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4개월 동안 한·중·미·일에서 심층 인터뷰를 한 조선족 90여명 가운데 ‘정치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중국 길림성에서 만난 조선족은 중국인보다 우월하다는 민족적 자긍심을 숨기지 않았지만, “간도는 우리 땅”이라는 일부 한국인의 극단적 민족의식은 경계했다. “중국 정부를 쓸데없이 자극하여 조선족 민족자치를 오히려 방해하는 일”이라고 평했다. 서울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종종 꺼냈다. 2003년 노 전 대통령은 서울조선족교회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조선족을 직접 찾아갔다. 그 일은 조선족 사이에서 ‘전설’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최근 한-중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을 걱정했다.
기사를 보고 법무부 어느 관계자가 연락해 왔다. “지난 20여년 동안 관련 정책을 직접 겪고 지켜봤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공무원은 현장에 천착한 기사에 크게 공감해주었다. “그동안 조선족 관련 여러 보도를 봤다”는 그는 옮겨 적기에 면구스럽도록 이번 기획을 호평했다. 한국 정부의 조선족 정책에 대해서는 “비자에만 매몰된 역사였다”고 자평했다. “입국 비자만 발급하고 저 반대편에서 (생활의 터전이) 붕괴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조선족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문화가족 관련 연간 예산이 800억원인데, 조선족을 포함한 국내체류동포 지원 예산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취재에 앞서 검토한 4500여쪽의 단행본·연구논문·학위논문 가운데 비슷한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선족이 중국 국민이라는 전제 아래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 등을 통해 중국내 조선족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 (한국·중국·조선족)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임계순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분석했다. 중국에서 자립한 조선족이 “장차 남북교류와 통일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서울조선족교회 김사무엘 목사도 말했다.
자립의 기반 가운데 교육도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학교인 유하조선족완전중학교를 돕겠다는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 부산에 근거한 청소년 서점 ‘인디고 서원’은 유하조중을 방문하고 교류하는 사업을 추진중이다. 이 서점이 발행하는 격월간지 <인디고잉> 11월호는 유하조중 학생들의 편지를 받아 실었다. 유하조중 김경수 교사는 “기사를 보고 도와주시겠다는 한국분들이 많이 연락해 왔다. 그 따뜻한 마음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연락처는 qingxiu123@hanmail.net이다.
미국내 소수인종계 언론사 2000여개를 대표하는 <뉴아메리카미디어>는 취재진에게 연락하여 “이번 기획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조선족 대이주는 국제적 관심사였다.
얼마 전 취재기자 가운데 한 명에게 걱정이 생겼다. 경상북도 어느 소도시에서 90대 친척 할아버지를 5년여 동안 간병했던 60대 조선족 할머니가 갑자기 중국에 돌아가게 됐다. 대신하여 돌볼 이가 없었다. 어렵게 새로 간병인을 구했다. 역시 조선족 할머니였다. 그들 없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다.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여전히 적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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