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 서울대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 도봉구 도봉숲속마을 대회의실에서 열린 의료공급체계 혁신을 위한 심포지엄 ‘다시,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다시, 한국의료의 길을 찾는다
한겨레사회정책연-전국보건의료노조 워크숍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해 11월3일부터 지난 2월14일까지 4개월간 “다시,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는 주제 아래 ‘의료공급체계 개편과 혁신을 위한 연속기획 워크숍’을 공동개최했다. 한국 의료기관의 올바른 좌표를 설정하고 ‘대한민국 의료기관 비전 2013~17’을 마련하기 위한 대장정이었다. 특히 이번 워크숍은 전국의 중대형 병원 현장을 순회하며 25명의 발제, 90여명의 지정토론, 참가자 550여명이란 기록을 낳은 가운데 총 17회에 걸쳐 진행됐다. 마무리 격인 지난 14일의 종합토론회를 지상중계한다. 이번 워크숍은 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가 후원했다. 사회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발제 김용익 서울대 교수 토론 임종한 인하대 교수, 이진석 서울대 교수, 임준 가천의대 교수, 주영수 한림대 교수, 문정주 국립중앙의료원 팀장
김용익 교수의 정책 제언
우리 주위에 널린 것이 의원이요 병원이다. 하지만 자신의 질병 치료를 믿고 맡길 만한 의원이나 병원은 찾기가 쉽지 않다. 건강보험 하나로 진료비 걱정이 없고, 어느 병원에나 믿고 찾아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서울에서나 지방에서나 똑같이 믿음직한 병원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일까? ■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지 의심해야 하는 국민들
우리나라의 2008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병상 수는 5.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52개)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병상 수가 계속 늘고 있는 나라다. 각종 고가의 의료장비도 오이시디 평균의 2배가량이다. 2010년 기준 인구 100만명당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보유 대수는 37.1대로, 오이시디 평균(19.2대)의 2배가량이다.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도 우리나라가 인구 100만명당 19대로 오이시디 평균(10.4대)의 약 2배다.
고액진료비로 파산않게
환자 부담 크게 낮춰야
병원이 경제적으로 운영되려면 일정 정도의 인력, 병상, 시설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300병상 이상을 갖추고 있어야 경제적으로 병원이 운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입원 의료기관의 97.7%가 300병상 이하다. 합리적인 병원운영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고가의 의료기기를 앞다퉈 들여와 과잉진료를 하거나 건강보험에 부당청구를 하는 등의 방법을 쓴다. 약품 및 치료재료 구입에서 리베이트의 유혹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동네의원에도 입원실이 있고 대형병원에도 외래 진료실이 있어서 의원·중소병원·대형병원이 모두 같이 경쟁하는 체제다. 국민들 입장에선 병원이 돈벌이를 위해 진료할 뿐 환자를 위해 진료한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다.
공공병원 100개로 확대
지방에도 좋은 병원 배치
신뢰할 만한 의사를 구하지 못한 환자들은 대형병원으로 이동한다. 대부분 대학병원인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수입 비중은 2002년 21.7%에서 2010년에는 28.7%로 높아졌다. 대학병원의 외래에 한번이라도 가보면 1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1~2분가량 진료받고 나오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빅5’에 속하는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이 2010년 기준 전체 상급종합병원 진료비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2005년(30%)에 견줘 5년 만에 5%포인트나 올랐다. 이와 반대로 건강보험 지출 가운데 동네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43.2%에서 29.5%로 크게 줄었다. 동네의원 수가 크게 줄어든 것도 아닌데 전체 수입은 줄었으니 동네의원 의사들은 ‘악’ 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지방 환자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강화되면서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 격차도 심각해지고 있다. 치료를 위해 수도권 병원에 입원해 진료받은 지방 거주 환자는 2003년 170만명에서 2010년 241만명으로 늘었다. 엄청난 시설과 인력이 있는데도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 걸린 환자 10명 중 6명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질병 치료 부담도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수년째 6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건강보험에서 소외된 층도 153만가구(지역가입자의 20%)에 이른다. ■ 환자 연간 진료비 한도 100만원으로, 공공병원도 100개로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크게 낮춰야 한다. 진료비 부담이 큰 입원진료비는 본인부담분을 10% 정도로 낮추어야 국제적인 수준에 맞출 수 있다. 암 등 큰 병에 걸려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고액진료비는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한해 진료비가 총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본인부담상한제를 실시하는 것이 건강보장을 위해서나 빈곤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조처다. 국민들이 건강보험을 질병의 안전판으로 생각한다면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국민의 70% 정도가 이미 가입해 있는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나면 이에 연동해 보험료를 인하해야 한다.
