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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군에서 잃은 내 아들 “눈 감으면 피 고인 방탄모가… ”

등록 2011-12-15 10:56수정 2011-12-15 17:27

어버이날 충남 논산시 연무읍 육군훈련소에서 ‘06훈련병 어머니 초청 병영체험행사‘가 열려 한 어머니가 3주만에 아들을 만나 반갑게 껴안고 있다. 논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어버이날 충남 논산시 연무읍 육군훈련소에서 ‘06훈련병 어머니 초청 병영체험행사‘가 열려 한 어머니가 3주만에 아들을 만나 반갑게 껴안고 있다. 논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고립 막아보자’ 모인 다섯 가족…“힘센 사람이 아들 잃으면 달라질까”

“49살이지만 다시 애 낳을 거예요”…“연평도 이후 군 인권 의지 사라져”
 모두 굳게 입을 닫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국방의 의무’를 지고 떠났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 앞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네 장병의 부모들이 이날 첫 모임을 가졌다. 12일 저녁 서울 장충동 인권연대 사무실에 모인 6명의 어머니, 아버지는 말문을 떼기 주저했다.

 간략하게 소개를 마친 이들은 사무실 근처 고깃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임을 제안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아들을 잃은 부모님은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며 “아픔을 서로 이야기 나누어 고립을 막아보자는 것이 모임의 취지”라고 귀띔했다. ‘해병대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이모 황아무개씨도 합류해 다섯 가족이 자리에 앉았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고 이들은 비로소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의 멍울’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지난 4월22일 육군 논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숨진 노아무개(19)씨의 어머니 공아무개(49)씨는 울분을 토했다. “그렇게 가지 않아도 될 아이였잖아요. 그런데 누구도 관심이 없는 것을 보면 참을 수 없어요.” 노 훈련병은 야간 행군 뒤에 이상 고열 증세를 보였지만 연대 의무실에서 ‘타이레놀’ 2알을 처방받는 데 그치는 등 치료시기를 놓쳤고 뒤늦게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졌다.

 공씨는 찢어지는 가슴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다시 아들 낳을 겁니다. 올해 제 나이 49살이에요. 산부인과 가보니 1% 가능성이 있대요. 아주 조금의 가능성만 있어도 시도할 거예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다른 어머니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송명자(가명·주부)씨는 노 훈련병 사건에 앞서 지난 2월9일 같은 논산훈련소에서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아들을 잃었다. 사고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훈련소 책임을 엄밀히 따지지 않았던 송씨이지만 노 훈련병의 사망 소식을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 계속되는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송씨는 노씨 부모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지난 10월 만났다. 서로 아픔을 나눴고 이 자리에도 함께 나오게 되었다.

 급작스러운 증상과 미흡한 군 의료체계에 의한 죽음이라는 비슷한 일을 겪은 두 부모는 “앞으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공씨는 책임자에 대한 처벌 요구를 비롯해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까, 대학생 등록금 집회가 있을 때 분신 시도를 할까 안 해본 생각이 없어요. 요즘은 심지어 대통령이나 장군 같은 사람의 아이들이 비슷한 사고를 겪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마저 합니다. 저 같이 힘없는 사람도 이렇게 각오를 하는데 힘있는 사람이 아이를 잃으면 더 빨리 (군대가) 바뀌지 않을까 하구요.”

 어느새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어머니들과 달리 아버지들은 묵묵히 들으며 술을 들이켰다. 자리에 함께 참여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말로 쏟아내는 어머니들보다 그렇게 못하는 아버지와 피해자의 형제들이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권했다.

 지난 5월30일 강원도의 한 지오피(GOP) 초소에서 소총으로 목숨을 끊은 최아무개(24) 이병의 아버지 최정모(54·인쇄업)씨가 입을 열었다.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제 아이를 강하게 못 키운 것이 첫 번째 죄이겠지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지 않았습니까. 요즘 젊은 세대는 우리와 다른데, 군 생활은 똑같아요. 구타, 가혹행위 여전합니다. 군대가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최씨는 “지금도 눈 감으면 피가 가득 고인 아들의 방탄모가 떠오른다”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최씨의 이야기를 듣던 김차율(49·운수업)씨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김씨의 아들은 지난 10월16일 외박을 나와 광주의 한 중학교 숙직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유독 말이 적던 김씨는 아들의 죽음을 대하는 부대의 태도를 성토하며 입을 열었다. “사건이 있고 부대 사람이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사과도 없었죠. 장례 마지막날 대대장이 얼굴을 비췄을 뿐이에요. 자식을 잃은 부모가 가혹행위를 했다는 선임들을 만나려 해도 말을 돌려서 피했죠.” 최씨와 김씨는 모두 아들이 부대 내 가혹행위로 인해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밝혀 유공자로 인정받고 명예회복이 되기를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22일 김 이병의 사건에 대해 가혹행위와 부대관리 소홀을 확인하고 해당 부대 사단장과 국방부 등에 책임자에 대한 형사 및 행정조치 등을 권고한 바 있다.

 해병대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이모 황아무개씨는 “군대 내에서 각종 사건들이 수없이 터졌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힘든 것 같다. 군대 내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7월 해병대 2사단 참모인 오아무개 대령이 자신의 운전병이었던 이아무개 상병을 강제 성추행한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인 바 있다. 현재 피해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으며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자살, 성폭행, 허술한 의료체계 등은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군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바탕에 있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는 사건”이라며 “이런 문제들을 철저하게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돌려놓으려 하는 군의 태도는 일종의 국가폭력”이라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뒤 장병 인권에 대한 군의 의지가 자취를 감췄다”며 “군대 내 자살률이 다시 높아가고 각종 사고들이 불거지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모임을 시작으로 유가족 위로 천주교 미사를 비롯해 비정기적 모임을 계속 가질 계획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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