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인증샷 놓고 애매합니다이~ 오늘 투표했다고 밝히는 것 자체로 쇠고랑 안 찹니다잉~ 경찰 출동 안 해요이~.”

10·2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이른바 ‘인증샷 지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규제 방침을 내놓았지만, 시민들은 투표일인 26일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 투표를 놀이와 축제로 탈바꿈시켰다.

앞장은 소설가·방송인 등 유명인들이 섰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트레이닝복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안경을 벗은 채 “누군지 모르겠죠?”라며 인증샷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선관위가 24일 내놓은 ‘선거일의 투표 인증샷에 대한 10문 10답’에서 금지한 ‘유명인사들의 투표 참여 권유’를 비켜가는 인증샷을 올린 것이다. 김씨의 재치는 많은 누리꾼을 웃게 했다. 가수 이효리씨는 투표 당일 자신이 키우는 애완견의 얼굴만 나온 투표 인증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투표하셨다는 멘션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네요. 참 멋진 분들이십니다. 선관위가 발표한 불법 독려 조항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저는 닥치고 중계방송이나 하겠습니다. 하지만 쫄지는 않겠습니다”라며 유권자들을 격려했다.

이날 아침 7시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원아무개(36)씨는 투표소 건물 밖에서 손으로 브이(V)자를 그리며 자신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출근이 바쁘다면서도 그는 “트위터에 올리려고 인증샷을 찍었다. 트위터를 규제하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태도가 답답하다”고 했다.많은 유권자들이 저녁 8시까지 투표소 앞에서 찍은 자신의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는 ‘인증샷 놀이’를 즐겼다.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아예 유권자들이 올린 인증샷을 지도 위에 표시하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인증샷 놀이’ 페이지가 개설되기도 했다.

선관위 규제지침의 비현실성을 넌지시 꼬집는 ‘10번 놀이’도 이날 인기를 끌었다. ‘10번 놀이’는 누리꾼들이 나경원 후보의 기호 1번과 박원순 후보의 기호 10번을 운동선수 등번호에 빗대 선관위를 풍자하는 글을 올리는 것이다. 한 트위터 이용자(@koi****)는 축구대표 등번호 10번인 박주영 선수의 영국 데뷔골을 언급하며 “선관위는 박주영을 긴급체포하라. 오늘 같은 날 10번 달고 1번 골키퍼를 제치다니 너무 노골적인 선거운동 아닌가?”라는 글을 올렸다. 다른 트위터 이용자들도 유명 축구선수·야구선수의 등번호가 10번임을 나열하며 ‘10번이 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투표한 유권자에게 무료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힌 병원 원장이나 주점 업주들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 강남 등 3곳에 지점을 둔 ㅍ치과는 투표 인증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린 사람들에겐 원하는 날에 5만원 상당의 스케일링 치료를 무료로 해준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막걸리 전문점 ‘월향’은 투표일 하루 동안 투표 인증샷을 보여주는 손님에게 막걸리를 공짜로 주는 행사를 열었다.

김지훈 정환봉 이승준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