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예술 짓누르는 ‘빵의 현실’…스러지는 청춘들

등록 2011-10-07 21:07수정 2011-10-07 22:20

지난 6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본부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이 학교 학생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 학생 4명의 명복을 빌고 있다.   최우리 기자
지난 6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본부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이 학교 학생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 학생 4명의 명복을 빌고 있다. 최우리 기자
한예종 다섯달새 학생 4명 자살…추도식 열어
취업난속 불안한 미래에
작품활동 하며 극한 고독
학생·교수들 ‘슬픔 공론화’
비대위 꾸려 대책 논의
“당신들의 고민이 내 고민임을 압니다. 그래서 지금 이 슬픔을 압니다.”(교내 분향소에 적힌 한 학생의 추도글)

최근 다섯달 새 4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지난 6일 저녁 ‘먼저 떠나는 학우를 위한 추도식’이 열렸다. 그동안 친구와 제자를 잃은 아픔을 속으로만 삭였던 학생과 교수들이 침묵을 깨고 ‘슬픔의 공론화’에 나선 것이다. 이날 서울 성북구 석관동 캠퍼스의 학교본부 앞 광장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학생 200여명이 참가해 영정 대신 내걸린 박재동 교수의 그림 앞에 헌화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윤상정 총학생회장은 애도문에서 “과제가 많다는 이유로, 과와 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며 “학생, 교수와 학교가 함께 모여 의견을 모으고 해법을 나누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예종에서는 지난 5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미술원 2학년생 2명과 영상원 3학년생 1명, 4학년생 1명 등 모두 4명이 잇따라 자살했다. 경찰 쪽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은 취업시험 낙방, 학교생활 부적응, 부모와의 갈등 등을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3명은 숨지기 전 ‘죽고 싶다’는 말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남겼으며, 2명은 우울증 약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이들의 죽음이 최근 청년 취업난 속에 예술가로서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1993년 설립된 한예종은 음악원·연극원·영상원·미술원·무용원·전통예술원 등 6개 분원에 3000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예술실기 전문 교육기관이다.

손지훈(24) 미술원 학생회장은 숨진 미술원 학생들이 모두 2학년이었다는 점을 들어 “3~4학년이 되면 교수와 대면 수업이 이뤄져 사람들과 마주할 시간이 길지만, 2학년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방향을 잃고 공허해지기 쉽다”며 “혼자 하는 작품활동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영상원 학생도 “4학년이 되면 졸업작품 연출에 대한 고민과, 졸업 이후 진로 문제 때문에 두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심적 부담은 날로 심해지는데 이를 이겨낼 방법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교수들도 제자들의 잇단 죽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예종 교수협의회는 지난 5일 성명서를 내어 “전망 부재의 불안한 현실 속, 힘든 예술인의 길을 묵묵히 걷다가 죽음의 유혹을 마주치게 될지도 모를 학생들의 고뇌를 이해해야 한다”며 “상담인력 확대와 같은 단순 대책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전규찬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예술대학생들이 몸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슬픔과 비극을 알려내고 있다”며 “젊은 예술가들의 아픔을 한 학교의 일로 좁혀 보지 말라”고 말했다.

학교본부 학생과 관계자는 “지난 4일부터 전문상담원 수를 늘리는 등 긴급대책을 마련했고, 분원별로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12일에는 학교본부와 학생, 교수협의회가 참가하는 ‘학내 학생 사고 비상대책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최우리 박태우 기자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