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작업, 허용치 이하라도 발병 가능성 인정
산안보건연 조사, 평소와 다른 상태서 측정 결론
산안보건연 조사, 평소와 다른 상태서 측정 결론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산업재해 일지
법원 판단 근거
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유해화학물질과 전리방사선 등 발암물질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에 걸렸다고 판단했다. 백혈병 등에 걸린 5명의 노동자 모두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사실은 인정했지만, 3명의 노동자는 직접, 오랜 기간 노출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 발병의 인과관계가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취업 당시 건강상태와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 원인이 있었는지 여부, 해당 사업장에서의 근무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질병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면 입증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 발암물질에 장기간 노출… 만성·저농도 오염 법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산재가 인정된 황유미(사망 당시 23살)씨와 이숙영(사망 당시 30살)씨는 오랜 기간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됐다. 황씨 등은 기흥사업장 3라인에 근무하며 ‘습식식각’(Wet Etching) 등의 업무를 1년8개월~10년간 담당했다. 습식식각은 반도체를 화학물질에 담가 필요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수동설비가 갖춰진 3라인에서 황씨 등은 직접 화학물질에 손을 담가 반도체를 꺼내야 했다. 업무효율을 이유로 안전보호구는 사용하지 않았다.
환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생산설비를 점검하며 오염물질이 유출되면 외부 공기를 10~20%가량 유입시켜 재순환하는데, 오염물질이 라인 내부 공간 등을 순환하면서 근로자나 검지기가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만성적인 저농도 오염을 일으켰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황씨 등이 ‘지속적’으로 노출된 오염물질은 의학적으로 발암물질이라고 인정된 유해화학물질이었다. 의학계의 말을 종합하면, 전리방사선과 벤젠 등은 백혈병의 발병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전리방사선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도 누출된 방사선으로 유전자에 손상을 일으키는데, 골수세포 등이 영향을 받으면 백혈병이 발병할 수 있다. 전리방사선을 발생시키는 임플란트 공정은 황씨 등이 근무한 곳에서 80m가량 떨어져 있어, 재판부는 이들이 전리방사선에 노출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출량이 허용기준 미만이었다 하더라도 황씨 등이 1년8개월 동안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면서 전리방사선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백혈병을 유발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 “발암물질 없다” 삼성 주장 배척 재판부는 유해화학물질이 기준치에 못 미친다는 삼성의 반도체공장 역학조사 결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발암물질이 없다는 삼성 쪽의 조사는 상·하반기에 일정한 측정시기를 정해 해당 기간 동안 작업 장소별로 한차례 측정한 것”이라며 “이는 평소의 작업 환경을 측정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2007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기흥사업장 역학조사를 의뢰해 “화학물질 수준이 매우 낮고,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젠 등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서울대 산업협력단이 5개월 동안 반도체 사업장의 위험성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83종의 화학물질이 발견됐는데, 이 가운데 24종의 물질만 관리되고 있었다.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의 암 발병 위험이 일반 국민보다 높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도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 발병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인정됐다. 이는 2008년 국내 반도체 제조사 6곳을 조사한 결과인데, 재판부는 “일반 국민보다 표준화 사망비나 표준화 암등록비가 높아, 황씨 등의 작업 환경이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삼성전자는 2007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기흥사업장 역학조사를 의뢰해 “화학물질 수준이 매우 낮고,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젠 등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서울대 산업협력단이 5개월 동안 반도체 사업장의 위험성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83종의 화학물질이 발견됐는데, 이 가운데 24종의 물질만 관리되고 있었다.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의 암 발병 위험이 일반 국민보다 높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도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 발병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인정됐다. 이는 2008년 국내 반도체 제조사 6곳을 조사한 결과인데, 재판부는 “일반 국민보다 표준화 사망비나 표준화 암등록비가 높아, 황씨 등의 작업 환경이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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