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기획
우리들의 주말 풍경
꿀맛같은 휴식과 해방감?
3명중 1명은 “잘 못보내”
올핸 학교마다 매주 놀토
주5일제 근무도 대폭 확대
우리들의 주말 풍경
꿀맛같은 휴식과 해방감?
3명중 1명은 “잘 못보내”
올핸 학교마다 매주 놀토
주5일제 근무도 대폭 확대
‘아, 우리들의 토요일…’
눈을 뜨니 해는 이미 중천에 걸렸다. 직장인 김태훈(가명·30)씨의 토요일은 오늘도 어김없이 한낮에야 시작된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금요일 밤의 긴 술자리와 다음날 한낮의 기상은 늘상 되풀이되는 토요일의 풍경이다. 어젯밤에도 거나하게 마셔댔다. 한주 내내 일에 시달렸으니 금요일 하루쯤은 신나게 달려서 숨통을 열어줘야 한다, 고 그는 믿는다. 뭐, 쉬는 날이라고 해봤자 만날 애인도 없다. 간밤엔 대학 동기들과 어울렸다. “딱 한잔만 더!”를 몇 차례나 외쳤을까. 휴대전화 문자에 찍힌 택시요금 결제 내역은 귀가시간이 새벽 3시38분임을 알려준다. 라면 국물로 쓰라린 속을 달래며 리모컨을 누른다. 텔레비전 속에선 드라마 재방송이 한창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둑어둑하다. ‘아, 또 이렇게 토요일이 지나는구나.’ 갑자기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다음주엔 반드시 운동이라도 해야지.’ ‘결혼을 하면 토요일 생활이 좀 달라지려나.’ 속절없이 토요일은 또 지나간다.
지난 토요일도 ‘꽉 찬’ 하루를 보냈다. 15년차 커리어우먼 정순모(38)씨의 알람시계는 토요일에도 아침 7시30분이면 울어댄다. 오전 9시에 시작되는 중국어학원 수업을 들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주말반 수업은 오후 1시까지 쉴 틈 없이 진행된다. 학원을 다니지 않을 때는 아침 일찍 피부과에 들렀다가 승마나 골프를 배웠다. 저녁엔 결혼 안 한 여자 친구들과 영화나 공연을 봤다. 회사 눈치 보며 퇴근 뒤 다녔던 대학원 과정도 올해로 7학기째 접어든다. 논문 준비로, 올해는 도서관에서 보내는 토요일이 많아질 것 같다. 참 부지런하고 멋지게 산다, 고 남들은 말하지만 속 모르는 소리다. 어쩌다 보니 결혼이 늦어졌다. 남자들 눈엔 잘 보이지 않는 그 유리천장을 깨고 ‘올드 미스’로 살아남기 위해선 ‘정공법’을 쓸 수밖에 없다. 토요일에도 자기계발은 필수. 건강도 챙기고, 문화적으로 뒤처져서도 안 되니까.
결혼하면 토요일 모습이 좀 달라질까? 금융권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워킹맘 박희라(35)씨에게 토요일은 오롯이 ‘봉사하는 날’이다. 일주일 내내 엄마와 아빠가 고팠던 딸내미가 토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단잠을 깨운다. 늦잠을 자본 게 언제였던가. 좀더 눈을 붙이고 싶다는 마음도 잠깐, 딸내미가 짠해져 남은 잠을 서둘러 쫓아낸다. 소문난 어린이 뮤지컬이란 뮤지컬은 대부분 봤고,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공원·아쿠아리움은 아예 연간 회원권을 끊어 문턱이 닳을 지경이다. 뽀로로·코코몽·테디베어… 각종 캐릭터 이름이 붙은 유명 키즈 카페는 한번씩은 다 가본 것 같다. 어린이 테마파크는 애를 데리고 나온 부부들로 넘쳐난다. 박씨가 딸을 데리고 ‘만들기 교실’에 참여하는 동안 애아빠는 줄을 서서 기차 탈 순서를 기다린다. 아빠의 전화벨이 울리면 엄마랑 딸내미는 잽싸게 탑승 줄로 뛰어간다. ‘007 작전’이 따로 없다. 깔깔대며 즐거워하는 딸이 엄마와 아빠 눈 밑 다크서클이 길게 처지는 건 알까 모르겠다. 하루 종일 운전하랴, 줄 서랴 피곤했던 남편이 한켠에 앉아 꾸벅꾸벅 존다. 딸에겐 비밀이지만, 차라리 회사에 있을 때가 편하다. 출근하는 월요일이 슬그머니 기다려지기도 한다.
