 언제 오는지를 바라봤다. 곽재구의 시처럼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잠시 후 402번 버스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새벽 1시15분. 비로소 버스가 두 눈을 반짝이며 달려왔다. 그리고 버스는 입을 벌리고 승객들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삑’ 요금 결제되는 소리가 끊기자, 버스는 다시 ‘부릉’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 꾸벅 졸거나 스마트폰 톡톡거리거나 막차 시간은 도시가 잠드는 시간과 비슷했다. 서울 버스의 막차 시간은 도심 기준으로 보통 밤 11시30분~새벽 1시30분 정도다. 서울의 베드타운 구실을 하는 분당, 일산, 구리, 인천 등 수도권으로 빠지는 광역버스는 그보다 좀 늦은 새벽 1시30분~2시 정도에 도심에서 시외로 떠난다. “1990년대 중반쯤 분당, 일산으로 가는 심야좌석버스가 처음 생겼어요. 도심에서 시외로 늦게 퇴근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봐주고 ‘총알택시’나 ‘나라시’(자가용 영업)를 근절하자는 취지에서였죠. 새벽 2시까지 차고지에 도착하는 걸 심야버스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막차가 더 빨리 끊기지 않았을까요?”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도시가 커지고 시민들의 퇴근이 늦어지다 보니 막차시간도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것이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에서 20여년을 일한 김난규 계장의 설명이다. 평소 별생각 없이 타던 버스 막차를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니, 막차란 굉장히 독립된 공간이었다. 광화문에서 서울역, 남산을 지나 강남으로 가는 402번 버스 막차 승객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혼자만의 방에 있는 듯 행동했다. 남자 12명, 여자 2명의 승객은 졸거나, 창 너머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톡톡거렸다. “빈 의자들 너머 비죽 튀어나온 검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의자들에 가려져 얼굴과 몸이 전혀 보이지 않아 가발이라도 걸쳐 놓은 것 같았다.” 2010년 발표된 소설가 김숨의 단편소설 <막차>가 묘사했듯이, 버스 안에선 스산함이 맴돌았다. 약속이나 한듯 서로에게 무심했으며 슬쩍슬쩍 스치는 눈빛에서 피로함이 날카롭게 부딪혔다. 몇 번을 주저하다 용기를 냈다. 옆자리의 승객이 말을 받아 주었다. 대리운전 기사 전영식(54)씨였다. 전씨는 밤 12시30분에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서울 종로까지 오는 3만원짜리 ‘콜’을 잡았다가 이제 경기도 신갈의 집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집 근처로 가는 콜 잡으려고 기다리는데, 어려우니까 일단 집 쪽으로 이동하면서 콜이 오나 기다리는 거예요. 막차요? 매일 타죠.” ‘띵’, ‘띵’ 핸드폰에서 콜이 뜨는 알림음이 계속 울렸다. 앞에 앉은 중년 남성 4명도 대리운전 기사였다. 그들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콜을 잡고 있었다. 전씨는 “오피스텔 두 채의 분양이 엎어지면서 내가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난 뒤 대리기사 일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건설 컨설팅업체를 개업해 낮에는 전화상담을 주로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월 200만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곧 제대하는 21살 막내가 복학하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컨설팅 사업이 자리를 못 잡았다는 전씨의 말을 듣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남산을 지나 한강을 건넜다. 새벽 1시46분, 전씨는 신갈까지 가는 광역버스 9408번 막차를 타야 한다며 강남대로에서 서둘러 내렸다. 대리기사는 막차의 ‘우량 승객’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막차는 ‘삶’ 자체였다. 지난 14일 같은 시각, 같은 버스에서 만난 대리기사 이영철(49)씨에게도 막차는 ‘일터’였다. 버스에서 내린 이씨가 신사역 정류소 의자에 앉아 말했다. “우리는 앱(애플리케이션)을 보지 않고도 막차 시간을 다 알고 있죠. 환승해서 타야 하니까. 막차 놓치면 편의점이나 은행 인출기 앞에서 그냥 앉아 있는 거예요. 첫차가 올 때까지.” 자신이 운영하던 무역회사와 유흥업소가 차례로 망한 뒤 그는 2003년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막차 타고 무슨 생각하냐고요? 아무 생각 없어요. 이 일은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매일 현찰 들어오니까 한번 발 들이면 그만둘 수가 없고요, 발전이 없어요. 외로운 직업이죠.”