소득 수준이 매우 낮아 건강보험 가입이 어려운 계층을 위해 의료급여 수급 범위를 크게 확대해야 하고, 소득이 불안정해 건강보험료를 낼 수 없는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건강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려면 현재 건강보험에서 지급해 주지 않는 모든 비급여진료를 급여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에서 비급여진료를 계속 늘려나갈 것이고 환자의 부담은 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병의원이 보험진료만으로 운영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보험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과 병원 간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두고 성립시켜야 할 교환조건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 있다. 공공병원 확대와 민간병원의 공공성 강화이다. 현대적인 시설과 실력 있는 의료진을 갖춘 공공병원이 의료제공의 기본을 이루도록 하는 건 모든 국가의 의무이다. 과잉진료도 과소진료도 없이 환자에게 필요한 만큼 치료해 주는 표준진료, 건강증진·질병예방 서비스를 치료와 함께 동시에 제공해 주는 공공병원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국민건강도 지킬 수 없고 진료비 앙등도 막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이 100개는 돼야 의료공급체계가 환자들을 위해 작동할 것이다.
비급여진료, 급여에 포함
병원 보험수가는 현실화
민간병원에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민간병원이라도 건강증진·질병예방 등 공공적인 서비스를 하고자 하면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민간병원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자 한다면 시설비 지원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민간병원도 공공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물론 민간병원은 경영을 투명하게 해야 하고, 지배구조도 민주적으로 바꿔야 한다. 공급과잉된 병원 수를 줄이려면 중소병원 퇴출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중소병원이 문을 닫을 경우 투자한 만큼은 되찾아 갈 수 있도록 국가가 임시조처를 취해주어야 한다. 합리적인 퇴출경로를 마련해 주는 것이 국민들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 중소병원의 난립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되며, 병원 규모를 300병상 이상으로 한정하는 쪽으로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 의료자원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지방마다 서울만큼 좋은 병원이 골고루 배치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에 균형적인 의료자원이 갖춰지지 못할 경우 환자의 수도권 집중현상은 영원히 막을 수 없다.
“건보 보장성 80~90%까지 끌어올려야”
“저소득층 중증질환땐 휴업급여 제공을” 토론서 무슨 의견 나왔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환자들을 위한 진료 및 질병 예방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공공병원을 크게 늘리고 이를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토론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또 공공병원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 추상적인 확충 목표가 아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해야 하며,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혜택이 확대되는 청사진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정주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센터 팀장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로 많은 국민들이 공공병원을 공권력의 연장으로 여기기도 한다”며 “특히 지방의 공공병원은 공중보건의사나 계약직 의사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도 “과거에도 정치권에서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밀어붙여도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가 약해 정책 실행이 쉽지 않았다”며 “국민들은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공공병원이 확충돼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 정말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이익보다는 환자들의 건강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병원 혹은 비영리병원 모델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광범위한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공공병원이 환자들을 위한 높은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는 모델이 될 수 있음은 우리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국립암센터나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경우 병상당 전문의 배치 수는 보통 종합병원의 1.4~2.6배로 훨씬 많다. 간호사 수도 마찬가지인데, 국립암센터나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경우 국내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병원이 적자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다. 환자도 이들 병원을 선호해 다른 대학병원들처럼 대기하는 환자들이 밀려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같은 공공병원이라도 지방의료원의 의료 인력은 의사나 간호사 수 모두 전체 병원들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 팀장은 “공공병원에서 의료인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의사나 간호사를 양성해야 한다”며 “아울러 주민들이 지방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의 운영에 참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로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공공병원의 병상은 늘리면서 이미 적정 수준을 넘은 민간병원의 병상은 줄여야 하는 과제가 남은 셈”이라며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10년 정도의 장기 계획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공공병원의 병상 확대 계획을 내놓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또한 환자들이 직접 내는 진료비 부담을 크게 줄이기 위해 유럽의 많은 나라처럼 건강보험 보장성을 80~9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특히 가계가 의료비로 파탄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치료비에 한정하지 말고 종합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준 가천대 교수는 “저소득층의 경우 중병을 앓게 되면 직장을 쉬거나 그만두는 등 소득이 없어져 치료비를 댈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질병으로 직장을 못 다니게 될 때 휴업급여를 제공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수목적 병원과 관련해 주영수 한림대의대 교수는 “산재병원, 보훈병원은 수익을 내는 곳이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전문가-병의원 종사자 현장서 문제 진단
90여명 4개월 17차례 토론해 해법 제시 ‘워크숍 대장정’ 어떻게 했나 이번 워크숍은 4개월의 정책 대장정이었다. 17차례에 걸쳐 모두 25명의 전문가가 발제를 하고 90여명의 교수·현장 전문가·각급 병원 노사 대표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번 행사를 총괄기획한 나순자(사진) 전 보건의료노조위원장은 “무상의료와 공공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를 접목하기 위해 워크숍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무상의료가 실현된다 해도 환자의 수도권병원 쏠림현상 때문에 (의료공급체계의 혁신이 없으면) 지방병원과 중소병원은 여전히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고, 지역의료의 균형발전도 이뤄질지도 의문”이니, “무상의료 시대를 준비하는 것과 함께, 의료공급체계 즉 의료기관의 혁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논지다. 매회 워크숍은 △방문한 의료기관에서 참가자들이 2~3시간 동안 병의원 현장 곳곳을 돌면서 의료시설과 지역에서 해당 병의원이 갖는 역할과 특징을 파악한 뒤 △병원 종사자와 관련 전문가들이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문제점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이번 워크숍은 또 보건의료분야에서 처음으로 병원 노사 양쪽 관계자와 관련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해 현장을 돌면서 의료서비스 혁신방안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끈다.
