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저녁 서울 영등포역 앞 거리에 늘어서 있는 오락실 풍경.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백원넣고 백만원’ 유혹에 휘청
수백명 북적 “마누라도 도망갔어” “22버~언, 22번에 쓰리바~, 쓰리바 터어~졌습니다. 축하드립니다.” 6일 밤 10시쯤 서울 은평구 연신내의 ㅇ오락실. 귀를 때리는 팡파르 속에 오락실 직원의 축하방송이 울렸다. 내기 돈 100원에 1만배인 100만원이 터진 것이다. 오락실을 메운 손님들의 충혈된 눈도 그쪽을 향했다. 22번 자리의 ‘바다이야기’ 게임기는 그때부터 2만원과 1만원짜리 ‘잭팟’을 연이어 터뜨렸다. 옆에 달린 상품권 지급기에선 5천원짜리 상품권이 30분 이상 쏟아졌다. 최근 도박성이 큰 게임기들이 잇달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면서 성인오락실이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몇백만원의 당첨금을 챙길 수 있는(예시·연타 기능) 신종 게임기들이 등장해 서민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이 게임기들은 ‘250만원, 300만원이 터질 수 있다’며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서울에는 ‘황금성’, ‘바다이야기’, ‘남정’, ‘나이트호크’ 등이, 성인오락실의 메카로 불리는 부산 남포동과 서면에선 ‘제이에스 시리즈’와 ‘제이제이 시리즈’ 등이 날마다 수백억원을 빨아들인다. 하룻밤 240만원 날렸지만 “맛본사람 절대 손못뗀다” 1일과 6일 서울 영등포·연신내·종로3가·노원역 일대의 성인오락실들엔 이른 새벽인데도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1일, 초저녁부터 손님들로 100~200석이 가득 찬 영등포의 오락실들엔 100만~300만원에 이르는 그날의 최고당첨액을 써붙여 놓고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넥타이에 정장을 한 이부터 육체노동자와 상인으로 보이는 이, 20대에서 40, 50대에 이르는 여성까지 다종다양한 이들이 ‘대박’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박은 쉽게 터지지 않았다. 한 오락실에서 상품권을 손에 가득 쥐고 있던 중년 남성은 “80만원 넣어서 겨우 이거 20장 받았다”고 말했다. 상품권 20장이면 10만원. 하지만 오락실 바로 옆 환전소에서 장당 4500원에 교환하면 겨우 9만원이다.
“하룻밤에 240만원까지 날려봤지. 결국 마누라까지 도망갔어. 오락실 다니는 사람들 한 달이면 다 얼굴이 바뀌지. 자기 돈 다 쓰고, 여기저기서 돈 빌려서 하다가 결국 정말 바닥까지 떨어져서 딴 곳으로 도망가는 거야.” 1일 구로공단 근처 오락실 밀집거리에서 만난 김아무개(48)씨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김씨는 “한 번씩 큰 건이 터지는 게 문제”라며 “그 맛을 본 사람들은 절대 여기서 손을 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도 업주들의 불법을 방조했다. 종로 ㅈ·ㅁ게임장, 구로디지털단지 역 근처 ㅎ·ㅅ게임장 등 많은 성인오락실들이 한 차례 게임에 모두 200~300원씩 돈 걸기를 하는 게임기를 운영하고 있었다. 6일 자정께, “1게임당 100원만 걸 수 있도록 한 법규를 어기고, 200원씩 돈 걸기를 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종로3가의 성인오락실에 출동한 종로지구대 경찰관은 업소의 사업자등록증만 건성으로 확인했다. 그는 오락실 관계자와 한참 이야기만 하다가 아무런 조처 없이 돌아갔다. 영등위가 ‘대문’ 열어놓고
종로경찰은 출동하나마나 거의 모든 성인오락실들이 오락기의 40% 이상을 청소년용으로 채워야 하는 법규를 위반하고 있지만, 경찰·구청 등은 눈을 감고 있다. 전국 게임장 집계만 해도 경찰은 9179곳(5월 말 기준), 문화관광부는 성인과 청소년게임장을 구별하지 않고 1만3159곳(지난해 말 기준)으로 달리 파악하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2만여곳이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형섭 박상철 양상우 기자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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