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사육두수와 가격 관계
GS&J, 2008년부터 9차례 “가격 급반전 우려”
정부, 손 놓고 있다 뒷북…FTA로 육우위기 초래
정부, 손 놓고 있다 뒷북…FTA로 육우위기 초래
소값 하락과 사료값 상승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사료 공급을 끊어 굶어 죽는 소가 생기고 젖소 수송아지를 안락사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은 정부의 근시안적 뒷북 정책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송아지 입식에서 출하까지 2~3년이 걸리는 쇠고기 산업은 가격이 10년 주기로 상승기와 하강기가 교차하는 ‘비프 사이클’(beef cycle)을 나타내는데, 정부의 무대책으로 하락의 골이 더 깊어졌다는 비판이다. 쇠고기 시장 개방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영향으로 육우(고기용으로 키우는 수컷 젖소)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민간 농업싱크탱크인 지에스앤제이(GS&J)인스티튜트는 한우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던 2008년과 2009년 네 차례 보고서를 내어 “한우 표시제 등의 영향으로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등했으나, 사육 마릿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 가격 하락으로의 급반전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그 뒤에도 사육 마릿수가 계속 늘고 정부에서도 아무 조처가 없자, 2010년 8월에는 ‘위기의 한우산업’ 보고서를 내어 “일시적 상승국면을 지나 하강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연착륙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제시했다. 지난해 8월에는 급기야 ‘한우산업 파동’을 우려하는 등 2008년 가을 이후 모두 9차례 한우산업 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지난해 이후 가격동향 관측보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한우 사육 마릿수 급증에 따른 가격 급락 사태를 우려했다.
하지만 그 사이 정부는 어떤 연착륙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지에스앤제이의 이정환 이사장은 5일 “비프 사이클의 봉우리가 높지 않고 골이 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이제는 때를 놓쳐 별 방법이 없다”며 ‘정부의 실패’를 비판했다. 그는 “2009년 값이 올랐을 때 선제적인 암소도축정책을 썼으면 서서히 사육 마릿수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정부가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며 “이미 소값이 떨어지기 시작한 뒤에 뒤늦게 암소를 줄이는 정책을 취하는 바람에 농민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더 불지르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큰소 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던 와중에 농림수산식품부가 나서서 암소 도축을 늘려나가자, 결국 쇠고기값 급락으로 이어졌고 송아지 입식 열기가 급격하게 냉각되면서 ‘소값 파동’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소값 파동의 최대 피해자인 육우 산업은 쇠고기 수입 증가에 따른 타격까지 겹치면서 산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전북 순창에서 송아지를 굶겨 죽인 곳도 육우 농가였으며, 젖소 농장에서 수송아지를 안락사시키는 일이 빚어지는 것도 육우 농가에서 수송아지를 가져가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사육중인 한우는 약 281만9000마리, 육우는 13만마리다.
농협중앙회 축산유통부의 이덕규 차장은 “육우는 사육 마릿수가 줄어들었는데도 지난 1년 사이 한우(도맷값 기준 19.6% 하락)보다 값이 훨씬 더 크게 31.1%나 떨어졌다”며 “저가육 시장에서 경쟁하는 수입 쇠고기에 밀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차장은 “지금 시세라면 육우 1마리를 2년 길러서 100만원 손해보게 된다”며 “육우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들이 늘어 육우 산업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전체 쇠고기 수입은 28만3092t으로 1년 전보다 8.4% 늘어났으며, 이 가운데 미국산은 전년보다 37.2%나 급증한 11만6447t에 이르렀다.
한-미 에프티에이 체결이 육우 농가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장경호 부소장은 “에프티에이 체결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을 더 완화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소값 폭락을 심화시켰다”며 “연착륙 대책도 내놓지 않고 수입개방에만 매달린 정부가 소값 파동을 방조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