“막 뛰는데 쌩 내빼데요, 신고했어요”
막차는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발이기도 했다. 시흥동 시흥사거리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김미선(52)씨에게 막차가 그랬다. 김씨는 매일 밤 11시30분쯤 가게 일을 정리하고 시흥사거리에서 늘 150번 막차를 타고 신대방동 집까지 간다. 지난 13일 김씨는 버스 도착시간이 들쭉날쭉해 차를 놓칠 때도 있다며 입을 삐쭉거렸다. “이 시간이면 많이 피곤하죠. 몇 번은 차 타려고 막 뛰었는데 그냥 내빼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신고한 적도 있어요. 근데 그러면 벌금 낸다면서요? 괜히 나 때문에 기사분이 잘릴까봐 걱정되기도 하더라고요.” 2주 전 피자 가게에서 술 취한 사람이 피자를 주문해놓고 잠들어버려 경찰을 부른 일이 요즘 가장 재밌던 일이라고 김씨가 말하자, 옆에 앉은 대학생 아들이 싱긋싱긋 웃었다.
그날 김씨가 탄 정류소에서 내린 출장마사지사 조득희(65)씨에게 막차는 ‘외출’이었다. 분홍색 시폰블라우스에 검정 주름치마를 차려입은 조씨가 말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자주 외출하진 않아요. 그래도 사람 만날 때는 가끔 타죠. 오늘은 방배동에 있다가 누가 차로 광화문에 데려다줘서 막차를 타고 안양 집에 가는 중이에요.” 기업체 회장, 고위공무원 등 고위층을 방문하며 30년째 경락 마사지를 해왔다는 조씨가 살아온 세월을 풀어놓았다. “나는 비천해도 좋은 분들이 불러주시니까… 만나서 이야기 듣는 게 좋아요. 오늘 만난 분은 민주화운동 하셨던 분이에요. 그분은 ‘근혜가 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전 박근혜는 잘 모르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우릴 잘살게 해준 분이라 너무너무 존경하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안 좋아했지만 처녀 때 디제이(DJ)를 정말 좋아했고요.”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남편 앞으로 나오는 연금과 장성한 두 아들 그리고 보람된 성당 활동까지 조씨는 행복하다고 했다.
막차를 타며 처음에 느낀 두려움과 막연함과 달리 막차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도시의 건물 불이 하나둘 꺼지는 시간, 유일하게 불을 켠 채 사람을 모으는 게 막차였다. 뻔하지만 진솔한 사람 사는 이야기들은 입 밖으로 술술 흘러나왔다. 저녁에 살짝 걸친 술 한잔이 처음 만난 사람과의 소통을 주선하기도 했다.
같은 날 150번 버스 안. 노량진의 학원을 다니며 법원직 공무원 시험 공부중인 손기문(29)씨는 종로에서 사촌 형과 2차까지 마시고 영등포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대학 졸업하고 아는 사람의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학자금 대출을 갚은 뒤 2년째 시험공부중이라고 손씨는 말했다. “요즘 세상에 공무원이 최고잖아요. 즐거운 일은 딱히 없고, 한강에서 맥주 한잔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여자친구요? 공부하는데요 뭐… 하기 싫어도 (공부)해야죠.”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학원에서 밤 10시까지 공부한다는 손씨는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서 대법원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손씨를 싣고 한강대교를 건너온 150번 버스가 다시 한강대교를 넘었다. 이번에는 무직 이영록(38)씨가 탔다. 큰 비닐가방 두 개를 든 이씨가 현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작금의 경제 현실에는 희망이 없어요. 인터넷을 보니까 요즘 청년들을 ‘삼포세대’라고 부른대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이 43%라는데, 포기정신이 사회정신이 되어 버린 거지.” 7~8년 전 잠깐 직장생활을 하곤 계속 일 없이 지낸다는 이씨는 노량진 피시방에서 시간을 때우다 버스를 탔다. 서울교통정보센터 누리집(www.bus.go.kr)에서 막차 시간을 꼭 챙긴다는 이씨는 정작 막차 시간까지 무료한 하루를 보냈다.
막차 시동을 끌 땐 어떤 느낌이 있다
밤이 깊어질수록 도시는 빛을 잃고 어둠을 얻었다. 한강변을 달리는 자동차 불빛만 점처럼 움직였다. 부서진 주홍색 가로등 불빛이 선처럼 길게 이어졌다. 막차는 선처럼 길게 이어진 도로 위를 달려 다시 도심으로 들어왔다. 일상에 지친 승객들은 계속해서 막차를 기다렸다.
