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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국서 힘들게 번 돈 다 날려도, 외로워서…
도박판 서성대는 조선족

등록 2011-11-24 20:53

가족도 친구도 없이 타향살이
40~50대 남자들이 대부분
재산 탕진…목숨 끊는 경우도
일상생활서 무시받던 설움
돈으로 대접받는 분위기 한몫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23일 오후 5시, 영하의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얇은 점퍼를 걸친 김무강(가명·56)씨가 서울 중구 힐튼호텔 외국인 전용 카지노장으로 향했다. 화려한 카지노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김씨는 5년 전인 2007년 중국 연변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조선족이다. 그는 문구 도매점 종업원으로 일해 힘겹게 번 전 재산 5000만원을 최근 3년 동안 도박으로 모두 날렸다.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려 주말마다 카지노를 찾은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간혹 돈을 딴 적도 있지만 대개는 잃었다. ‘본전’ 생각에 다시 카지노를 찾았지만 차비마저 날린 채 집으로 가는 날이 많았다. 지금도 한달에 한번은 카지노에 간다는 김씨는 이제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9일 또다른 조선족 권아무개(56)씨는 이 호텔 카지노 옆 난간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심하게 훼손된 주검에서는 카지노 출입증이 타다 만 채로 발견됐다. 그의 신원을 밝혀준 유일한 단서였다. 권씨는 2009년 초 혼자 입국해 경기도 고양시 등 수도권 일대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 권씨의 누나는 “동생이 월급이 적어 살기 힘들었다고 했다”며 “숨진 뒤 주변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두달치 월급도 다 도박에 털어 넣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고되고 외로운 한국살이를 하는 조선족들이 도박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김무강씨는 “(호텔 카지노에) 동양인이 많은데, 중국 국적에 대개는 조선족”이라며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해 가족과 헤어진 사람도 많고, 지난해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조선족 커뮤니티 사이트인 ‘한국모이자’의 장철 대표는 “혼자 돈을 벌러 한국에 온 40~50대 조선족 남자들이 도박에 많이 빠진다고 들었다”며 “매달 월급의 반 이상을 도박에 쏟아붓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외에 경마장이나 스크린 경마 게임장 등에도 일용직으로 일하는 조선족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운영하는 중독예방치유센터에도 도박에 빠진 조선족들의 고민 상담이 간혹 들어온다. 한 식당 주인은 성실하던 조선족 종업원이 도박에 빠져 안타깝다고 연락을 하기도 했다.

도박의 덫에 걸린 조선족들이 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정임 중독예방치유센터 상담원은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은 보통 가족·친구 등의 지지기반이 없거나 스트레스를 건전한 방법으로 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며 “받을 수 있는 도움에 대한 정보가 적어 상담을 요청하는 조선족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조선족교회 이호형 목사도 “조선족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도박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아는데, 적극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는 이는 드물다”고 말했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어느 사회에서든 소속감이 부족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도박에 쉽게 노출된다”며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돈만 있으면 대접받는 기분이 들 수 있어 카지노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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