예술작품 속 토요일
‘유희와 쾌락의 밤’. 소설과 영화, 대중음악 속에 비친 토요일은 언제나 한껏 들뜬 모습이다. 누가 뭐래도 토요일은 기쁨과 행복이 넘쳐흐르는 탈출구라는 게 공통의 메시지였다.
‘긴 머리에 짧은 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세시봉’ 김세환은 1973년 토요일 밤을 단연 연인들의 밤으로 만들었다. 국내에서 1978년 개봉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전설적인 나팔바지를 입고 등장한 배우 존 트라볼타는 전국을 한순간에 디스코의 세계로 이끌었다. 1988년 11월 첫째 주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 <가요톱텐>에서 김종찬은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고백을 이어갔다.
우리나라에서 주5일 근무제도가 처음 실시된 2004년 이전에는 토요일을 맞는 반가움이 훨씬 컸다. 그때만 해도 해방감이 분출하는 결정적 순간은 토요일 오후 2시께였다. 1998년 개봉한 한 영화 제목이 <토요일 오후 2시>였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2000년대 들어 심장 박동은 더욱 빨라졌다. 2009년 손담비는 ‘토요일 밤에’에서 토요일 밤 찾아온 슬픔조차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환희와 열정으로 승화시켰다.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토요일이라는 단어에서 진정한 휴식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을 읽어내려는 작품들도 끊이지 않았다. 1966년 8월 <문학>에 실린 이청준의 단편소설 <무서운 토요일>에서 주인공 ‘나’가 토요일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토요일은 부인과 약속한 ‘그날’이다. 토요일마다 피임약을 사는 ‘나’는 꽉 짜여진 일상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고 싶지만 그저 무기력할 뿐이다. ‘토요일은 12시만 되면 유난히들 퇴근을 서둘러댄다. 내기라도 건 사람들 같다. (중략) 하지만 그렇게 나간 사람들 중에 절반 이상은 훨씬 뒤에라도 근처 대폿집이나 버스 정류소 같은 데서 다시 마주치곤 했다’에서 보듯 퇴근 이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 어째 지금 봐도 그다지 낯설지가 않은 풍경이다. 1960년에 나온 영국 영화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은 노동계급의 분노를 좀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토요일의 의미를 되묻는다. 알코올과 성의 쾌락에 빠진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쉼이란 없다. 앨런 실리토의 소설을 각색해 영화를 만든 카렐 라이츠 감독은 회색빛 도시의 음울함을 내세워 관객에게 토요일의 상큼한 휴식 따위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2000년대 들어 토요일의 무게감은 더해진다. 한편으론 휴식과 안정의 시간이어야 함에도, 또다시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시간으로 다가오는 탓이다. 베트남 작가 응우옌응옥투언이 쓴 단편소설 <토요일의 스케줄>에서 자신의 얼굴을 조각으로 남기려던 아내는 토요일 아침에 조각 파편이 눈에 들어가 실명할 위기에 놓인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토요일>에선 화목한 가족의 토요일이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도시노동자들에게 가장 평온해야 할 시간인 토요일에 닥친 불행은, 바로 불안하고 어두운 현대인의 내면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2012년 토요일 이렇게 바뀐다 2012년엔 토요일의 모습도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달라지는 제도가 적잖다. 그동안 한주씩 건너뛰던 ‘놀토’의 전면 시행이 대표적이다. 올해 3월부터 전국 모든 초·중·고교에서 ‘주 5일 수업제’를 일제히 시행한다.
