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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개똥녀’와 ‘홍 기자’ 그리고, 디지털 주홍글씨

등록 2005-07-20 11:05수정 2005-07-21 16:36

논란이 된 2장의 개똥녀 사진. ‘디카·폰카 저널리즘’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라는 새로운 감시사회의 모습을 완성했다.
논란이 된 2장의 개똥녀 사진. ‘디카·폰카 저널리즘’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라는 새로운 감시사회의 모습을 완성했다.
[분석] ‘만인이 만인을 감시’, 모든 가해자는 동시에 피해자다

‘개똥녀’와 <조선일보> ‘홍 기자’.

두 사람은 다르지만 닮았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의 평범한 젊은 여성과 자신이 “대통령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거대 언론의 정치부 기자는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을 빼면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상식을 깬 말과 행동으로 인터넷세상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누리꾼들의 비난과 욕설은 도를 넘었고, 이들의 얼굴 사진도 공개되었다. 두 사람은 ‘마녀사냥’과 사생활 침해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결코 지울 수 없고 영구적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주홍글씨’다. 개똥녀와 홍 기자에 대한 비난 속에서 우리사회와 누리꾼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디카·폰카 저널리즘’…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

디지털카메라(디카), 카메라폰(폰카) 등 새롭게 등장한 개인 미디어들이 없었다면 개똥녀, 홍 기자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개똥녀는 지하철에 함께 있었던 한 누리꾼이 디카로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개똥녀가 애완견의 배설물을 가리키는 사진과 개똥녀 대신 배설물을 치우는 할아버지의 사진은 사건의 실체인 동시에 메세지다.

홍 기자의 만취 행패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 택시기사의 폰카 덕이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막무가내로 당한 일이라 너무 억울해서 찍게 됐다”고 밝혔다. 폰카는 평범한 시민이 거대 언론사 기자의 행패를 꼼짝 못하게 잡아낸 위력적인 도구가 되었다. 만약 택시기사가 폰카가 아니라 주먹으로 홍 기자를 응징했다면, 이 사건은 밤이면 뒷골목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술 주정’ 정도로 끝났을지 모른다.


폰카와 디카, 그리고 인터넷.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를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을 손 안에 쥐었다. 또 손 안에 쥔 무기로 생산한 콘텐츠를 무한대로 복제하고 퍼뜨릴 수 있는 인터넷이 있다. ‘디카·폰카 저널리즘’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라는 새로운 감시사회의 모습을 완성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개똥녀나 홍 기자 사건은 찍은 사람이 관찰자인지, 직접 이해당사자인지 차이만 있을 뿐 세상에 알려진 과정은 동일하다”며 “디카, 폰카의 보급으로 모든 행위는 끊임없이 노출되고, 언제든지 기록될 수 있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개똥녀 논쟁을 흥미있게 소개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도 새로운 감시자들의 도래를 알렸다. 집단 행동 전문가인 하워드 레인골드는 “15억 명이 온라인으로 감시하는 요즘 세상에는 과거의 ‘빅 브라더’가 아닌 우리의 이웃, 즉 지하철의 사람들에 대해 우려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사회에선 감시자와 감시를 당하는 자, 이해당사자와 관찰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우리가 가해자인 동시에 언제든 피해자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생활 침해는 용서될 수 없는 범죄”

개똥녀 사건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이 남았다. 개똥녀 사건에서는 도덕적 비난과 사생활 침해가 함께 뒤섞여 나타났다. 그러나, 개똥녀가 공중도덕을 어겨 비난을 받는 것과 공인이 아닌 개인으로서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는 분명히 다르다. 개똥녀의 얼굴 사진이 여과없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닌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다. 만약 개똥녀가 세상에 나와 사진을 올렸던 사람과 이를 퍼나른 누리꾼을 상대로 소송을 낸다면 100%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민 교수는 “법적인 처벌은 몇 만원 벌금을 내는 경범죄에 해당하겠지만 여론의 감수성은 항상 법적인 울타리보다 외연이 넓다”며 개똥녀에 쏟아진 과도한 비난의 정체를 설명한다.

그러나, 민 교수는 “개똥녀 사건에서 여론재판보다 심각한 것이 무분별한 초상권의 침해였다”며 “사생활 침해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개똥녀 사건에 대한 총체적 진실도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장을 담은 2장의 사진과 관찰자들의 주장만 있다. 당사자인 개똥녀의 해명과 반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행위의 주체인 개똥녀의 해명과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채 사건이 알려져 관찰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이 진실인 것처럼 왜곡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폰카·디카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기본을 상실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왜곡일 수도 있다.

