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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족애로 상처 딛고…휠체어 타고 ‘희망여행’

등록 2012-02-05 21:35수정 2012-02-05 22:43

지난 3일 휠체어에 탄 임광민씨가 어머니와 누나의 도움을 받아 제주도 올레 8코스의 가파른 길을 오르고 있다.
지난 3일 휠체어에 탄 임광민씨가 어머니와 누나의 도움을 받아 제주도 올레 8코스의 가파른 길을 오르고 있다.
장애인 임광민씨 ‘제주 2박3일’
사지마비 장애로 체온 조절이 잘 안되는 임광민(26)씨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 전 “춥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2일 도착한 제주도엔 눈이 세차게 날렸다. 몸을 덜덜 떨며 돌아본 섬의 풍광 중 광민씨의 눈길을 붙잡은 것은 바다였다. 그는 드넓은 바다를 한참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는 끝이 없으니까 여태까지 제게 있었던 일을 그 안에 다 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기계체조 선수였던 누나를 지도하던 감독의 눈에 띄어, 광민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체조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턴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10시간 훈련을 받고, 밤 9시에 기숙사로 돌아와 새벽 1시까지 선배들 빨래를 대신 하는 군대식 생활을 버텨야 했다. 팔이 길고 몸이 다부졌던 광민씨는 안마 종목에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4년간 소년체전 안마 금메달은 항상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 서울체고 1학년 때는 선배들을 누르고 전국체전 고등부 안마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생각에 선배들의 질시도 견디며 연습에 몰두했다.

그날은 2004년 6월25일이었다. 보통 1, 2학년만 하는 새벽 운동에 한 3학년이 나와 연습이 부족하다며 후배들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선배는 철봉에서 두 바퀴 돌고 착지하는 기술을 할 것을 요구했고, 후배들이 주저하자 광민씨를 지목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기술을 몸이 덜 풀린 새벽에 착지대도 제대로 안 갖춰진 상황에서 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하지만 엄격한 선후배 위계질서 속에서 반항할 수 없었다. 광민씨는 한 바퀴 반을 돌고 머리부터 떨어졌다.

‘체조 유망주’로 주목받다
선배의 무리한 훈련지시에
회전하다 떨어져 전신마비
3년간 재활의 고통 견뎌내

‘체조 유망주 임광민, 얼차려 받다 전신마비’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고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명예 실추를 우려한 학교는 사고를 광민씨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법정에서 코치는 “광민이가 운동도 못하고 신체 조건도 안 좋은데 욕심이 많아서 무리하다가 다쳤다”고 증언했다. 소송에서 교육청은 6명의 변호사를 고용해 광민씨에게 맞섰다. 1심에서 30%였던 그의 과실은 항소심에서 40%로 늘어 3심은 포기했다. 고통스러운 3년간의 재활훈련으로 팔은 쓸 수 있게 됐지만, 하반신의 신경은 영영 돌아오지 않아 평생 혼자서는 휠체어에 앉지도 못한다.

지난해 10월, 광민씨가 다니던 복지관의 복지사가 무료로 여행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등을 떠밀었다. 아름다운가게 방학점 등 서울 강북·도봉구 지역의 시민단체 모임인 ‘도봉나눔사랑방’이 바자회를 열어 모은 돈으로 5팀의 20대에게 여행경비를 전액 지원하는 ‘세상이 학교다 1회’ 프로그램이었다. 광민씨는 “서울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다”며 제주도를 택했다. 그는 여행 전 준비모임에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담긴 종이를 받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적었다.

다음날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여행 둘째 날 밤 11시. 가족과 찾은 술집에서 광민씨는 누나가 입에 대주는 소주잔을 받아넘기며 소주 1병을 거의 다 마시고 나서야 사고 당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 선배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해요. 저만 더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사고에 대해선 아무 말 안 하기로 했어요.”

지역 시민단체 도움으로
엄마·누나와 첫 여행 ‘기쁨’
아픔 털고 깊은 대화 나눠
“다시 목표 찾을수 있겠죠”


과거의 상처를 모두 털어내고 새로운 꿈을 찾기엔 2박3일은 짧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한 첫 여행의 경험은 광민씨 삶의 영역을 한 뼘쯤 더 넓혀준 것 같았다. “전 아직 꿈이랑 목표가 없어요. 하지만 자꾸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군가를 만나고 목표를 찾을 수 있겠죠.” 광민씨는 그렇게 희망을 안고 4일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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