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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보수단체 거센 반발…김정일 분향소 설치 무산

등록 2011-12-26 21:49수정 2011-12-26 22:43

국보법피해자모임-어버이연합,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 놓고 충돌
어버이연합 회원들 대한문 앞 광장 점거…경찰, 시민들 출입 원천봉쇄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 등이 26일 서울 대한문 앞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분향소’ 을 설치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대한문 앞 광장을 점거해 설치를 막았고 경찰은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시민들의 광장출입을 원천 봉쇄했다.

어버이연합 회원 50여 명은 이날 오후 4시40분께 대한문 앞으로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주적 김정일 조문하는 종북주의자 척결하자!’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대한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에서 분향소는 절대 설치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시민들을 비판했다. 강명기 어버이연합 부회장은 “주적인 김정일이 죽었는데 분향소를 설치하겠다니 ‘미친 X’들”이라며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모두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어버이연합은 이날 대한문 앞 집회신고를 선점한 상태였다. 추 사무총장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늘 집회신고를 미리 해둔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어버이연합이 내년 1월20일까지 불법폭력시위 척결 결의대회를 위해 대한문 앞 집회신고를 모두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양쪽의 충돌과 분향소 설치를 막기 위해 기동대 2개 중대, 120명을 배치했다.


분향소를 설치하려던 시민 4명은 어버이연합이 먼저 대한문 앞을 점거하는 바람에 대한문 인근 빵집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대희씨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6·15선언과 10·4선언을 주도하고 민족 화해를 도모한 분이다. 민족의 지도자로서 추모를 표현하는 게 맞다. 또 이웃이 상을 당하면 같은 민족으로서 조문을 하는 게 미풍양속”이라며 분향소 설치 의의를 밝혔다.

김씨는 5시10분께 대한문 광장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서부터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를 순식간에 에워싸 통행을 제지했다. 김씨는 경찰에게 “왜 나를 막느냐. 나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라고 설명했지만 김씨를 에워싼 경찰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5시30분께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 김씨의 연행을 지시하자 경찰은 김씨의 양팔을 잡고 강제로 경찰차에 태웠다. 현장의 경찰 관계자는 나중에 “김씨를 연행한 것이 아니라 강제 격리 조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제격리조처에 대한 법적 근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강제 격리 조처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어버이연합을 제외한 모든 시민단체 회원들의 대한문 출입을 통제했다. 자신을 엠네스티 회원(30)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대한문 광장에 들어가려다 경찰에 팔을 붙들린 채 광장에서 약 20m 떨어진 곳으로 강제 격리되었다. 그는 “경찰이 분향소 설치를 막는다고 해서 감시하기 위해 나왔다. 나는 분향소 설치 관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분향소를 설치하려던 시민들은 경찰에 의해 강제로 격리되어 이곳저곳에 흩어진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들은 차량을 이용해 김정일 위원장의 영정사진과 천막 등을 준비해 왔으나 차량에서 어떤 준비물도 내리지 못했다. 국가보안법피해자 모임 회원 윤기하(52)씨는 대한문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 채 경찰에 둘러싸였다. 대한문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서 윤씨는 기자들에게 “경찰이 어버이연합 핑계를 대어 분향소 설치를 못 하게 막고 있다.”라며 경찰을 맹비난했다. 윤씨는 또 “정부가 민간조문단의 규모를 제한한다면 서울에서라도 희망하는 사람들에 한해 조문하도록 허용해야 남북 사이 화해 모드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주장했다.

외신기자들은 이날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들을 열심히 취재했다. 일본의 한 통신사 기자는 “경찰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한국에서 분향소 설치를 막는 것 같다.”라며 “일본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을 추모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한국에서는 김 위원장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어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결국, 분향소 설치는 무산됐다. 분향소를 설치하려던 시민들은 이날 오후 6시40분께 자진 해산했다. 김대희씨는 “분향소에 대해 시민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오늘 경찰이 개입해 분향소 설치 자체를 막은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다. 경찰에 법적 대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날 어버이연합 회원들과 분향소 설치 시민들 사이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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