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아직도 현재진행형”
1945년 7월24일 저녁 7시. 해가 완전히 기울지 않은 탓인지 후덥지근한 날씨에 등줄기에는 땀이 가득 배어났다. 서울 태평로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 안은 친일파 ‘거두’ 박춘금이 만든 대의당 주최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중국, 만주국, 조선 등 일제가 발을 디딘 곳마다 피어난 친일 인사들이 막바지에 이른 전쟁을 독려하는 시국강연이 이어졌다. 밤 9시. 드디어 박춘금이 단상에 오를 차례다. 유만수 동지가 공사장 발파 인부로 잠입해 어렵게 빼낸 다이너마이트로 만든 사제폭탄 두 개가 손 안 가득 들어 왔다. 동지들이 머리를 맞대고 며칠에 걸쳐 만든 명주실 심지에 불을 붙였다. 몇 번이고 실험을 한 터였다. 정확히 3분 뒤면 폭탄은 터진다. 동지들과 함께 강연장을 뒤로 하고 부민관을 빠져 나왔다. 잠시 뒤, 입 안 가득 고인 침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한밤의 정적을 뚫고 거대한 폭발음이 서울을 깨웠다. 19살 청년 조문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친일파 거두 박춘금 테러, 거액의 현상금 걸려
해방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기에 일어나 꺾일 줄 모르는 독립의지를 나라 안팎에 떨친 부민관 폭파 사건이 24일로 60돌을 맞는다. 당시 부민관 폭파 사건의 주역이었던 조문기(79)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22일 “부민관 폭파 사건은 독립운동 전체 역사 속의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며 애써 의미를 낮췄다.
그러나 폭파 사건의 파장은 컸다. 일제는 철저히 ‘보도관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쾌거’는 입을 타고 전해졌고 일제는 거금 5만원을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그는 “정작 나조차도 아직까지 부민관 폭파 사건으로 현장에 있던 친일파들이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고 있다”며 “일본 쪽 기록을 찾으면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사’의 준비과정이 워낙 극적이기 때문일까. 부민관 폭파 사건은 끊임없이 인용되고 차용됐다. 독립운동을 다룬 텔레비전 드라마나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록이 없는 탓인지 사실은 뒤틀리고 진실은 뒤로 숨었다. “몇 년 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이 폭탄을 건네주는 것으로 나와. 유 동지가 얼마나 고생하며 구한 폭탄인데 말이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내가 나오긴 하는데, 있지도 않은 여성 동지를 죽게 했다고 내가 주인공한테 엄청 혼나더라고.” 그는 자신의 일이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수많은 독립 운동사들이 대부분 묻혀 버렸다”고 아쉬워 했다.
박춘금은 살아남아 현상금에 2만원을 보탰다. 그는 해방 직후 박춘금을 찾아갔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조선말이 서투르니 일본말로 대화를 나누자고 하더라고. 기가 막혔지.” 그런 박춘금의 송덕비가 일본인에 의해 92년 경남 밀양에 세워졌다. 민족문제연구소 식구들이 비를 철거하자고 목소리를 높혔지만, 그는 “지역 시민단체들과 지역민들의 의견을 모아 일을 처리하자”고 충고했다. 비는 3년 전에 뽑혔다.
그는 “독립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독립운동사는 독립운동가의 역사가 아니다. 미래를, 후손을 위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과거사 청산은 친일파 청산부터 첫 발을 내디뎌야 하고, 친일파 청산이 안 된 지금의 한국사회는 여전이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벌이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은 사전에 박힌 글자 하나하나가 진실을 밝히는 금문자가 된다. 그는 올해 초 <슬픈 조국의 노래>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모르겠지만 인세는 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쓰라고 했지.”
24일 서울시의회 앞 항거 60돌 기념식 그는 지금까지 3·1절이나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 광복 60돌을 맞아 성대히 거행될 올해 8·15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초대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친일 청산도 제대로 못한 마당에 그 자리에 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신념 때문이다. 여든 해를 바라보는 신산한 삶을 지탱해온 힘이기도 하다. 폭파 사건 동지였던 유만수 선생은 30여년 전 작고했다. 강윤국 선생은 거동을 못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다고 한다. 24일 오전 11시에는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서 조촐한 60돌 기념식이 열린다.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4일 서울시의회 앞 항거 60돌 기념식 그는 지금까지 3·1절이나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 광복 60돌을 맞아 성대히 거행될 올해 8·15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초대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친일 청산도 제대로 못한 마당에 그 자리에 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신념 때문이다. 여든 해를 바라보는 신산한 삶을 지탱해온 힘이기도 하다. 폭파 사건 동지였던 유만수 선생은 30여년 전 작고했다. 강윤국 선생은 거동을 못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다고 한다. 24일 오전 11시에는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서 조촐한 60돌 기념식이 열린다.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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