‘주 5일 근무제’(주 40시간 근무제) 실시 대상 기업도 확대된다. 그동안 20인 이하 사업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남들 노는 토요일에도 일을 했으나, 7월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도 ‘주 5일 근무제’ 실시 대상에 포함된다. 이제서야 토요일이 ‘빨간날’로 면을 세우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빨간 토요일’을 쟁취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99년에야 주 5일 근무제 도입 논의의 첫 삽을 떴고, 2004년 7월(공기업·금융업·보험업 및 1000명 이상 사업장) 단계적인 시행에 들어가, 이제 13년 만에 온전한 빨간 토요일의 시대를 열었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1936년부터, 독일 노동자들이 1967년부터 주 40시간씩만 일을 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주 40시간 근무제란 말 대신 주 5일 근무제란 ‘한국적’ 표현을 처음 쓴 장본인은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현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정책보좌관)이다. 2004년 2월11일치 <한겨레>의 기록이다. 월급 명세서에 찍히지 않는 ‘비공식적’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하는 한국적 문화 풍토에서 주 40시간 근무제란 말은 도통 수용되지 못했다. 단순하게 ‘일주일에 닷새만 일하자’는 의미로 단칼에 정리를 한 것이다.
합법적으로 일주일에 닷새만 일하고 이틀은 놀아도 되지만, 한국인들은 그다지 잘 놀고 있지 못하다. 13살 이상 인구 10명 중 6명(63%)이 주말이나 휴일에 고작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시청’하며 시간을 때운다. 경제적 부담(60.9%)이 크고, 소득이 증가할수록 ‘시간이 부족’(600만원 이상 소득자 51.4%)하다 보니 3명 중 1명(32.1%)은 여가가 불만스럽다. 통계청의 ‘2011년 사회조사’ 결과다.
주 5일 근무제 시행 6개월을 앞뒀던 2004년 1월16일치 신문을 뒤져본다. “주말에 식구들에게 요리해줄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고 50대 가장이 큰소리치는 기사가 보인다. 그는 정말 ‘아빠 요리사’가 되어 여가를 즐기고 있을까.
이정애 최우리 기자 hongbyul@hani.co.kr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토요일이라는 단어에서 진정한 휴식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을 읽어내려는 작품들도 끊이지 않았다. 1966년 8월 <문학>에 실린 이청준의 단편소설 <무서운 토요일>에서 주인공 ‘나’가 토요일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토요일은 부인과 약속한 ‘그날’이다. 토요일마다 피임약을 사는 ‘나’는 꽉 짜여진 일상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고 싶지만 그저 무기력할 뿐이다. ‘토요일은 12시만 되면 유난히들 퇴근을 서둘러댄다. 내기라도 건 사람들 같다. (중략) 하지만 그렇게 나간 사람들 중에 절반 이상은 훨씬 뒤에라도 근처 대폿집이나 버스 정류소 같은 데서 다시 마주치곤 했다’에서 보듯 퇴근 이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 어째 지금 봐도 그다지 낯설지가 않은 풍경이다. 1960년에 나온 영국 영화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은 노동계급의 분노를 좀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토요일의 의미를 되묻는다. 알코올과 성의 쾌락에 빠진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쉼이란 없다. 앨런 실리토의 소설을 각색해 영화를 만든 카렐 라이츠 감독은 회색빛 도시의 음울함을 내세워 관객에게 토요일의 상큼한 휴식 따위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2000년대 들어 토요일의 무게감은 더해진다. 한편으론 휴식과 안정의 시간이어야 함에도, 또다시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시간으로 다가오는 탓이다. 베트남 작가 응우옌응옥투언이 쓴 단편소설 <토요일의 스케줄>에서 자신의 얼굴을 조각으로 남기려던 아내는 토요일 아침에 조각 파편이 눈에 들어가 실명할 위기에 놓인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토요일>에선 화목한 가족의 토요일이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도시노동자들에게 가장 평온해야 할 시간인 토요일에 닥친 불행은, 바로 불안하고 어두운 현대인의 내면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2012년 토요일 이렇게 바뀐다 2012년엔 토요일의 모습도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달라지는 제도가 적잖다. 그동안 한주씩 건너뛰던 ‘놀토’의 전면 시행이 대표적이다. 올해 3월부터 전국 모든 초·중·고교에서 ‘주 5일 수업제’를 일제히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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