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 안에 있는 ‘스칸디나비안클럽’의 바깥 모습. 내부는 몇 차례 수리공사를 했지만 외관은 1954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모습 그대로다.
한국 최초 뷔페식당 ‘스칸디나비안클럽’ 46년 지켜온 김석환 사장
해병대사령관은 위세를 부리며 주한 미8군사령관과 뷔페식당 특실에 들어섰다. 미8군사령관을 대접하러 왔다고 했다. 방 안은 음식을 차리기엔 좁았고, 50여가지 넘는 음식은 홀에 있었다. 10분, 20분 시간이 흘렀는데 음식이 오질 않았다. 해병대사령관은 얼굴이 벌개져 총지배인을 불렀다. 벼락 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음식을 왜 방으로 안 갖다주나. 나가서 일반인들과 같이 먹으라는 거냐. 내 얼굴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권총을 꺼내 지배인을 향해 겨누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납니다.”
58년 외국인 식당으로 출발
80년대 초까진 회원제 운영
박정희·김영삼 등 명사 북적
이젠 15년도 더 지난 옛일이다. 그날 사건은 모두 동등하게 한자리에서 덜어먹는 뷔페 식문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특권의식에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하지만,1958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뷔페식당 ‘스칸디나비안클럽’(서울 을지로 6가)의 김석환(77)사장에겐 어제 일처럼 선연하다. 평생 함께 한 뷔페식당에 얽힌 기억들은 한국현대사 인명대백과사전처럼 이 명소를 찾았던 사람들 이야기로 여백이 없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그는 광주고를 졸업한 뒤 상경했다. “가정교사도 하고 작은 식당도 했지만”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건달로 지내다가” 당구장에서 만난 미국대사관 직원 추천으로 대사관 지하 스낵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60년대 초니깐, 좋았어요. 초콜릿도 있고 껌도 있고. 갖다 달라고 조르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몇 해 못 넘겨 “민족적인 무시”를 못 참고 뛰쳐나온 그는 1966년 서울 국립의료원(현 국립중앙의료원) 안에 있던 ‘스칸디나비안클럽’에 웨이터로 취직했다. “남자가 접시를 든다는 게 그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어요.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렸어요. 하지만 좋았어요.” 그는 90년대 총지배인을 거쳐 지금의 사장 자리에 올랐다.
클럽은 원래 한국전쟁 당시 의료지원을 해준 스칸디나비아 3국(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의료진들의 구내식당이었다. 1968년 의료진이 철수할 때까지 클럽의 북유럽 음식은 이들의 향수병을 달래주던 유일한 처방전이었다. 의료진을 따라온 4명의 북유럽 요리사들은 바이킹 후예답게 북유럽 분위기 물씬한 식당을 꾸렸다. 50년대 상상하기 어려웠던 첨단 냉장·냉동실을 갖췄고, 모든 식재료는 본국에서 가져와 조리했다. 소 간을 으깨 구운 리버페이스트, 6개월 이상 소금과 식초 등에 절인 청어 요리, 엔초비그라탱 등. 초창기 20가지도 넘던 북유럽 음식은 이제 10여가지로 줄었지만 만드는 방식은 옛적 그대로다. “처음엔 비위 안 맞는다고 뱉어버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곧 독특한 맛으로 인기를 끌게 됐다.
