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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양지로 나온 ‘포르노’…“계급장 떼고 열심히봤다”

등록 2012-04-22 19:38수정 2012-04-23 10:46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21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예술문화대학에서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 포르노’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고 있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21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예술문화대학에서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 포르노’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고 있다.
건국대서 교수·작가·의사·목사 등 참여 속 학술대회
기술진화·규제 열띤 토론
진화생물학·문학·법학자 등 다양한 학문 전공자들이 모여, 음지에 묻혀 있던 포르노를 학문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진지한 실험을 시도했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는 지난 21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예술문화대학에서 2012년 상반기 학술대회 ‘포르노를 말한다’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소설가와 철학자까지 포함한 8명의 연구자가 6개월 동안 진행한 포르노에 대한 ‘학제적 연구’ 결과가 발표됐고, 의사·목사 등 20여명의 청중이 참여해 열띤 토론도 벌어졌다.

급속히 진화하는 포르노 기술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연구자들은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진화론·과학철학전공)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엄청나게 진화한 포르노 밈(문화적 자기복제자)이 인간의 두뇌를 숙주로 삼고 갈취하는 단계에 이르러, 포르노의 수혜자는 더이상 인간이 아닌 포르노 자신이 됐다”고 진단했다. 김운하 소설가는 “앞으로 30년이 지나 실제로 성관계를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포르노 기계가 완성되면,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분열돼 포르노 세계에서 떠돌며 모든 욕구를 즉각 해소하는 수동적이고 우울한 동물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자들은 포르노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법철학자인 건국대 서윤호 연구원은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포르노를 보는 시대임에도 우리나라의 법률은 지나치게 형법적 규제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미 법을 주된 규제 수단으로 사용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된 만큼 용인할 수 없는 고문·아동포르노 이외에는 향유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페미니즘 연구자인 경희대 이명호 교수(영미어학)는 “포르노에서 여성에게 폭력이 행해지는 것 자체가 모든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법적 규제와 함께 여성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그리는 대안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몸문화연구소는 자살·폭력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주제를 다루면서, 청소년을 위한 몸의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는 등 몸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는 학문활동을 벌여왔다. 연구소장인 건국대 김종갑 교수(영문학)는 “한국 사회에서 포르노가 엄청나게 소비되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이를 학문적으로 개념화하고 논증하는 시도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상아탑에서 내려다보는 고고한 자세가 아니라 교수라는 계급장을 떼고 동시대인으로서 얘기하기 위해 연구자들 모두 포르노를 열심히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는 사회학적으로 통계를 내고 사례를 연구하는 실증적인 접근이 부족해 앞으로 이 부분을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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