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기소된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의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 앞에서 이 은행의 예금 피해자 50여명이 방청권을 받겠다며 바닥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피해자 장녀엽(70·부산 사상구 덕포동)씨가 울분을 터뜨리며 눈시울을 훔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부산저축 비리 첫 공판준비기일
박회장, 44억 횡령은 인정 7조 불법대출 혐의 부인
“9시간 차타고 줄섰는데 재판은 30분이라니…”
피해자들 자리 못떠나
박회장, 44억 횡령은 인정 7조 불법대출 혐의 부인
“9시간 차타고 줄섰는데 재판은 30분이라니…”
피해자들 자리 못떠나
26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66호. 구속피고인 출입문이 열리고 수의를 입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61) 회장 등 10명의 임직원이 법정으로 나오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들은 참았던 분노를 쏟아냈다. “죽어버려라.” “저 좀 살려주세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소란 속에 지독한 원망과 처절한 호소가 섞여 있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50여명은 불법·특혜대출 등 7조원대 비리를 저지른 혐의(특가법의 횡령·배임 등)로 구속 기소된 박 회장 등 부산저축은행 임직원의 첫 재판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새벽 4시30분에 부산역을 출발해 오전 10시께 법원에 도착했지만, 오후 1시부터 방청권을 나눠준다는 말에 바닥에 줄지어 앉아 꼬박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박일남(75)씨는 “선착순으로 준다고 해서 늦으면 ‘표’ 못 받을까 싶어 새벽같이 올라왔는데, 오면 바로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다”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일찍 표를 받았지만, 법원이 안전 등을 이유로 중간에 공익근무요원 등을 배치한 탓에 피고인석과 피해자들 자리 사이엔 거리감이 느껴졌다. “돈도 없다면서 우리 돈으로 변호사 샀느냐?” “저런 사람들을 변호하는 당신들이 변호사냐?” 재판이 시작돼 박 회장 등이 들어서고, 변호인이 소개되자 법정 안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20여명의 법원 관계자들은 법정 곳곳에 서서 방청객들을 제지했지만, 쏟아지는 원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검찰에 기소된 대부분의 임직원이 이날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한 반면, 박 회장은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박 회장 변호인은 “44억5000만원 횡령 부분은 인정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모두 법정에서 다투겠다”고 말했다. 대주주에게 4조5600억여원을 부당대출하고 2조4000억원을 분식회계했다는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이다. 박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자 또다시 소란이 일었고, 일부 피해자들은 자리에 앉아 계속 눈물을 훔쳤다.
이날 재판은 본격적인 심리공판을 시작하기 전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 ‘공판준비기일’이라 30여분 만에 끝이 났다. 하지만 이런 점을 알지 못한 피해자들은 재판이 ‘허무하게’ 끝나자 법정을 점거하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아무개(45)씨는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이게 무슨 재판이냐”며 “법원이 우릴 데리고 장난을 치고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후 피해자들은 20여분가량 법정을 점거하다 법원의 설명을 듣고 겨우 자리를 떴다.
한편 이날 박 회장 등 임직원 변호인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참을 기다리다, 피해자들을 피해 법정 옆문 구속피고인 출입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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