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주명·안정호·정규용씨와 안희천씨 유족 “남의 일 같지 않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하관식이 치러진 3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함주명(81)씨는 하관식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기 위해 고문 후유증으로 부은 다리를 끌고 흙비탈을 올랐다. 관이 내려지는 것을 보던 함씨는 “이근안에게 고문받은 같은 피해자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김씨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고문 후유증으로 죽는 것 아닌가 덜컥 겁이 났었다”며 눈길을 먼 곳으로 돌렸다.
한국전쟁 당시 개성에 살던 함씨는 남한으로 피란한 가족을 만나려고 대남공작원에 자원해, 1954년 휴전선을 넘자마자 바로 자수했다. 그런데 1980년에 잡힌 한 남파간첩의 ‘개성 출신 간첩이 남한에 있다’는 진술을 토대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1983년 함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고문했고, 결국 그는 거짓진술을 하고 16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함씨는 2000년 재심을 청구해 5년 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로서는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함씨는 “좀더 오래 사셔서 좋은 세상 만드셔야 했는데 한스럽고 애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씨처럼 이근안씨에게 고문을 당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은 한목소리로 김 상임고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이씨에게 1985년 48일간 고문을 당하고 북한 찬양고무죄로 2년간 옥살이를 한 납북귀환어부 안정호(57)씨는 이날 “그분의 말 한마디가 우리같이 고문당한 사람에게 큰 힘이 됐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 돌아가신 게 가슴 아프다”며 울먹였다. 납북어부였다가 조작간첩이 돼 15년 동안 징역을 살았던 정규용(73)씨는 “나이도 얼마 안 되는 분이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니 남의 일 같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씨에게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2006년 세상을 뜬 납북어부 안희천(72)씨의 아들 기성(51)씨는 “아버지께선 고문으로 오른쪽 다리가 불구가 되셨고, 간질환이 심해져 돌아가셨다”며 “김근태씨도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지훈 정환봉 이충신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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