지난 10일 금요일 밤 12시 정각, 광화문에서 강남으로 가는 408번 버스 막차에서 만난 직장인 김아무개(49)씨는 의자에 앉자마자 몸을 축 늘어뜨렸다. 직장에서 ‘미니 회식’을 하고 역삼동 집으로 간다는 김씨에게서 술 냄새가 폴폴 났다. “또 한 주가 갔네요. 직장 다니는 사람 중에 좋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요. 애들 공부시킬 돈 버느라 다니는 거죠. 젊은 기자 양반도 아시겠지만 사람 사는 건 똑같아요.” 김씨는 대학교 1학년인 딸과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교육비가 만만치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가족이 여름휴가를 같이 가본 적이 없다는 김씨가 이번에도 부인이랑 둘이 양평이나 미사리에 가서 매운탕이나 먹고 오겠다고 말했다. “아들 대학 보내면 다른 고민이 생기겠죠. 딸 졸업하면 취직 걱정 할 거고… 또다른 고민들이 생기는 거죠.”
막차는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막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승객 한 명이라도 놓칠까봐, 기사들이 말하는 막차 운전의 철칙은 ‘늦게 출발하는 건 괜찮아도 빨리 출발하면 안 된다’였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대차게 비가 쏟아지던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가는 1000번 광역버스도 예정 시각보다 9분 늦은 새벽 1시39분에 서울역을 출발했다. 24명이 탄 버스 여기저기에서 술 냄새가 났다. 좌석 사이로 보이는 까만 머리들은 빗물과 땀에 젖어 축 처져 있었다. 술에 취한 듯 큰 소리로 ‘집에 가고 있다’고 통화하는 중년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잠든 20대 여성은 버스가 달릴 때마다 고개를 앞뒤로 끄덕였다. 버스는 신촌에서 2명을 태우고 더 빠른 속도로 서울시를 빠져나갔다.
새벽 2시27분 1000번 광역버스는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역에 도착했다. 8명이 우르르 내렸다. 종점까지 남은 정류장이 3개, 남은 사람도 3명이었다. 운전기사 나정훈(43)씨가 거울로 승객의 상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술 취한 손님이 많죠.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적네요. 서울 나가는 길에 타고 잠든 손님이 차고지로 들어갈 때까지 자고 있기도 하고, 어떤 손님은 아예 앞에 앉아서 깨워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세요. 잠든 손님을 보면 차고지까지 가기 전에 대화역에서 깨워 내려드리곤 해요.” 두 달에 한 번씩 막차를 운전한다는 나씨가 막차 운전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막차는 뒷차와의 시간 간격을 조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빨리 달리지 않아도 돼서 여유가 있어요. 대신 술 마시고 무단횡단 하거나 택시 잡으러 도로까지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운전에 신경을 더 써야 하고요.”
새벽 2시33분 버스가 고양시 대화동 차고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기지개를 편 운전기사는 돈통을 꺼내 사무실에 갖다놓았다. 차 안에 쓰레기가 버려졌는지 둘러보면서 창문 커튼을 묶고 시동을 껐다.
“막차 시동을 끌 땐 느낌이 있어요. 오늘도 사고 없이 잘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거요. 아무래도 막차 운전은 손님을 집에 모셔드리는 보람이 다르죠.”
새벽 3시25분, 회사 동료와 근처 가게에서 우동 한 그릇을 비운 그는 자신의 붉은색 아반떼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김포 집으로 떠났다. 그의 막차를 탄 마지막 손님의 긴 하루도 그때서야 끝났다.
고양/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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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떠나도 빨리 떠나지 말것!
