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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파출소 앞 보드게임방 알고보니 ‘하우스’

등록 2012-04-02 19:09수정 2012-04-02 22:34

기자가 게임을 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보드게임방에서 손님들이 불법 도박을 하고 있다. 사진은 업주가 자신의 업소 누리집에 올려놓은 것이다.
기자가 게임을 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보드게임방에서 손님들이 불법 도박을 하고 있다. 사진은 업주가 자신의 업소 누리집에 올려놓은 것이다.
압구정 ‘하우스’ 들어가보니
소개자 이름 대야 입장 가능…시계 정각마다 수수료 떼 가
환전 등 복잡한 과정 거치게…2년간 단속실적 전혀 없어
한 지인한테서 서울 강남 지역의 상당수 보드게임(체스같이 판 위에서 말이나 카드를 놓고 규칙대로 진행하는 게임)방이 ‘하우스’(불법 도박장)로 운영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설마 그럴 리가’라고 생각했다. 바로 길 건너편에 파출소가 있는 도심 대로변에서 불법 도박 시설이 버젓이 영업중이라는 게 잘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일 밤 10시, 하우스 출입 경력 4년차라는 이광수(가명)씨와 함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지하 보드게임방을 찾아가봤다. 소개제로 운영되는 이곳에서 게임을 해보기는 이씨도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씨가 카운터 직원에게 아는 친구의 이름을 대자, 직원은 곧바로 게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줬다.

보드게임방 안에는 20명가량이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10명쯤 앉을 수 있는 카드게임용 테이블 4개가 놓여 있는 벽엔 “현금 거래 절대 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게임 시작 전 카운터 직원이 현금을 칩으로 바꿔줬다. 법으로 금지돼 있는 행위다. 직원은 경찰이 들이닥쳤을 경우를 대비해 종이 더미 안에 숨겨둔 쪽지에 회원 아이디와 바꿔준 액수를 적었다. 10만원을 1000원짜리 회색 칩과 5000원짜리 붉은색 칩으로 바꿔 자리에 앉았다.

이곳에서 하는 게임은 ‘텍사스 홀덤’(Texas Hold’em)이다. 홀덤은 포커 게임의 한 종류로 가장 높은 배열의 카드 5개를 만드는 사람이 이긴다. 한 게임에 돈을 무제한 걸 수 있는 사행성 짙은 게임으로 세계 도박 경기의 주요 종목이기도 하다.

칩을 걸지 않고 계속 죽으면 의심받으리라는 생각에 딱 한 번만 돈을 걸었다. 20분 동안 계속 죽던 중 이윽고 ‘킹’과 ‘에이스’ 카드가 들어왔다. 약간 떨리는 손으로 소심하게 7000원을 걸었다. 다른 사람은 패가 안 좋았는지 모두 죽고, 기자와 30대 직장인만 남았다. 상대방이 판돈을 2만원으로 높이는 바람에 똑같이 판돈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칩을 거듭해서 내자 지금 얼마를 내고 있는지, 판돈이 얼마 깔렸는지 등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 결국 5장의 카드가 테이블에 다 깔리고 양쪽이 카드를 개봉했다. 기자는 에이스 페어(두 장)였고, 상대는 퀸 페어였다. 이겼다. 테이블 위의 칩을 두 손으로 끌어모을 때 왜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우스에선 각종 명목으로 수수료를 떼 큰 수익을 남겼다. 시계가 정각을 가리키자, 딜러가 타임비라며 2000원씩 칩을 거뒀다. 게임을 끝내니 카운터에서 다시 테이블비라며 3000원을 내라고 했다. 그 뒤 환전 과정에서 다시 수수료 10%를 뗐다. 이날 딴 8만원 가운데 2만5000원(30%)을 하우스에서 가져갔다. 이씨는 “하우스에선 업주가 하루에 700만~1000만원씩 번다”고 했다.

이곳에선 경찰 조사에 대비해 환전 작업을 복잡하게 했다. 딴 칩을 환전하려면 이 보드게임방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포커 사이트에 들어가 환전상에게 쪽지를 보내야 했다. 이어 환전상의 안내대로 우선 캐릭터 18만원어치를 사서 게임머니로 바꾸고, 환전상과 같이 게임을 하면서 게임머니를 다 잃어줬다. 곧 수수료 10%를 뗀 돈이 계좌에 들어왔다.

이씨는 지난 4년간 강남 일대의 하우스만 해도 10여곳 넘게 가봤다고 했다. 이씨는 “일부는 오피스텔에 차려진 불법 도박장이었지만, 대다수는 합법적인 보드게임장으로 신고해놓고 불법 영업을 하는 곳”이라며 “하우스에서 왕년에 이름을 날렸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과 아이돌 가수들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업주들은 어떻게 강남 한복판 대로변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일까? 이씨는 업주들이 경찰한테 돈을 줘서 그렇다고 했다. 이씨는 “내가 아는 사장이 나한테 ‘관작업(경찰 매수)을 해놔서 경찰이 출동하기 전에 직원한테 연락을 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4년간 하우스에 경찰이 온 것은 4~5번밖에 보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이 와도 손님들에게 ‘돈 걸고 하는 거냐’고 묻고는 몇 사람의 주민등록증만 확인하고 돌아가지 카운터를 뒤져 장부를 찾는 등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에도 단속 실적이 없었고, 보드게임방이 하우스로 운영되는 수법은 잘 몰랐다”며 “관련 정보를 주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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