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 사회2부 선임기자
쥔 것도 없는데 “떼쓴다”는 딱지만
붙은 중소농민들 FTA조차 관심없다
붙은 중소농민들 FTA조차 관심없다
김행우(59)씨는 말을 하다 말고 또 돌아섰다. 눈물을 훔쳤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모든 게 다 힘들어요. 에프티에이 되면 하위 30%의 양돈농가는 문을 닫겠지요. 유럽이나 미국하고 경쟁할 수가 있나요?”
경기도 양주의 양돈농가를 찾았다. 김씨는 지난해 12월20일 살이 에이도록 추운 날, 새벽까지 돼지 2200마리를 땅에 묻었다. 아직까지 구제역 보상금을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 그 돈으로 어미돼지 180마리를 들여왔지만, 돈사 3곳 중에 2곳은 여전히 비어 있다.
그래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밀어붙일 것이고, 양돈농가한테는 또 작은 떡이 주어질 것이다. 정말로 농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도 갖고 있는가? 차라리 농가 피해금액을 가감없이 산정해, 직접 지급해 주는 것이 정직한 자세가 아닐까? 그게 정의에 더 부합한다는 생각이 든다.
늘 그랬다. 농민들은 집회에 나섰고, 정부에서는 ‘안 된다’ 하다가, 야당이 물리적 투쟁에 나설 때쯤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농촌에 천문학적 퍼주기가 이뤄졌다는데, 농가의 빚은 늘어가고 도시와의 소득격차는 벌어지기만 했다. 마을 학교는 문을 닫고, 면 소재지의 목욕탕이 사라져갔다. 참담하게도, 돈이라는 단물이 가장 중요한 농민들의 자력갱생 의지마저 꺾어놓았다. 주머니에 쥔 것도 없는데, 언젠가부터 떼쓰는 농민이란 딱지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농촌에서도 힘없는 중소농들은 에프티에이에 관심이 없다. 그거 한다고 뭐가 더 나빠질 것인지, 알지도 못한다. 이미 다 결딴났고, 희망이 없는 것이다. 한-미 에프티에이의 피해를 걱정하는 축산과 과수 농가들은 그래도 농촌에서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다.
농업계 사람들끼리 ‘그들만의 작은 리그’에서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이제 아무도 듣지 않는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바깥으로 들리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농업을 떡 하나 더 줄 대상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의식이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 속으로 독버섯처럼 퍼져가고 있다.
괜찮았다 싶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있었는가? 까마득하다. 청와대와 여론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하다가 모두 사라져갔다. 정운천, 장태평 전 장관은 하위 30%의 농민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유정복 전 장관은 신망을 얻기는 했으나, 친박 캠프에서 잠시 외유 나온 사람이었다. 서규용 장관은 어떤 철학과 소신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조 없는 장관들이 자리를 지켰으니, 농민들이 불쌍하다.
농식품 장관이 뭐 대단한가 하겠지만, 그래도 5년짜리 장관을 기다린다. 농업과 농촌 위기진단의 공감대를 만들고, 정책의 줄기를 잡아가자면, 5년으로도 부족하다. 농기업 몇개, 2만명 억대농부를 홍보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부의 일이 아니다. 농촌에서도 어려운 아래의 30%, 아니 밑바닥 10%를 위한 정책이 좋은 정책이다. “덜 똑똑해도 좋으니, 이제 5년짜리 장관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떠들고 다닌다.
스위스의 농민들은 땅과 물, 그리고 경관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소임을 맡고 있다. 정부에서 받는 직불보조금이 농가소득의 절반을 넘어서지만, 도시 사람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농민 세금을 낸다. 우리 농민들도 스위스 농민들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 녹색당을 창당한다는데, 거기에서도 농업계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농업계의 진보는 이미 진보의 주류 세력에서 소외된 모양이다. 물론, 농업계의 보수 또한 보수의 주류에서 낙오된 지 오래다. 녹색당이 아니라면, 녹색농민당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떤가? koala5@hani.co.kr
스위스의 농민들은 땅과 물, 그리고 경관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소임을 맡고 있다. 정부에서 받는 직불보조금이 농가소득의 절반을 넘어서지만, 도시 사람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농민 세금을 낸다. 우리 농민들도 스위스 농민들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 녹색당을 창당한다는데, 거기에서도 농업계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농업계의 진보는 이미 진보의 주류 세력에서 소외된 모양이다. 물론, 농업계의 보수 또한 보수의 주류에서 낙오된 지 오래다. 녹색당이 아니라면, 녹색농민당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떤가?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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