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특집] 유기농은 생명이다
농약·비료 안쓴 재배법 넘어
퇴비~가공까지 친환경으로
지구 오염·식량부족 풀어줄
‘지속가능한 농업’ 자리매김
농약·비료 안쓴 재배법 넘어
퇴비~가공까지 친환경으로
지구 오염·식량부족 풀어줄
‘지속가능한 농업’ 자리매김
남양주 세계유기농대회 9월26일~10월5일
뉴질랜드의 농민 존 피어스는 33년 전 오클랜드 북서쪽 80㎞ 떨어진 해안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땅 400㏊를 사들였다. 잡초가 무성한 땅을 갈아엎고, 근처 어부들이 팔지 못해서 내버린 가오리로 퇴비를 만들어 천연 미네랄을 넉넉하게 공급했다.
피어스의 셸리 비치 농장은 이제 ‘땅과 똥’의 힘으로 건강한 작물을 길러내고, 그 부산물로 가축의 먹이를 삼는 자연순환 유기농의 산실로 자리잡았다. 피어스의 농장은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다음 세대로 ‘정의로운 농업’을 이어가는 산 교육장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농장에서 두 달째 ‘인턴 농부’로 지내고 있는 대학생 한창희(22)씨는 “직접 퇴비와 액비를 만들고 배울 수 있어 힘들지만 즐겁다”며 “한국에 돌아가 좋은 농사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유기농은 젊은 농부들의 꿈이자 보장된 미래로 꼽힌다. 땅과 물, 공기를 살리는 데 이바지하면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600㎞ 떨어진 오커나건에서 3대째 농장을 운영하는 젊은 농부 트리스탄 메넬은 사과농사로 연 100만달러 이상의 매출과 20만달러 이상의 순소득을 올리고 있다. 밴쿠버에서 소비하는 과일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오커나건 농부들의 65%는 유기농사를 짓고 있다. 가장 앞서 유기농을 이끌고 있는 유럽에서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외치는 소비자들의 요구와 맞물리면서 유기농 시장 규모가 해마다 10%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기농도 끈질기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 유기농의 메카로 알려진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지역은 1975년에 유기농을 향한 첫걸음을 뗀 뒤, 마을 전체가 유기농사를 짓는 공동체를 이뤄냈다. 강원 원주에서 시작한 한살림운동은 농촌에서 유기농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동시에 유기농을 이해하고 기꺼이 소비하는 건강한 ‘도시 농부’들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유기농은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 제정을 계기로 농약과 화학비료 없는 농사의 지속가능한 가치가 널리 확산되면서 지금까지 가파른 양적 성장의 길을 달려왔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전세계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와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유력한 대안으로 유기농 혁명을 제안하고 있다”며 “이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유기농업은 상업성 없는 ‘전통산업’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지구의 생명을 살리는 ‘미래산업’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유기농이 온전한 자연 생산이고 그래서 인체에 필수적인 미세물질을 더 많이 함유한 건강식품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오히려 땅속에 격리하며 소규모 가족농과 농촌공동체를 품위있게 지탱해 주는 기둥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 26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 단지인 경기 남양주의 팔당 등지에서 제17차 세계유기농대회가 열린다. 대회를 주최한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Organic Agriculture Movements·IFOAM·아이폼)은 “유기농은 생명이다”(Organic is life)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건강한 지구를 위한 우리의 비전’ ‘미래세대를 위한 배려’ ‘유기농업과 자연생태의 복원’ ‘유기농업을 위한 공정한 기회 제공’ 등 4대 주제 발표의 제목에서도 전세계 유기농사꾼들의 포부와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유기농의 생명철학은 사람이 먹는 식품을 넘어 화장품과 섬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도시농업 열풍으로도 번져나가고 있다. 남양주의 세계유기농대회에서는 이런 주제들을 심도있게 다루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유기농대회는 한국의 유기농을 질적으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흙살림의 이태근 대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는 게 유기농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종자부터 퇴비 순환, 유통과 가공에 이르기까지 생태계를 살린다는 유기농 철학을 철두철미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유기 종자조차 확보되지 않아, 대부분 잡종 종자와 수입 종자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유기농대회를 계기로 친환경 농산물의 개념을 세계 표준인 ‘친환경은 곧 유기농산물’로 점차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과제도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친환경 재배면적 19만4006㏊ 가운데 세계 표준에 걸맞은 유기농은 8.0%인 1만5518㏊에 불과했다. 친환경 농산물의 대부분이 글로벌 무대에서는 친환경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농약 또는 저농약 농산물이었다. 무농약은 농약은 금지하되 화학비료를 일부 허용하는 농산물이고, 저농약은 농약 사용을 일정량 이하로 제한한 농산물이다. 유기농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소수 선각자들이 한국 유기농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진정한 유기농 가치의 확산과 실천을 위해 건강한 소비자와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이번 유기농대회를 계기로 친환경 농산물의 개념을 세계 표준인 ‘친환경은 곧 유기농산물’로 점차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과제도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친환경 재배면적 19만4006㏊ 가운데 세계 표준에 걸맞은 유기농은 8.0%인 1만5518㏊에 불과했다. 친환경 농산물의 대부분이 글로벌 무대에서는 친환경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농약 또는 저농약 농산물이었다. 무농약은 농약은 금지하되 화학비료를 일부 허용하는 농산물이고, 저농약은 농약 사용을 일정량 이하로 제한한 농산물이다. 유기농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소수 선각자들이 한국 유기농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진정한 유기농 가치의 확산과 실천을 위해 건강한 소비자와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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