방문 의료기관은 지방의료원·국공립대병원·사립대병원·재활요양노인병원·민간 중소병원·산재병원·정신병원·원자력의학원·적십자혈액원·보훈병원 등을 총망라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워크숍에서 제출된 다양한 정책 제안들을 종합 재구성해 ‘대한민국 의료기관 비전 2013~17’이란 별도의 책자를 마련할 예정이다.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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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교수의 정책 제언
우리 주위에 널린 것이 의원이요 병원이다. 하지만 자신의 질병 치료를 믿고 맡길 만한 의원이나 병원은 찾기가 쉽지 않다. 건강보험 하나로 진료비 걱정이 없고, 어느 병원에나 믿고 찾아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서울에서나 지방에서나 똑같이 믿음직한 병원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일까? ■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지 의심해야 하는 국민들
우리나라의 2008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병상 수는 5.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52개)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병상 수가 계속 늘고 있는 나라다. 각종 고가의 의료장비도 오이시디 평균의 2배가량이다. 2010년 기준 인구 100만명당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보유 대수는 37.1대로, 오이시디 평균(19.2대)의 2배가량이다.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도 우리나라가 인구 100만명당 19대로 오이시디 평균(10.4대)의 약 2배다.
고액진료비로 파산않게
환자 부담 크게 낮춰야
병원이 경제적으로 운영되려면 일정 정도의 인력, 병상, 시설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300병상 이상을 갖추고 있어야 경제적으로 병원이 운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입원 의료기관의 97.7%가 300병상 이하다. 합리적인 병원운영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고가의 의료기기를 앞다퉈 들여와 과잉진료를 하거나 건강보험에 부당청구를 하는 등의 방법을 쓴다. 약품 및 치료재료 구입에서 리베이트의 유혹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동네의원에도 입원실이 있고 대형병원에도 외래 진료실이 있어서 의원·중소병원·대형병원이 모두 같이 경쟁하는 체제다. 국민들 입장에선 병원이 돈벌이를 위해 진료할 뿐 환자를 위해 진료한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다.
공공병원 100개로 확대
지방에도 좋은 병원 배치
신뢰할 만한 의사를 구하지 못한 환자들은 대형병원으로 이동한다. 대부분 대학병원인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수입 비중은 2002년 21.7%에서 2010년에는 28.7%로 높아졌다. 대학병원의 외래에 한번이라도 가보면 1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1~2분가량 진료받고 나오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빅5’에 속하는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이 2010년 기준 전체 상급종합병원 진료비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2005년(30%)에 견줘 5년 만에 5%포인트나 올랐다. 이와 반대로 건강보험 지출 가운데 동네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43.2%에서 29.5%로 크게 줄었다. 동네의원 수가 크게 줄어든 것도 아닌데 전체 수입은 줄었으니 동네의원 의사들은 ‘악’ 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지방 환자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강화되면서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 격차도 심각해지고 있다. 치료를 위해 수도권 병원에 입원해 진료받은 지방 거주 환자는 2003년 170만명에서 2010년 241만명으로 늘었다. 엄청난 시설과 인력이 있는데도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 걸린 환자 10명 중 6명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질병 치료 부담도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수년째 6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건강보험에서 소외된 층도 153만가구(지역가입자의 20%)에 이른다. ■ 환자 연간 진료비 한도 100만원으로, 공공병원도 100개로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크게 낮춰야 한다. 진료비 부담이 큰 입원진료비는 본인부담분을 10% 정도로 낮추어야 국제적인 수준에 맞출 수 있다. 암 등 큰 병에 걸려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고액진료비는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한해 진료비가 총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본인부담상한제를 실시하는 것이 건강보장을 위해서나 빈곤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조처다. 국민들이 건강보험을 질병의 안전판으로 생각한다면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국민의 70% 정도가 이미 가입해 있는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나면 이에 연동해 보험료를 인하해야 한다.
