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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끔찍한 새벽 “용역들이 각목과 소화기로…”

등록 2011-08-04 15:13수정 2011-08-05 09:44

경찰은 농성장 입구에 경비를 서고 있다. 시민들과 용역직원들 사이 추가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사진 허재현 기자
경찰은 농성장 입구에 경비를 서고 있다. 시민들과 용역직원들 사이 추가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사진 허재현 기자
4일 새벽 명동철거농성장, 용역들 경찰 바깥에 있는데도 무차별 공격
여성 2명 실신, 배제훈 위원장 각목 맞아 머리 꿰매는 부상
“여자분 머리채를 땅에 꽂고 비명 소리 들리는데도 발로 차”
 3일 밤 10시 30분. 서울 중구 명동 재개발 3구역 ‘철거민 농성장’ 카페 마리 앞에서 문화제를 마친 철거민과 시민 백 여명은 기습적으로 마리 건물 1층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날 새벽 5시께 용역 직원들에게 빼앗긴 농성장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육중한 덩치의 용역들은 닥치는 대로 각목과 주먹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용역들이 뿌린 소화기 분말 탓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기저기 주먹이 날아들었고 한 시민은 소화기에 머리를 얻어맞아 병원에 실려갔다.

[4일 새벽 충돌 영상]


 “용역 한 명이 어떤 여자 분의 머리채를 붙잡고 땅에 내리꽂더라고요. 비명소리가 들리는데도 용역은 계속 발로 찼어요. 그분은 결국 병원에 실려갔어요.”

현장을 목격한 전기훈(26)씨는 “용역 직원들이 밑도 끝도 없이 폭력적이었다”고 증언했다.

새벽 4시께 용역 직원들과 시민 20여명은 20여평 남짓한 농성장 안에서 대치 상태에 있었다. 시민들은 더 이상의 충돌을 막으려고 스크럼을 짠 채 건물 안 화장실 근처에서 연좌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용역직원들의 기습 폭력이 재개됐다. 농성장은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스크럼을 짜고 있었어요. 우리는 더 이상 용역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었어요. 그런데 용역직원들이 갑자기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어요.”

배재훈 명동3구역 위원장은 용역직원들에게 머리 뒷부분을 각목으로 얻어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위). 용역직원들이 3일 새벽 기습적으로 빼앗아간 농성장은 폐허로 변했다. 사진 허재현 기자
배재훈 명동3구역 위원장은 용역직원들에게 머리 뒷부분을 각목으로 얻어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위). 용역직원들이 3일 새벽 기습적으로 빼앗아간 농성장은 폐허로 변했다. 사진 허재현 기자
진씨는 배재훈 3구역 비대위원장(53)이 용역에게 맞는 모습을 목격했다. “용역에게 주먹으로 얼굴만 7대 맞으셨고요. 각목으로 머리를 두 대 더 맞았어요. 배 위원장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는데 머리에 피가 나기 시작해서 결국 병원에 실려갔어요.”

4일 아침 만난 배재훈 위원장은 본인이 어떻게 맞았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퍽 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머리를 만져보니까 뜨겁고 끈적끈적한 게 느껴졌어요.” 배 위원장은 바로 병원에 실려가 머리를 꿰맨 뒤 다시 농성장으로 달려왔다.

 김매미(18)군도 이날 새벽 농성장을 지키다 용역직원에게 구타당했다. “경찰이 농성장 바깥에서 지키고 있는데도 시민들을 때리더라고요. 용역들은 벽돌같이 단단한 물건으로 제 머리를 내려쳤고요. 들고있던 각목으로 제 머리와 팔을 계속 때렸어요.” 4일 아침 농성장 앞에서 만난 김군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병원에서 왼쪽 팔 인대가 늘어났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아즈(20·가명)씨는 용역이 20대 남성 한 명의 머리채를 붙잡고 책상에 내려치는 것을 말리다가 얻어맞았다고 했다. “그 분을 때리지 말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 용역이 이번에는 제 머리채를 잡고 저를 내동댕이 쳤어요. 발로 제 배를 밟으면서 계속 때리기에 도망쳐 나왔습니다.” 아즈씨는 “용역들이 시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개·돼지처럼 보는 듯 했다”고 말했다.

[3일 밤 충돌 영상]


3일 밤과 4일 새벽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시민 십여 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용역에게 각목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병원에 실려간 최아무개씨는 뇌출혈 증세를 보여 현재 입원해 있는 상태로 전해졌다. 철거민들은 격렬한 충돌 끝에 한 때 농성장을 되찾았으나 부상자가 속출해 이날 오전 7시 30분께 자진해서 농성장을 빠져나왔다.

 농성장은 다시 용역직원들의 차지가 되었고 4일 오후 현재 20여명이 농성장 안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8월 5일 수정:4일 밤 10시께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마리 농성장을 되찾았다.) 용역직원들은 자신들도 많이 맞았다고 주장했으나 자세한 인터뷰는 거절했다. 경찰은 시민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농성장 바깥의 입구를 지키고 섰다.

용역직원들로부터 폭행당한 시민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3구역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허재현 기자
용역직원들로부터 폭행당한 시민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3구역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허재현 기자
 철거민들은 “시행사가 법원의 조정을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농성장을 빼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배재훈 위원장은 “7월 중순 법원은 ‘농성장(카페 마리)에 대한 퇴거를 8월16일까지 유예하고 대화로 해결하라’고 했는데 시행사가 용역직원들을 동원해 농성장을 빼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정비주식회사 이민석 대표는 “철거민들이 자꾸 철거를 방해해 용역직원들이 농성장으로 들어간 것”이라며 “용역직원들이 자신의 판단으로 들어간 것이고 우리가 지시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11시. 철거민 박근준(62)씨는 농성장 앞 인도에 앉아 울고 있었다. 명동에서 ‘이모낙지’라는 식당을 9년째 해오다 강제 철거당한 세입자였다. 9년 전 보증금과 권리금 포함 2억원을 투자했는데 시행사가 ‘4천만원밖에 보상할 수 없다’고 해 농성을 해오고 있는 철거민이었다. 육십을 넘긴 박씨는 지난 새벽 용역직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한쪽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억울함을 대체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합니까. 이 나이 먹어서 용역들에게 밟히고 나니 이제 세상이 싫어집니다.”

 박씨가 앉아있던 천막 위로 가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천막 위에서 ‘우두둑’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박씨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서울 중구청은 철거민과 시행사 사이에 충돌이 계속 돼 3일 오후 시행사에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철거공사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영상 정주용 피디 j2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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