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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학습지 교사들 4년간 메아리없는 절규

등록 2012-01-29 20:06수정 2012-02-02 13:14

재능교육 해고자들의 천막농성 1500일째를 맞아 지난 28일 저녁 ‘재능교육을 점령하라!’라는 집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참가자들이 정리해고 폐지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재능교육 해고자들의 천막농성 1500일째를 맞아 지난 28일 저녁 ‘재능교육을 점령하라!’라는 집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참가자들이 정리해고 폐지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현장] 재능교육 해고자 거리투쟁 1500일
농성장을 둘러싼 전경들처럼, 물러나지 않는 영하 5.5℃의 추위가 계속된 29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여민희(39·여) 조합원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밤샘농성 참가자에게 커피를 타주며 웃음을 지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여씨는 1998년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광고 노래가 마음에 들어 재능교육에 들어왔다고 했다. 2007년 12월21일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노조가 단체협약 협상을 거부하는 회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날, 여씨는 70여명의 회사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다 전치 2주의 부상을 당하고 휴직했다 1500일. 조합 전임자로서의 긴긴 투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랜 투쟁 기간 동안 여씨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20~30대 남성 용역들의 미행과 성희롱이었다. 용역들이 “너 지난주에 예쁘게 차려입고 선물상자 들고 어디 가더라”며 히죽댈 땐 등골이 서늘했다. 2010년 여름, 회사가 천막을 철거해 승합차에서 자며 농성을 벌였을 때엔 30분 간격으로 용역들이 “뭐해, 나랑 자자”며 차를 흔들기도 했다. 한 용역은 여씨가 회사의 노무관리팀 직원에게 항의하며 울부짖는 내용을 녹음해 자신의 휴대전화 벨소리로 쓰며 흉내를 냈다. 여씨는 “용역을 보면 심장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무서운데 하나도 안 무서운 척해야 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말을 들어도 다른 조합원에게 말하기 부끄러워 혼자 삭여야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2008년에는 사쪽이 여씨의 통장을 가압류해 지금까지도 예·적금은 찾을 수 없다. 여씨는 수학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한다. 미혼인 그는 혼자 살고 있어 가족들은 지난 4년 동안 그가 해고당하고 천막농성을 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여씨는 지난 13일 함께 투쟁하다 암으로 숨진 이지현(45)씨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암 진단 받고 입원하기 전에 언니랑 제주도 여행을 가서 올레길을 걷고 ‘다음에 와서 마저 걷자’고 그랬는데…”라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여씨는 무엇보다 투쟁이 길어지며 갑상선항진증·자궁근종·패혈증 등 하나씩 질병이 늘어나는 조합원들이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 1500일 동안 용역의 성희롱과 구치소 생활, 노숙을 견뎌온 여씨.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는 “1999년에 학습지 교사 노조가 생긴 뒤, 가짜 회원 회비 대납이 없어졌다”며 “휴가비를 받고, 당기 순이익을 분배받는 당연한 권리를 되찾게 됐을 때 행복해하던 동료들의 웃음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노조가 없어진 재능교육에는 이런 당연한 권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여씨는 “원직 복직과 단협 체결 외에 교사들의 권리를 되찾을 길이 없다는 생각에 투쟁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4년 동안 거리에서 추위와 더위에 스스로를 단련하며, 이런 생각은 더 명확하고 단단해졌다.


재능교육 해고자들이 계속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 연대하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한진중공업 해고자와 부산 시민 28명이 희망버스를 타고 투쟁 1500일을 맞아 열린 ‘재능교육을 점령하라’ 투쟁에 합류했다. 1000여명(경찰 추산 400명)의 시민들과 활동가들은 함께 종로구 보신각에서 재능교육 본사까지 행진했다.

일부 희망버스 참가자 등 100여명은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29일 아침까지 문화난장을 벌이며 밤을 새웠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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