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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장로 대통령 밀어주느라 국민일보 알아서 긴다”

등록 2012-02-21 16:58수정 2012-02-22 15:12

파업 60일을 맞은 20일 〈국민일보〉 노조가 서울 여의도 이 신문사 사옥 편집국에서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파업 60일을 맞은 20일 〈국민일보〉 노조가 서울 여의도 이 신문사 사옥 편집국에서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국민일보 파업 두달, 노조원 ‘마스크’ 침묵 시위
후배는 침묵 시위로 회사 비판, 선배는 침묵으로 사쪽에 힘
“조용기 목사 일가 비판하면 신앙 부족하다는 식”
“언론이란 이름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 조합원 의지 강해

공기가 무거웠다.

마감을 앞둔 신문사 편집국에는 긴장감이 뒤섞인 무거운 공기가 흐르기 마련이지만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 5층 편집국에는 다른 종류의 무거움이 흐르고 있었다.

<국민일보> 노조원 50여명은 이날 오후 3시 X표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파업 뒤부터 대부분의 현장기자가 빠진 채 신문을 만들고 있는 데스크들 앞에 섰다. 손에는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진실이 이긴다 거짓은 가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이 들렸다. 신문사 데스크급 선배들은 컴퓨터 모니터에 눈길을 고정한 채 묵묵히 자판을 두드렸다.

손팻말 든 후배, 자판만 쳐다보는 선배

한때 선배와 후배로 가르치고 배우거나 때로 부딪히면서 함께 신문을 만들었던 이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현재 파업에 동참한 노조원은 전체 160명 중 110여명으로 취재기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겨레> 영상팀 취재진을 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기사도 쓰더니 영상까지 찍느냐”며 항의를 하는 한 데스크의 목소리만 고요한 편집국에 번졌다.

조민제(42·본명 조사무엘민제) 국민일보 사장과 그의 아버지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목사의 전횡을 규탄하며 파업에 돌입한 <국민일보> 노조가 이날로 파업 두달(60일)을 맞았다. 노조원들은 지난 10일부터 편집국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회사 로비와 정문 앞 등 외부에서 집회를 열었던 노조가 침묵 시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 사장의 고소였다. 그의 자택 인근에서 전단지 등을 돌렸다는 이유 등으로 지금까지 총 16명이 사쪽으로부터 고소당한 상황이다.


이날 조합 사무실에서 고소당한 2명의 조합원을 비롯한 3명의 조합원과 파업 2달에 접어들고 있는 그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황세원(여·경제부·11년차), 박재찬(경제부·11년차), 박유리(특집기획부·5년차) 3명의 기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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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원 기자와 박유리 기자는 전단지를 돌렸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상태다. 지난 16일 국민일보 노조 집회를 찾은 방송인 김제동씨는 “저도 엄마와 가끔 싸우지만 엄마는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다”며 사쪽의 무더기 고소를 꼬집은 바 있다. 황 기자는 “조 사장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진 않지만 선배들에게는 느낀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이렇게 파업을 하고 있지만 회사가 대화에 나서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안에 계신 선배들 때문이죠. 같이 일했던 자식 같은 후배들이 고소당하고 있는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로서 자부심 같은 게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어요.”(황세원)

“노조를 깨는 순서가 있잖아요. 우선 갈라놓고 그 다음에는 인센티브와 선전으로 회유하죠. 그 다음에 소송으로 공포를 심어주고요. 사쪽이 11명 무더기 고소를 하면서 ‘공포정치’식의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해요. 간부가 되기도 하고 밥벌이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막내 기자까지 고소당했는데 침묵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아주 많이 서운합니다.”(박유리)

조합원들은 평소 편집국에서 쌓여왔던 사쪽의 전횡과 편집권 위협이 파업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표면적인 원인은 임금협상 결렬이었지만 조용기 목사 일가가 경영·편집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국민일보>가 언론사로서 바로 서기 힘들다는 인식이 조합원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조 사장(조용기 목사의 차남)은 지난해 11월 자신이 인수한 업체에 수십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바 있다.

“알아서 긴다는 말이 있죠?”

