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살해 뒤 8개월 방치’ 고교생 국민참여재판
검사-변호인 공방
“심신미약 상태 증거없어” …“학대탓 성격장애로 범행” 교사·이모도 선처 호소
‘아픔 몰랐다’ 담임 자책에 학생은 고개숙인채 눈물만 법원의 판단
장기간 가혹했던 상황 고려…단기 3년~장기 3년6월형 “장기간 동안 심리적 정신적으로 가혹했던 상황은 소년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점을 고려해 단기 3년~장기 3년 6개월 형을 선고합니다.” 20일 밤 서울 광진구 서울동부지법 1호 재판정. 재판장이 판결을 선고하자 소년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고,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3월 어머니를 살해한 뒤 안방에 시신을 8개월 동안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지아무개(19)군의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인은 이틀간 재판부와 9명의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사는 지군에게 “온정적 판단을 해서는 이런 패륜적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 없다”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최후변론에서 변호인은 “피해자인 지군 어머니를 비롯해 누구도 지군이 중형을 받기를 원치 않는다”며 “지군이 사회로 복귀할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배심원들에게 호소했다. 교복 차림으로 재판정에 나온 지군은 최후진술에서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씻지 못할 죄를 지었지만, 마음만은 다시 태어나 세상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약속하며 눈물을 보였다. 방청석 여기저기에서도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보였다. 재판 과정에서 쟁점은 지군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는지에 모아졌다. 심신미약이란 사건 당시 피고인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검사는 “치료감호소의 정신감정서에서 보듯이 의학적으로 심신미약이라는 현저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지군이 지속적으로 학대당해 어머니에게 저항을 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없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있었던데다, 범행 당시 잠을 못 자고 심하게 체벌을 당해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는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검찰의 주장에 맞섰다. 허찬희 전문심리위원이 지군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소견을 밝히자, 검사가 30분가량 질문 공세를 펴, 윤종구 부장판사(형사11부)가 달아오른 분위기를 가라앉히기도 했다. 증인으로 나온 교사와 가족 등은 서로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지군을 선처해줄 것을 재판부에 간청했다. 지군의 고3 담임교사였던 진아무개씨는 “공부 외에는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한국의 교육 구조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담임이면서도 지군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미리 알고 막지 못한 나 자신부터 교사로서 자격이 있는지 심각히 의심했다”고 자책했다. 지군의 이모는 “언니가 지나치게 아이에게 집착했지만, 죽임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지군에게 일부 불리한 증언을 했지만 결국엔 “조카에게 선처를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군의 아버지 지아무개(53)씨도 “모든 것이 절망에 빠진 아들 옆에 있어주지 못한 저의 잘못”이라고 말한 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통곡해 법정을 숙연하게 했다. 국민참여재판에는 70여명의 방청객이 몰려 20명가량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재판을 지켜봐야 했지만 대다수가 밤늦게까지 방청석을 지키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윤 부장판사는 재판의 쟁점을 짚어주고 국면마다 판단기준을 조언하는 등 재판이 익숙지 않은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도왔다. 판결이 내려진 후 만난 지군의 아버지 지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바라던 판결이 나와 감사하다”며 “아들을 다시 찾은 것같이 기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심신미약 상태 증거없어” …“학대탓 성격장애로 범행” 교사·이모도 선처 호소
‘아픔 몰랐다’ 담임 자책에 학생은 고개숙인채 눈물만 법원의 판단
장기간 가혹했던 상황 고려…단기 3년~장기 3년6월형 “장기간 동안 심리적 정신적으로 가혹했던 상황은 소년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점을 고려해 단기 3년~장기 3년 6개월 형을 선고합니다.” 20일 밤 서울 광진구 서울동부지법 1호 재판정. 재판장이 판결을 선고하자 소년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고,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3월 어머니를 살해한 뒤 안방에 시신을 8개월 동안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지아무개(19)군의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인은 이틀간 재판부와 9명의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사는 지군에게 “온정적 판단을 해서는 이런 패륜적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 없다”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최후변론에서 변호인은 “피해자인 지군 어머니를 비롯해 누구도 지군이 중형을 받기를 원치 않는다”며 “지군이 사회로 복귀할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배심원들에게 호소했다. 교복 차림으로 재판정에 나온 지군은 최후진술에서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씻지 못할 죄를 지었지만, 마음만은 다시 태어나 세상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약속하며 눈물을 보였다. 방청석 여기저기에서도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보였다. 재판 과정에서 쟁점은 지군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는지에 모아졌다. 심신미약이란 사건 당시 피고인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검사는 “치료감호소의 정신감정서에서 보듯이 의학적으로 심신미약이라는 현저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지군이 지속적으로 학대당해 어머니에게 저항을 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없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있었던데다, 범행 당시 잠을 못 자고 심하게 체벌을 당해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는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검찰의 주장에 맞섰다. 허찬희 전문심리위원이 지군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소견을 밝히자, 검사가 30분가량 질문 공세를 펴, 윤종구 부장판사(형사11부)가 달아오른 분위기를 가라앉히기도 했다. 증인으로 나온 교사와 가족 등은 서로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지군을 선처해줄 것을 재판부에 간청했다. 지군의 고3 담임교사였던 진아무개씨는 “공부 외에는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한국의 교육 구조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담임이면서도 지군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미리 알고 막지 못한 나 자신부터 교사로서 자격이 있는지 심각히 의심했다”고 자책했다. 지군의 이모는 “언니가 지나치게 아이에게 집착했지만, 죽임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지군에게 일부 불리한 증언을 했지만 결국엔 “조카에게 선처를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군의 아버지 지아무개(53)씨도 “모든 것이 절망에 빠진 아들 옆에 있어주지 못한 저의 잘못”이라고 말한 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통곡해 법정을 숙연하게 했다. 국민참여재판에는 70여명의 방청객이 몰려 20명가량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재판을 지켜봐야 했지만 대다수가 밤늦게까지 방청석을 지키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윤 부장판사는 재판의 쟁점을 짚어주고 국면마다 판단기준을 조언하는 등 재판이 익숙지 않은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도왔다. 판결이 내려진 후 만난 지군의 아버지 지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바라던 판결이 나와 감사하다”며 “아들을 다시 찾은 것같이 기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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