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기농 현황
한국의 유기농을 이끈 대명사는 ‘한살림’과 ‘홍성’이다. 한살림은 1986년 출범한 이래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밥상 살림과 농업 살림, 나아가 생명 살림을 지향해왔다. “내 가족 먹고살자고 남 죽이는 농약을 칠 수 없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해, 유기농과 도농 직거래를 우리 사회에 안착시키는 결정적 구실을 했다. 전국 19곳의 한살림 매장을 통해 23만 도시 소비자 회원과 전국의 2000여 생산농가를 이어주고 있다.
한살림에 앞서 1975년 처음 유기농사를 시작한 충남 홍성지역은 한국 유기농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다. 홍동면 문당리를 중심으로 오리농법을 처음 시작했으며,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와 다양한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한국의 유기농을 이끈 인재들을 줄줄이 배출했다. 4대강 사업으로 위기를 맞은 경기도 남양주의 팔당지역도 한국 유기농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상수원 오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유기농사를 시작했고, 줄곧 수도권의 최대 유기농산물 공급기지 구실을 해왔다.
● 유기농시장 급성장 한살림과 홍성 등 유기농 선각자들의 생명운동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 제정으로 날개를 달았다. 정부의 지원과 함께 소비자들의 친환경 농산물 선호가 두드러지면서, 급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1년 450㏊에 불과하던 유기농 경지면적이 지난해 1만5518㏊로 크게 늘어났으며, 1000가구도 안 되던 유기농 생산농가도 지난해 1만790가구로 불어나 급기야 ‘유기농 1만 농가’ 시대를 열었다. 다만 전체 농가와 경지면적에서 유기농가와 유기농 재배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0.9%로, 다른 선진국들에 견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가공식품을 포함한 전체 유기농식품의 시장 전망은 매우 밝은 것으로 점쳐진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발표한 ‘제3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에서 2006~2008년 3년 동안 유기농산물과 유기가공식품은 각각 30.1%와 23.3%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으며, 앞으로도 고성장세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의 국내 유기농식품 시장 규모는 4043억원으로, 대부분 국산인 유기농산물이 1885억원이고 수입 비중이 86.3%인 유기가공식품이 2158억원에 이르렀다.
유기농사는 채소류와 곡류에서 가장 활발하고, 병충해에 약한 과일은 부진하다. 2001년에 일반농산물의 평균 2.1배(곡물 기준) 높게 값을 받았던 유기농산물의 가격프리미엄은 지난해 1.9배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초기에는 직거래와 소비자단체가 유통을 이끌었으나 대형 마트와 전문매장의 유통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 유기농 정책과 한계 국내에 유기농이 많이 확산됐다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농경지에 남아 있는 단위면적당 질소 총량이 1위이고, 인산 총량은 3위이다. 과도한 화학비료 투입으로 농업 생태계에 심각한 환경 부담을 주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농업의 균형이 깨진 나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보다는 우리 농사가 친환경 쪽으로 꽤 가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지구촌의 기대치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우리 친환경 농업정책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을 제정하면서 유기농뿐만 아니라 무농약과 저농약 농산물까지 포함시키는 과도기적인 ‘한국형 친환경’ 농업정책을 폈다. 유기농만을 친환경으로 여기는 세계 표준에서 벗어나, 기존 관행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좀 덜 쓰기만 해도 친환경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너그러운 정책을 폈던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무더기 살포하던 당시로서는 과도기적으로 불가피한 조처였다”며 “정부도 결국 유기농 중심으로 친환경 농업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저농약 농산물에는 2010년부터 친환경 인증을 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 친환경 농산물 221만6000t 중 무농약과 저농약이 각각 104만t과 105만4000t으로 전체의 94.5%를 차지해, 단시일 안에 세계 표준에 걸맞은 유기농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유기축산은 매우 부진하다. 2008년 162농가에서 2009년 95농가로 줄어들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기 사료 구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분뇨를 퇴비로 순환시킬 수 있는 땅의 확보는 더욱 요원한 실정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팔당 두물머리의 유기농 딸기 체험농장을 찾은 어린이가 허리 숙여 딸기를 따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유기축산은 매우 부진하다. 2008년 162농가에서 2009년 95농가로 줄어들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기 사료 구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분뇨를 퇴비로 순환시킬 수 있는 땅의 확보는 더욱 요원한 실정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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