소득 수준이 매우 낮아 건강보험 가입이 어려운 계층을 위해 의료급여 수급 범위를 크게 확대해야 하고, 소득이 불안정해 건강보험료를 낼 수 없는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건강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려면 현재 건강보험에서 지급해 주지 않는 모든 비급여진료를 급여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에서 비급여진료를 계속 늘려나갈 것이고 환자의 부담은 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병의원이 보험진료만으로 운영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보험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과 병원 간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두고 성립시켜야 할 교환조건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 있다. 공공병원 확대와 민간병원의 공공성 강화이다. 현대적인 시설과 실력 있는 의료진을 갖춘 공공병원이 의료제공의 기본을 이루도록 하는 건 모든 국가의 의무이다. 과잉진료도 과소진료도 없이 환자에게 필요한 만큼 치료해 주는 표준진료, 건강증진·질병예방 서비스를 치료와 함께 동시에 제공해 주는 공공병원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국민건강도 지킬 수 없고 진료비 앙등도 막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이 100개는 돼야 의료공급체계가 환자들을 위해 작동할 것이다.
비급여진료, 급여에 포함
병원 보험수가는 현실화
민간병원에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민간병원이라도 건강증진·질병예방 등 공공적인 서비스를 하고자 하면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민간병원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자 한다면 시설비 지원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민간병원도 공공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물론 민간병원은 경영을 투명하게 해야 하고, 지배구조도 민주적으로 바꿔야 한다. 공급과잉된 병원 수를 줄이려면 중소병원 퇴출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중소병원이 문을 닫을 경우 투자한 만큼은 되찾아 갈 수 있도록 국가가 임시조처를 취해주어야 한다. 합리적인 퇴출경로를 마련해 주는 것이 국민들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 중소병원의 난립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되며, 병원 규모를 300병상 이상으로 한정하는 쪽으로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 의료자원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지방마다 서울만큼 좋은 병원이 골고루 배치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에 균형적인 의료자원이 갖춰지지 못할 경우 환자의 수도권 집중현상은 영원히 막을 수 없다.
의료공급체계 혁신을 위한 연속기획 종합심포지엄 ‘다시,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도봉구 도봉숲속마을 대회의실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저소득층 중증질환땐 휴업급여 제공을” 토론서 무슨 의견 나왔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환자들을 위한 진료 및 질병 예방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공공병원을 크게 늘리고 이를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토론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또 공공병원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 추상적인 확충 목표가 아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해야 하며,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혜택이 확대되는 청사진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정주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센터 팀장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로 많은 국민들이 공공병원을 공권력의 연장으로 여기기도 한다”며 “특히 지방의 공공병원은 공중보건의사나 계약직 의사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도 “과거에도 정치권에서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밀어붙여도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가 약해 정책 실행이 쉽지 않았다”며 “국민들은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공공병원이 확충돼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 정말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이익보다는 환자들의 건강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병원 혹은 비영리병원 모델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광범위한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순자 전 보건의료노조위원장
90여명 4개월 17차례 토론해 해법 제시 ‘워크숍 대장정’ 어떻게 했나 이번 워크숍은 4개월의 정책 대장정이었다. 17차례에 걸쳐 모두 25명의 전문가가 발제를 하고 90여명의 교수·현장 전문가·각급 병원 노사 대표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번 행사를 총괄기획한 나순자(사진) 전 보건의료노조위원장은 “무상의료와 공공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를 접목하기 위해 워크숍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무상의료가 실현된다 해도 환자의 수도권병원 쏠림현상 때문에 (의료공급체계의 혁신이 없으면) 지방병원과 중소병원은 여전히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고, 지역의료의 균형발전도 이뤄질지도 의문”이니, “무상의료 시대를 준비하는 것과 함께, 의료공급체계 즉 의료기관의 혁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논지다. 매회 워크숍은 △방문한 의료기관에서 참가자들이 2~3시간 동안 병의원 현장 곳곳을 돌면서 의료시설과 지역에서 해당 병의원이 갖는 역할과 특징을 파악한 뒤 △병원 종사자와 관련 전문가들이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문제점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이번 워크숍은 또 보건의료분야에서 처음으로 병원 노사 양쪽 관계자와 관련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해 현장을 돌면서 의료서비스 혁신방안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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