그래도 막차를 놓친다면
첫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밖에 홀로 남아 빛나는 그곳은 버스정류장이었다. 7월31일 밤 12시가 넘은 시각, 아직 집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정류장에 모여들었다. 버스 도착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에 앞으로 올 버스가 ‘막차’임을 알리는 빨간색 글씨가 떴다. 전광판을 힐끗 올려다본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성격이 급한 사람 하나만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버스가 언제 오는지를 바라봤다. 곽재구의 시처럼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잠시 후 402번 버스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새벽 1시15분. 비로소 버스가 두 눈을 반짝이며 달려왔다. 그리고 버스는 입을 벌리고 승객들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삑’ 요금 결제되는 소리가 끊기자, 버스는 다시 ‘부릉’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 꾸벅 졸거나 스마트폰 톡톡거리거나 막차 시간은 도시가 잠드는 시간과 비슷했다. 서울 버스의 막차 시간은 도심 기준으로 보통 밤 11시30분~새벽 1시30분 정도다. 서울의 베드타운 구실을 하는 분당, 일산, 구리, 인천 등 수도권으로 빠지는 광역버스는 그보다 좀 늦은 새벽 1시30분~2시 정도에 도심에서 시외로 떠난다. “1990년대 중반쯤 분당, 일산으로 가는 심야좌석버스가 처음 생겼어요. 도심에서 시외로 늦게 퇴근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봐주고 ‘총알택시’나 ‘나라시’(자가용 영업)를 근절하자는 취지에서였죠. 새벽 2시까지 차고지에 도착하는 걸 심야버스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막차가 더 빨리 끊기지 않았을까요?”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도시가 커지고 시민들의 퇴근이 늦어지다 보니 막차시간도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것이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에서 20여년을 일한 김난규 계장의 설명이다. 평소 별생각 없이 타던 버스 막차를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니, 막차란 굉장히 독립된 공간이었다. 광화문에서 서울역, 남산을 지나 강남으로 가는 402번 버스 막차 승객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혼자만의 방에 있는 듯 행동했다. 남자 12명, 여자 2명의 승객은 졸거나, 창 너머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톡톡거렸다. “빈 의자들 너머 비죽 튀어나온 검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의자들에 가려져 얼굴과 몸이 전혀 보이지 않아 가발이라도 걸쳐 놓은 것 같았다.” 2010년 발표된 소설가 김숨의 단편소설 <막차>가 묘사했듯이, 버스 안에선 스산함이 맴돌았다. 약속이나 한듯 서로에게 무심했으며 슬쩍슬쩍 스치는 눈빛에서 피로함이 날카롭게 부딪혔다. 몇 번을 주저하다 용기를 냈다. 옆자리의 승객이 말을 받아 주었다. 대리운전 기사 전영식(54)씨였다. 전씨는 밤 12시30분에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서울 종로까지 오는 3만원짜리 ‘콜’을 잡았다가 이제 경기도 신갈의 집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집 근처로 가는 콜 잡으려고 기다리는데, 어려우니까 일단 집 쪽으로 이동하면서 콜이 오나 기다리는 거예요. 막차요? 매일 타죠.” ‘띵’, ‘띵’ 핸드폰에서 콜이 뜨는 알림음이 계속 울렸다. 앞에 앉은 중년 남성 4명도 대리운전 기사였다. 그들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콜을 잡고 있었다. 전씨는 “오피스텔 두 채의 분양이 엎어지면서 내가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난 뒤 대리기사 일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건설 컨설팅업체를 개업해 낮에는 전화상담을 주로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월 200만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곧 제대하는 21살 막내가 복학하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컨설팅 사업이 자리를 못 잡았다는 전씨의 말을 듣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남산을 지나 한강을 건넜다. 새벽 1시46분, 전씨는 신갈까지 가는 광역버스 9408번 막차를 타야 한다며 강남대로에서 서둘러 내렸다. 대리기사는 막차의 ‘우량 승객’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막차는 ‘삶’ 자체였다. 지난 14일 같은 시각, 같은 버스에서 만난 대리기사 이영철(49)씨에게도 막차는 ‘일터’였다. 버스에서 내린 이씨가 신사역 정류소 의자에 앉아 말했다. “우리는 앱(애플리케이션)을 보지 않고도 막차 시간을 다 알고 있죠. 환승해서 타야 하니까. 막차 놓치면 편의점이나 은행 인출기 앞에서 그냥 앉아 있는 거예요. 첫차가 올 때까지.” 자신이 운영하던 무역회사와 유흥업소가 차례로 망한 뒤 그는 2003년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막차 타고 무슨 생각하냐고요? 아무 생각 없어요. 이 일은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매일 현찰 들어오니까 한번 발 들이면 그만둘 수가 없고요, 발전이 없어요. 외로운 직업이죠.”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가는 1000번 광역버스 안의 모습. 고양/최우리 기자
지난 15일 새벽, 서울 중구 남대문로 와이티엔(YTN) 건물 앞 버스정류소 전광판에 막차 도착시간이 적혀 있다. 고양/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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