기자들은 편집권 독립에 대해서 고민이 깊었다. 황씨는 “‘알아서 긴다’는 말이 있죠? 정부 권력 등에 대해 눈치 볼 이유가 없는데도 장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초반 분위기 때문인지 4대강 사업 등에 대한 보도가 영향을 받았어요. 후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쪽팔린다’고 하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박유리씨는 “신문의 사설과 칼럼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다보니 기사는 그렇게 쓰지 않아도 국민일보라는 이유로 뭉뚱그려 보아온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위축된 언론 독립도 영향을 미쳤다. 황씨는 “억압하는 권력이 정부와 종교라는 점에서 <문화방송>(MBC)이나 <한국방송>(KBS), <와이티엔>(YTN) 등과 <국민일보>는 서로 다르다”라면서도 “전체 언론 독립성이 건강했다면 우리 신문도 함부로 기자들에게 검열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었겠지만 현 정부 들어 그런 건강성이 무너지면서 <국민일보>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박유리씨는 “국민일보 파업이 승리한다면 언론 독립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며 “타사 파업에도 지지하고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기독교계와 관련된 검열이 심했다고 한다. “기독교는 약자 편에 서는 종교잖아요? 교회의 출연으로 설립된 언론이라면 기독교가 그런 면에 걸맞는 종교면을 만들어야 하는데 조용기 목사와 그 주변 보수적인 목사들의 개인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맞췄어요. 이념을 떠나 의미가 있는 기사라면 실어야 하는데 진보적 성향의 목사님 활동에 대한 기사들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구요.”

조용기(75)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국민일보 발행인
조용기(75)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국민일보 발행인

기득권층 기자들 파업에 눈뜨다

기자는 비교적 ‘사회 기득권층’으로 받아들여진다. 방담을 나눈 이들은 파업 노동자가 되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파업을 하면서 내가 이런 인간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 면이 있죠. 재능교육 파업이라던가 장기 파업에 대해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버스타고 다니면서도 파업 모습들만 눈에 띄더라구요. 시위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일 뿐이구나.”(박재찬)

“제가 노조 트위터를 맡고 있는데 한분이 ‘용역 깡패는 들어가지 않는가 보지’라고 멘션을 하셨더라구요. 처음에는 모든 노동자 투쟁은 존중받아야 하는데 무슨 얘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용역 깡패에 맞서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는 파업도 있는데 우리가 마냥 힘들다고만 해선 안되는 거 아닌가.”(박유리)

파업=빨갱이=사탄이라는 사쪽 논리

조합원들은 결국 이번 파업의 해결은 한국 기독교계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어렵다고 봤다. “사쪽 논리의 바탕에는 이런 게 있어요. 파업=빨갱이=사탄. 이랜드 파업 사태 때 ‘사탄의 무리와 싸우겠다’는 식이죠. 윤리적 기준에 미달하는 경영진을 문제 삼는데 조 목사 일가에게 대항하면 신앙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대하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번 파업은 오히려 종교권력을 개인 자산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과정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황세원)

“기독교인에게는 순종과 책임이 있죠. 성도가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맞죠. 하지만 그만큼 기독교인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해요. 이번 고소고발까지 가는 사쪽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책임 의식이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박재천)

<국민일보>는 입사 조건으로 기독교 신앙을 요구하고 있진 않지만 3명의 조합원은 모두 기독교 신자다.

“국민일보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제 시작”

파업 2달째, 월급 없는 2달이 지나가면서 외벌이 가정을 꾸리는 조합원들 사이에 조금씩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성규 <국민일보> 노조 사무국장은 “노조에서 파업기금으로 무이자로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번달에 10명의 조합원이 신청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고려없이 갑작스럽게 돌입한 파업이라 생계에 대한 대비가 미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끝낼 수 없다는 결의가 높다고 한다. “이번 파업은 오히려 국민일보에 새롭게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변화를 가져올 계기라고 생각해요. 언론사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해야겠다는 조합원들의 의지가 높습니다.”(황세원)

이성규 사무국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젊은 기자들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대충해선 안된다’고 말하는 후배가 많다”며 “국민일보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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