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복권가게에서 이번주(5회차)에 추첨하는 연금복권이 매진된 뒤 다음주 수요일(10일)에 추첨하는 6회차 연금복권이 판매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구매자 중 59%가 40~50대
매회 나오자마자 매진행렬 “현실 막막 믿을 건 복권뿐”
로또보다 당첨 확률 높아 막연한 기대심리 부추겨
매회 나오자마자 매진행렬 “현실 막막 믿을 건 복권뿐”
로또보다 당첨 확률 높아 막연한 기대심리 부추겨
지난달 27일 낮 서울 종로5가의 ㅈ복권방. ‘로또’와 ‘스포츠토토’ 등을 사려는 사람들 사이로 연금복권을 찾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연금복권 5장을 주머니에 넣던 박아무개(58)씨는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사는 것도 팍팍한데 매달 몇백만원씩 들어온다면 이게 기적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1일 한국연합복권이 판매하기 시작한 ‘연금복권 520’은 당첨금을 일시불로 주던 기존의 복권들과 달리, 매주 1등 당첨자 2명에게 20년 동안 다달이 500만원(총 12억원·세금 납부 전)을 지급하는 새로운 개념의 복권이다.
손님에게 연금복권을 내주던 복권방 장아무개(44) 사장은 “인기가 금방 사그라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어질지는 몰랐다. 나오자마자 금방 다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연금복권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매회 630만장이 발행되는데, 4회차까지 모두 매진됐고 3일 저녁 추첨하는 5회차 복권도 대부분 복권방에서 지난주에 자취를 감췄다.
마포구의 한 복권방 주인 원아무개(58)씨는 “3회차까지는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물량이 풀렸는데, 지방 상인들의 항의로 현재는 물량을 공평하게 나눠 물량 확보가 어렵다”며 “그동안 복권을 팔지 않던 슈퍼·세탁소 등에서도 연금복권을 팔려고 한다”고 전했다. 연금복권을 추첨하는 매주 수요일 저녁, 트위터에는 당첨을 기대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당첨자 발표 뒤 한국연합복권 누리집은 접속자가 몰려 마비되기도 했다.
한국연합복권 쪽은 연금복권의 1등 당첨 확률이 315만분의 1로 로또(814만분의 1)보다 높은데다, 매주 당첨자가 나오고 인터넷 구매가 가능한 점을 인기몰이의 배경으로 꼽았다. 또 연금복권 열풍의 이면에는 노후 준비를 충실히 하지 못한 우리 사회 중년층의 불안심리에다 ‘한방’에 대한 기대심리까지 투영돼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한국연합복권이 지난 7월 1·2회차 구매자 3290명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40~50대 구매자가 전체의 59.4%(1954명)를 차지했다. 4회차까지 1등 당첨자 8명의 나이대를 봐도 40~50대가 6명(20·30대 한 명씩)으로 가장 많다.
ㅈ복권방 장 사장은 “복권 사는 분들이 당첨되면 직장 때려치운다는 농담도 많이 한다”며 “아무래도 노후가 불안한 사람들이 연금복권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도 매주 연금복권을 산다는 장 사장은 “가게를 언제까지 할지도 모르고, 혹시라도 당첨되면 노후 대비는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1회차부터 4회차까지 꼬박 연금복권을 산 김아무개(70)씨는 “쉽게 당첨될 리 없겠지만, 당첨만 되면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트위터에는 “가능성이 적다는 걸 알면서도 믿을 게 복권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학원강사인 이아무개(39)씨도 “현실이 어렵다 보니 안정적인 노후 대비에 대한 꿈으로 연금복권에 끌리게 된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연금복권 열풍에 대해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지만 풍족한 연금 혜택을 받는 사람이 극소수이고 노후가 막막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우리 사회 중·장년층이 복권에 매달리는 불안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정부 ‘연금’ 내세워 서민 호주머니 털기? “노후복지대책 고민해야” 지적 연금복권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서민들의 노후 대비를 위한 복지 확충은 뒷전인 채 막연한 기대심리를 조장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 고령층의 ‘불안한 노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보면 55~79살 고령층의 47.2%만 연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평균 수령액도 한달 36만원에 불과했다. 또 생활비 부족 등을 이유로 고령층의 58.5%는 은퇴 이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 이런 현실을 이유로 전문가들은 정부가 연금복권을 홍보하기에 앞서 서민들의 노후 복지 확충을 위한 대책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흥식 서울대 교수(사회복지)는 “복권은 서민들끼리 돈을 모아서 소수의 서민에게 주는 ‘제 살 뜯어먹기’”라며 “연금복권 열풍은 우리 사회의 노후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승협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퇴직연금 제도를 보완해 노후 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등 (복권보다) 노후 복지 대책을 어떻게 구축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복권 판매로 모인 기금은 공익사업에 쓰인다”며 “다만 정부에서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여론도 있어 연금복권 규모를 더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신 이승준 기자 cslee@hani.co.kr
정부 ‘연금’ 내세워 서민 호주머니 털기? “노후복지대책 고민해야” 지적 연금복권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서민들의 노후 대비를 위한 복지 확충은 뒷전인 채 막연한 기대심리를 조장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 고령층의 ‘불안한 노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보면 55~79살 고령층의 47.2%만 연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평균 수령액도 한달 36만원에 불과했다. 또 생활비 부족 등을 이유로 고령층의 58.5%는 은퇴 이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 이런 현실을 이유로 전문가들은 정부가 연금복권을 홍보하기에 앞서 서민들의 노후 복지 확충을 위한 대책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흥식 서울대 교수(사회복지)는 “복권은 서민들끼리 돈을 모아서 소수의 서민에게 주는 ‘제 살 뜯어먹기’”라며 “연금복권 열풍은 우리 사회의 노후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승협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퇴직연금 제도를 보완해 노후 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등 (복권보다) 노후 복지 대책을 어떻게 구축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복권 판매로 모인 기금은 공익사업에 쓰인다”며 “다만 정부에서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여론도 있어 연금복권 규모를 더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신 이승준 기자 cs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