클럽은 80년대초까지 회원제로 운영했다. 당대 고관대작들과 재벌총수들이 주로 들락거렸다. “재벌총수들은 외국 손님이 오면 꼭 찾았어요. 청와대 장관회의도 여기서 할 정도였죠.” 이곳을 즐겨 찾은 정관계·재계 명사들은 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 정일권, 김종필씨 등 정치인들을 비롯해 임병직 전 유엔대사, 손원일 전 국방장관, 백선엽 장군,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 등 손꼽기 힘들 정도다. 당대 미식가였던 정일권 전 총리는 “살다시피”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시절 고교 동창회를 여기서 했다. 미스코리아대회 참가자들과 온 기업인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잊지 못한다. “70년대 중반일 거예요,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브리핑하는데 세종로 정부청사로 음식을 가져오라는 겁니다. 밤 새며 준비해갔는데 박 대통령이 양식으로 조리된 엔초비(멸치)를 대가리만 뚝 잘라 드시는 겁니다. 제대로 드실 줄 아는구나 했죠.” 엄지손가락 들고 맛을 극찬한 박 전 대통령 앞에서 장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그는 당시를 떠올렸다. “고마워하는 손님 많은데…”
운영난에 식당 존립 불투명
김사장은 5월 말 떠나기로
좋은 시절도 한때, 70년대 특급호텔들이 뷔페 식당을 속속 열면서 클럽도 빛을 잃기 시작했다. 88올림픽 뒤 국력이 커지자 허기를 풀려는 욕망과 맞닿았던 뷔페식은 더 이상 매력적인 먹거리가 아니었다. 우후죽순 문을 연 뷔페 식당들과도 경쟁해야 했다. 2003년엔 급성호흡기전염병 사스의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사스 환자가 입원한 바로 옆 국립의료원을 취재해간 언론사 보도 사진에 클럽 간판이 함께 들어갔다. 그 불똥으로 예약 취소가 줄을 이었다.
한때는 강북 3대 돌잔치 명소로도 유명세를 탔지만, “최근 5년간 급등한 물가”로 지금은 임대료도 못 내는 처지다. 김씨는 5월말이면 청춘을 보낸 이곳을 떠날 참이다. 임대주인 의료원쪽은 “시설 보수를 계획중”이라며 “그 뒤 식당을 유지할 지, 다른 시설이 들어설 지는 정해진 것은 없다”고 전했다. 김씨는 옛 단골들 이름이 꼬깃꼬깃 적힌 낡은 수첩을 꺼내들고 “아직까지 지켜줘서 고마워하는 손님들이 많은데”라고 아쉬워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김태호 PD “파업 동참 이유는 가슴이 울어서…”
■ 새누리당도 ‘쇄신’ 부족하지만, 민주당은 더 못한다
■ “음식 안내온다 총 겨눌때 식은땀”
■ 나경원, 고소는 하지 말았어야
■ ‘한국 아이들 부러워할’ 호주의 선진교육 현장
80년대 초까진 회원제 운영
박정희·김영삼 등 명사 북적
1950년대 말 당시 국립의료원 안에 있던 ‘스칸디나비안클럽’의 한국인과 북유럽 직원들.
클럽은 80년대초까지 회원제로 운영했다. 당대 고관대작들과 재벌총수들이 주로 들락거렸다. “재벌총수들은 외국 손님이 오면 꼭 찾았어요. 청와대 장관회의도 여기서 할 정도였죠.” 이곳을 즐겨 찾은 정관계·재계 명사들은 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 정일권, 김종필씨 등 정치인들을 비롯해 임병직 전 유엔대사, 손원일 전 국방장관, 백선엽 장군,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 등 손꼽기 힘들 정도다. 당대 미식가였던 정일권 전 총리는 “살다시피”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시절 고교 동창회를 여기서 했다. 미스코리아대회 참가자들과 온 기업인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잊지 못한다. “70년대 중반일 거예요,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브리핑하는데 세종로 정부청사로 음식을 가져오라는 겁니다. 밤 새며 준비해갔는데 박 대통령이 양식으로 조리된 엔초비(멸치)를 대가리만 뚝 잘라 드시는 겁니다. 제대로 드실 줄 아는구나 했죠.” 엄지손가락 들고 맛을 극찬한 박 전 대통령 앞에서 장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그는 당시를 떠올렸다. “고마워하는 손님 많은데…”
운영난에 식당 존립 불투명
김사장은 5월 말 떠나기로
■ 김태호 PD “파업 동참 이유는 가슴이 울어서…”
■ 새누리당도 ‘쇄신’ 부족하지만, 민주당은 더 못한다
■ “음식 안내온다 총 겨눌때 식은땀”
■ 나경원, 고소는 하지 말았어야
■ ‘한국 아이들 부러워할’ 호주의 선진교육 현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