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2006년 황새울이, 2012년 구럼비가…

등록 2012-03-16 19:14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대추분교 2차 행정대집행이 이뤄진 다음날인 2006년 5월5일 도두리 들판에 군인들이 쳐놓은 철조망과 경고판이 서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대추분교 2차 행정대집행이 이뤄진 다음날인 2006년 5월5일 도두리 들판에 군인들이 쳐놓은 철조망과 경고판이 서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커버스토리
문정현 신부는 강정마을에서
송경동 시인은 철거촌에서…
‘또다른 대추리’를 지키는 그들
“공권력에 맞선 싸움도
함께 꾸는 꿈도 끝나지 않았다”

‘황새울’을 보드랍게 훑고 지나던 바람은 ‘누군가’에겐 이미 잦아든 옛일이다.

2007년 3월24일, ‘가을에 수확이 많은 마을’(대추리)에 935일간 타올랐던 촛불이 꺼졌다. 그해 4월16일 마지막 문화제에서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은 투쟁기록과 함께 대추초교 땅속에 봉인됐다. 그리고 5년이다.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당시 합참의장)에게 ‘황새울의 여명’(당시 작전명은 ‘여명의 황새울’)은 이미 과거다. 2006년 5월4일,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대추리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한 무장병력 투입 작전계획을 보고한 이로 지목된 그에게 대추리는 “더는 할 말이 없는 곳”일 뿐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한-미 동맹과 국가 안보를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추진한 정책”인데 “자신의 이익에 얽매여 군인들을 공격했던 사람들에게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느냐”는 것이다.

 2006년 5월4일 2차 행정대집행이 벌이지는 동안 국방부 헬기가 황새울 벌판을 날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6년 5월4일 2차 행정대집행이 벌이지는 동안 국방부 헬기가 황새울 벌판을 날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리고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 최근 그는 민주통합당 대표로 선출돼 중앙 정치무대로 복귀했다. 국익의 이름으로 대추리를 짓밟은 공권력을 묵인했던 한 전 총리는 ‘그날’에 대해 아직 이렇다 말이 없다. “끈기있게 대화하고 타협한 끝에 (대추리 문제를) 잘 마무리했다”고 한 전 총리를 치하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뜨고 없다.

잊혀진 5년이었다. 하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이 망각의 시간에도 황새울의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 ‘평화바람’(평화운동단체)으로, ‘들사람’(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예술가들 모임)으로 대추리 ‘지킴이’를 자처했던 이들이다. 대추리를 짓밟은 사람들에게 “좋아하지 않는다”(문정현 신부)는 말로 실망감을 표현하든, “민주와 진보를 참칭한 사람들”(진재연 활동가)이라고 비판하든, “반성과 사과 그리고 평등·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새로운 약속을 하라”(송경동 시인)고 촉구하든 매한가지다. 본래 “정치가 세상을 바꿀 거란 기대는 없었던 터”(판화가 이윤엽), 그저 ‘또다른 대추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판으로 달려갈 뿐이다.

새로운 싸움판으로 향하는 건 이들에겐 황새울에 바람 불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군 기지가 있는 전북 군산 오룡동 성당 주임신부로 일하면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소파)의 문제에 주목한 문정현 신부가 미선이·효순이를 위로하는 촛불을 들고,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고, 대추리 주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무장한 세계화’에 맞선다는 측면에서 이 모든 싸움이 대추리의 투쟁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2차 행정대집행 당시 주민과 군경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2차 행정대집행 당시 주민과 군경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그리고 지금, 일흔둘의 노신부는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제주 바닷바람을 맞으며 9개월째 구럼비 마을을 지키고 있다. “국가 안보란 이름으로 개인의 재산과 생명보호 가치를 무시하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은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대추리에서 사라져 가던 현장 문화운동의 가능성을 다시 찾았다”는 송경동과 이윤엽은 ‘파견미술팀’ 등을 통해 예술·문화인들과 함께 용산으로, 홍대 앞(두리반)으로, 명동(마리)으로, 부산(한진중공업)으로, 평택(쌍용차)으로 ‘희망버스’를 달리고 ‘희망텐트’를 세우고 있다. 대추리에서 솔부엉이 도서관을 운영하며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하는’ 마을을 꿈꿨던 지킴이 진재연은 이제 이랜드·기륭전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침묵’하는 이도 있다. 고향 대추리를 지켜달라고 아스팔트에서 호소했던 가수 정태춘이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세상에 대한 ‘외면’이 아니라 또다른 ‘투쟁’이다. “세상은 더 나빠지고 있는데 다들 너무 명랑”한 게 싫어 “민중과 역사를 호도하면서 이룩되는 문명의 위선에 대한 가장 유효한 경멸”(<한겨레> 2월13일치 21면)의 방법으로 노래하지 않는 가수이길 자처한 것이다.

대추리가 이들에게 남긴 것은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이윤엽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마을은 고립됐고 모든 땅은 국방부 소유였지만, 주민과 지킴이들은 그 땅에서 다 같이 농사를 짓고, 마을회관에서 다 함께 식사를 했으며, 싸움도 같이 했다. 힘들었지만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희망감 같은 것도 있었다”고. 송경동은 이를 “새로운 공동체의 실험”이었다고 기억했고, 진재연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주민들과 지킴이가 힘을 모았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대추리는 사라졌지만 시대의 야만과 전쟁과 폭력, 불평등으로 인한 수많은 아픔을 넘는 싸움은 끝난 건 아니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암컷한테 거부당한 수컷 초파리 ‘에이 술이나 마시자’
박근령 “자유선진당 출마…언니 박근혜에게 말 못해”
‘야동’ 꼼짝마…피부색·신음소리 식별해 자동차단
박주영, 2022년까지 병역 연기
정치인들, ‘머리 나쁜’ 새 만큼만 따라 해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1.

검찰, 윤석열 ‘조사 없이’ 내란죄 수사 일단락…앞당겨진 재판 시계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2.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 ‘불허’…오늘 구속기소 전망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3.

[영상] 폭동에 맞서 각양각색 깃발 쥔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4.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단독] 서부지법, 윤석열 구속심사 전 경찰에 ‘보호요청’ 했었다 5.

[단독] 서부지법, 윤석열 구속심사 전 경찰에 ‘보호요청’ 했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