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도 지사. 한겨레 김경호 기자
오바마는 군 병사 기다렸다 다시 전화…김문수는 인사조처
이외수 “문책은 김문수가 당해야”…누리꾼들 징계철회 청원운동
이외수 “문책은 김문수가 당해야”…누리꾼들 징계철회 청원운동
“오바마 대통령께서 당신과 통화하고 싶어합니다.” (미 백악관 관계자)
“지금은 근무중입니다. 점심시간에 다시 전화주십시오.” (다코타 마이어 미군 명예훈장 수여자)
“네, 다시 걸겠습니다.” (미 백악관 관계자)
미 백악관이 전한 얘기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9월15일 아프간 전투에서 적진에 뛰어들어 13명의 동료 대원들과 아프간인 23명을 구출해낸 공로로 다코타 마이어 예비역 병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려고 참모를 통해 전화를 걸었다. 미 대통령 참모의 전화를 받은 마이어는 그러나 뜻밖에도 “지금은 근무중이니 점심 휴식시간 때 전화를 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오바마는 하는 수 없이 점심시간까지 기다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바마는 마이어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내 전화를 받아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소방서 119 상황실 근무자들이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걸어온 전화를 장난전화로 오인해 응대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이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누리꾼들은 미 오바마 대통령과 마이어 병장과의 일화를 트위터에 퍼나르며 김문수 지사와 오바마 대통령을 비교하고 있다.
용건묻자 김지사가 전화 끊어
28일 공개된 당시 김 지사와 119 상황실 근무자 2명의 대화를 들어보면, 김 지사는 119로 전화를 걸어 “김문수 도지사입니다.”라고 밝혔다. 노인의료 체계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전화를 받은 근무자들은 장난전화로 판단한 듯 “무슨 일로 전화를 했냐”고 대답했다. 이후 김 지사는 “누구인지 밝혀달라”고 재차 물었으나 첫번째 전화를 받은 근무자는 “이 전화는 비상전화입니다. 일반전화로 하셔야 합니다”라고 여러차례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두번째 전화를 받은 근무자는 이름을 밝혔으나 김 지사가 계속 이전에 통화한 근무자의 이름을 묻자 “119로 하셨잖아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라고 물었다. 이번에는 김 지사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경기도 소방본부는 “소방공무원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에서 ‘119 전화신고 접수시 먼저 자신의 관등성명을 밝히고, 신고내용에 대해 성실히 응대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당시 상황실 근무자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김 지사의 전화를 받았던 소방공무원 2명을 포천과 가평소방서로 전보시켰다. 김 지사는 “전화를 걸었는데 장난전화로 알더라. 위급한 상황이었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누리꾼 “당시 119근무자 되레 표창해야”
경기도 소방본부는 19일 경기도내 34개 소방서에서 김문수 도지사의 목소리가 담긴 통화내용을 들려주며 소방공무원 특별교육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당시 녹취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그러나 누리꾼들 사이에선 김 지사의 전화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여론이 크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트위터에 “경기도 119상황실 통화 녹취록을 들었습니다”라며 “얼핏 듣기에는 장난전화 같은데요. 받으신 분은 잘못이 없는듯. 끝까지 용건을 말씀 안 하시고 불쾌감만 표출. 문책은 도지사가 당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김 지사의 통화 방식을 꼬집었다.
트위터 이용자 @innostudy는 “방금 통화내용을 들어 보니, 당시 119 근무자들 표창해야 할 듯. 나 같으면, 119 긴급전화로 전화를 걸어 무슨 일때문에 전화했는지 밝히지도 않고, ‘내가 도지사인데, 네 이름 뭐냐’는 말만 되풀이하면 분명 욕 나왔을 거다. 친절한 119”라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choiseungsook)은 “전화응대 부실로 징계 운운하는 게 현재 김문수와 소방본부의 수준이다. 권위주의 시대에 부응 못한 게 죄겠지”라고 비판했다. 누리꾼들은 포털사이드 다음 <아고라>에 28일 “김문수 지사를 못 알아봐서 징계받은 소방관들의 징계철회를 청원한다”며 징계 철회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소방관 사과글 올려
한편, 김 지사의 전화를 받았던 오아무개 소방관은 29일 경기도청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실명으로 글을 올려 사과의 뜻을 밝혔다. 오 소방관은 “상황실 근무자는 어떤 전화이든지 소방공무원 재난현장 표준절차에 따라 자신의 관등 성명을 밝히고 사고내용에 대해 성실히 응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면서 “자의적으로 너무 경솔하게 장난전화로 판단, 규정도 무시한 채 너무 큰 무례를 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사님께서는 저희 소방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3교대 근무를 위한 인력보강,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미지급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 소방관을 위해 노력해주시고 계신 걸 잘 알고 있다. 이번 일로 인해 우리 소방에 대해 애정을 가진 지사님의 모습이 퇴색되고 왜곡되는 것이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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