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 설교통해 투표강요…선관위 “문제없다”
“보수세력들, 정치적 목적위해 신앙 이용” 지적
“보수세력들, 정치적 목적위해 신앙 이용” 지적
서울지역 일부 대형교회가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도 무시한 채 목사 설교 등을 통해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교계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로 있는 강남구 신사동 소망교회와 보수 성향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길자연 대표회장이 사목중인 관악구 서원동 왕성교회 등은 지난 21일 담임목사 설교와 주보 광고란 등을 통해 교인들에게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용산구 서빙고동의 온누리교회 이름으로 ‘투표를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예배수업을 못하게 된다’거나 ‘학교에 동성애자가 급증한다’는 등의 근거 없는 내용을 담은 문자메시지(사진)도 무차별적으로 발송되고 있다.
보수 성향의 대형교회가 예배나 설교를 통해 교인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벌여 논란을 빚는 현상은 각종 선거 때마다 일상화되고 있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2007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신도 10만명이 모인 예배에서 “장로님(이명박 후보) 꼭 대통령 되게 기도해 달라”고 설교해, 서울고법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대형교회가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해 물의를 일으키는 배경에 대해, 교계 전문가들은 극우보수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회와 신앙을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23일 “대형교회는 설립 과정부터 세속적 기득권층으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았다”며 “특히 강남 대형교회는 한국 최고 기득권층과 직결돼 있고, 이들 기득권층이 본인들의 정치적 입장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교회를 활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대형교회의 목사직 세습 문제 등 교회 내부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정신 숭실대 교수(기독교학)는 “교회 내부 치부는 방치한 채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내부 문제로 시끄러운 교회 공동체를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보수세력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 판단한 보수 기독교 인사들이 교인들을 활용해 보수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주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교인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한 왕성교회 쪽은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차원에서 투표를 하자고 한 것이지,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라고 한 것은 아니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대형교회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운동에 대해 서울시 선관위가 적극적인 제재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주민투표 관련 발언에 대해 “종교적 지위를 이용해 투표 행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없으며, 목사의 설교를 따르지 않을 경우 부당한 처사를 당할 것으로 보기 힘들어 위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투표거부 시민운동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 “선관위가 종교지도자들의 불법 주민투표 개입행위에 대한 단속활동을 약속했음에도 불법행위를 나몰라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또 시민운동본부는 “부도덕한 목회자들이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나는 ‘종교투표’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며 선관위의 적극적인 단속과 조사를 촉구했다.
이충신 박태우 기자 cs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