기자는 공인인가? 홍 기자는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조선일보 홍 기자를 격투기 선수로 비꼰 패러디. 출처 이전패러디연구소(parodylab.com)
조선일보 홍 기자를 격투기 선수로 비꼰 패러디. 출처 이전패러디연구소(parodylab.com)


개똥녀와 달리 홍 기자를 개인으로 볼 것인지, 공인으로 볼 수 있는지는 좀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공인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 또는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공무원이나 정치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통념으로 보면 공인의 범위는 보다 넓다. 미국에서 들어온 ‘공인’(public person) 개념은 공적인 결정에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말한다. 공직자는 물론 대학교수, 유명 스포츠인, 유명 연예인 등도 공인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사생활 침해를 따지는 중요한 기준은 ‘대상자가 공인이냐 아니냐’이다. 공인이라면 공적인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사생활이 보도 등으로 노출된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

배 교수는 “홍 기자를 공인으로 볼 것인지는 애매하다”며 “기자로서 업무와 별개로 자연인으로서 벌어진 극히 개인적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홍 기자의 개인적인 자질 문제보다는 조선일보 기자라는 것 때문에 정치적 비난이 덧칠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재진 한양대 신방과 교수도 “우리 판례에는 누가 공인인지 명확하지 않고 기자가 공인이라는 규정과 사회적 공감대는 없다고 본다”며 “홍 기자의 경우는 음주폭행으로 유명해진 것이지, 필명을 날리거나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인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홍 기자의 폭행이 사실이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더라도 공개하기를 꺼리는 얼굴 사진 등을 올리거나 퍼 나르는 것은 사생활 침해로부터 면책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민 교수는 “홍 기자는 사후에 공인의 개념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며 “공인이냐 아니냐는 것보다는 언론이라는 공적 영역에 개입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처신이 부적절했음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친구’이고 ‘전라도XX’라는 욕을 함부로 내뱉는 거대언론의 정치부 기자가 우수마발 개똥녀와 다른 차원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녀사냥인가? 시민 사법권의 확장인가?

개똥녀와 홍 기자 사건은 한 개인의 규범 위반에 대한 사회적 제재의 새로운 형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지하철에서 개똥을 치우지 않은 개똥녀는 가벼운 경범죄 정도로 처벌받아야 했다. 홍 기자 사건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는 폭행죄나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처벌만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에게 쏟아진 비난과 신상공개는 새로운 수준의 사회적 제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법적인 처벌보다 훨씬 가혹하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개똥녀와 홍 기자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지울 수 없고 영구적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주홍글씨’다. 1995년작 영화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의 포스터.
인터넷에 떠다니는 개똥녀와 홍 기자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지울 수 없고 영구적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주홍글씨’다. 1995년작 영화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의 포스터.
대니얼 J. 솔로브 조지 워싱턴 대학 교수가 <워싱턴포스트>에 언급한 개똥녀 사건에 대한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니얼 교수는 “한 개인의 규범 위반에 대해 영구한 기록을 가지는 것은 마치 ‘디지털 주홍글씨’로 그들을 낙인찍음으로써 (위반에 대한) 제재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올려놓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마녀사냥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여론재판의 긍정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문학평론가 진중권씨의 견해가 그렇다. 진씨는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근대 시민은 복수를 실현할 권리를 국가에 이양했다. 그러나 이 이양된 처벌의 권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이럴 때 누리꾼들의 집단 행동은 근대 사법제도의 구멍을 보완하는 요소이며 직접적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재판을 탈 근대적 현상으로 규정하는 민경배 교수의 견해도 비슷하다.

“근대 국가 이후 국가가 독점했던 처벌권이 정보화로 시민사회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탈 근대적 현상의 한 단면으로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시민들이 감시와 처벌권을 행사함으로써 사회적 정의를 세우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터넷감시의 긍정론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뺑사마’로 불리는 가수 김상혁 사건이다. 김상혁이 경찰조사에서 뺑소니 혐의를 계속 부인했으나 현장에 있었던 네티즌들이 잇따라 인터넷에 제보를 올렸고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누리꾼들의 여론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단서가 되었다. 개똥녀 사건도 지하철에서 지켜야할 공중도덕의 중요성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홍 기자 사건은 과거 기자들이 가졌던 사회적 권력과 특권의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공론의 장, 성숙이 필요하다

결국, 공론의 장인 인터넷 공간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마녀사냥이나 사생활 침해의 역기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개똥녀, 홍 기자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다.

배 교수는 “인터넷에서 사생활 침해나 인신공격이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소수의 공인에서 다수의 대중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며 “소통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커지면 담론의 장인 인터넷에서 소통 자체가 단절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소통의 단절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우려한다.

민 교수는 “사생활 침해 등에 대응하려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적인 규정을 만드는 것은 모든 가해자를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처벌의 기준과 형평성에서 논란이 일 것”이라며 “차라리 피해자들의 구제할 장치나 소명의 기회를 보장해줄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는 “인터넷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은 좀더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해결방안”이라며 “모든 가해자는 동시에 피해자일 수 있다는 만인 감시시대의 교훈을 상기한다면 자율적인 문화규범이 성숙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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