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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갈아엎고 거저 주고…농민들 ‘긴 한숨’

등록 2011-05-03 21:01수정 2011-05-03 22:14

전북 고창군 공음면의 하우스 밭 6000㎡에 석달 가까이 힘들여 배추농사를 지은 농민 신태전씨가 지난달 30일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배추농사를 괜히 지었다”며 한탄하고 있다. 신씨는 배추값 폭락으로 수확을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을 참이다. 신씨 뒤에 밭을 갈아엎기 전 공짜로 배추를 가져가라는 말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보인다.
전북 고창군 공음면의 하우스 밭 6000㎡에 석달 가까이 힘들여 배추농사를 지은 농민 신태전씨가 지난달 30일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배추농사를 괜히 지었다”며 한탄하고 있다. 신씨는 배추값 폭락으로 수확을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을 참이다. 신씨 뒤에 밭을 갈아엎기 전 공짜로 배추를 가져가라는 말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보인다.
작년 값 치솟아 재배 늘자 반년새 1천원대로 떨어져
산지 유통인들도 손 털어 피해 고스란히 떠안기도
이와중에 정부 비축량 풀려 “물가만 보고 농민 안중 없어”
배추 재배 ‘성난 농심’

지난달 30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의 비닐하우스 단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신태전(60)씨의 밭에서 배추를 잔뜩 실어가고 있었다. 토박이 농부 신씨는 애써 재배한 배추를 출하하기 어렵게 되자 아무나 양껏 가져가라고 널리 알려놓은 터였다.

“믿을 만한 사람이 (계약재배를) 소개해줘서 올해 처음으로 배추를 해봤는디, 요로코롬 돼야부렀어. 그냥 알타리무 했으면, 진작에 출하하고 속도 안 탔을 틴디….”

신씨는 올 2월 6000㎡의 하우스에 배추를 재배하기로 산지수집상과 ‘밭떼기’ 계약을 했다. 계약금으로 800만원을 받았지만, 잔금 1180만원은 날리고 말았다. 출하비용도 못 건질 지경으로 배추값이 떨어지자, 산지수집상들이 계약 이행을 포기한 때문이다.

신씨는 모종값으로 130만원, 인건비와 비료값으로만 이미 500만원을 썼다. 80일 뼈 빠지게 농사를 지은 결과는 빈털터리였다. 고창 읍내에서 ‘공짜 배추’를 가지러 왔다는 60대 주부는 “배추 따가면서도 너무 속상하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전국 최대 하우스 봄배추 산지인 충남 예산군 신암면 탄중리에서도 예년 같으면 배추의 80% 이상이 출하됐어야 하지만 이날까지 출하된 것은 10% 정도에 불과했다.

이 마을의 조권일(36)씨는 “다음 작물을 심어야 하는데 큰 손해를 본 산지수집상들이 배추 출하를 미뤄, 계약금의 20%를 돌려주고 이번주에 갈아엎기로 겨우 합의했다”고 말했다. 산지수집상들이 ‘배추밭 갈아엎기’를 허용해주는 대신, 농민들은 이미 받은 밭떼기 대금을 일부 토해내는 흥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지수집상들과 농민들은 고창과 예산 등지 하우스 봄배추의 50% 이상이 갈아엎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배추값이 4월 중순 이후 폭락한 데 대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봄배추 재배면적이 평년보다 54.3%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했다. 작황까지 좋아 실제 생산량은 25만3000t으로 70% 이상 급증했다는 것이다. 김치를 포함한 전체 배추 수입량(3만4182t)이 전년보다 52% 급증한 것도 가격 폭락에 한몫했다. 일부 유통상인들은 “정부가 저장해둔 물량 2000여t을 3월 중순부터 이미 값이 폭락하기 시작한 4월 중순까지 지속적으로 시장에 풀었다”며 정부의 ‘실책’을 원망했다.


예산군에서 배추밭을 갈아엎은 홍아무개(45)씨는 “배추값이 뛰면 곧바로 중국 배추를 수입하면서, 배추값이 떨어질 때는 정부가 부채질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물가잡기에만 매달려 농민은 안중에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촌경제연구원은 5월에도 배추 공급량이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어나고 가격은 10㎏에 2300~2700원까지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평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값이다. 6월에 나올 노지 봄배추의 출하도 20% 증가가 예상돼, 배추값 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하고 있다.

고창·예산/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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