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삼각형, 노란 사각형, 녹색 원형…
색깔 혼동으로 사고 위험 불구
면허 시험때 본인 신고에 의존
경찰 “국제기준과 달라 어렵다”
색깔 혼동으로 사고 위험 불구
면허 시험때 본인 신고에 의존
경찰 “국제기준과 달라 어렵다”
요즘 자동차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색각’(색채를 식별하는 시각) 이상자들은 곤혹스럽다고 한다. 그동안은 운전면허시험장 안의 신체검사장에서 응시자 전원이 색채식별 검사를 받았지만, 지난달 10일부터 운전면허시험제도가 바뀌어 응시자 스스로 ‘색맹’ ‘색약’ ‘정상’ 중 하나를 골라 표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색맹이나 색약 등 색각이상자의 운전은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다. 이들은 비슷비슷한 물체를 붙여놓으면 적색과 녹색을 혼동하기 쉬운데, 교통 신호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색각이상자는 15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일부는 초록색 나무에 달린 붉은 열매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색이 다른 지하철 노선표를 혼동할 때가 있다.
그런데도 새 운전면허시험제도에는 이들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 도로교통관리공단 쪽은 색각이상자의 경우 시험에서 걸러진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면허시험처 관계자는 “응시자가 스스로 색각이상자라고 기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며 제도적 맹점을 인정하면서도 “도로주행시험에서 색 구별 여부를 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색각이상자가 신호 순서 등을 외워서 시험에 응시하면 시험 감독관이 가려내지 못할 수도 있다.
색각이상자 권리찾기 모임인 ‘색치사랑’의 한 회원은 “운전을 하는 색각이상자 중에 색을 제대로 구별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신호 오인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위험이 항상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색각이상자들은 신호등이 일반 전등에서 엘이디(LED) 전구로 바뀐 뒤 운전이 더 힘들어졌다고 호소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밝게만 보이지만 색각이상자들의 눈엔 주위의 빛이 반사돼 색 구분이 오히려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한 색각이상자는 “주위의 빛에 반사돼 식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밤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엘이디(LED) 신호등의 빛번짐 현상이 있어 분간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인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색각이상자도 맘놓고 운전을 할 수 있는 도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운전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 둥근 형태 일색으로 돼 있는 신호등을 색각이상자들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모양을 다양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현준영 분당 서울대병원(안과) 교수는 “신호등을 형태로 구분하도록 만들어 주면 색각이상자들도 무리없이 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지 신호인 빨간색은 삼각형, 멈춤 신호인 노란색은 사각형, 직진은 원형, 좌회전은 화살표 모양으로 바꾸면 색각이상자들이 쉽게 가려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경찰청은 이런 제안에 난색을 나타냈다. 경찰청 교통운영계 박현준 경감은 “우리만 국제기준과 다른 신호등 모양을 도입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며 “선진국이 도입한다면 우리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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