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충정로1가 농협중앙본부에서 전산장애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법개정으로 비상근 명예직화 “실제론 상근하며 인사 영향력”
농협중앙회의 최원병 회장은 법적으로 비상근 명예직이다. 지난 22일 이재관 농협 전무이사가 사퇴 의사를 밝혔을 때도 농협은 “최 회장은 비상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전무가 아이티(IT) 사업의 실질적인 최고경영자이고, 최 회장은 직접 책임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거듭 설명했다.
농협은 중앙회에 출자한 1100여개 지역조합과 품목조합이 주인이고, 그들이 투표로 중앙회장을 선출한다. 비리와 구속으로 점철된 역대 농협중앙회장의 권한 집중을 견제하겠다는 정부와 사회의 의지가 지금의 지배구조에 그때그때 반영됐다.
역대 농협중앙회장은 1988년 정부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전환된 뒤 모두 재선이나 3선에 성공했으나, 검찰 수사와 관련해 물러났다가 구속됐다. 전세계 협동조합 중에서도 외형으로 최상위권에 들어가는 농협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조합원들의 이해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도, 중앙회장의 ‘힘 빼기’는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2004년 12월의 농협법 개정의 핵심은 중앙회장의 비상근 명예직화였다. 신용, 농업경제, 축산경제의 대표가 각 사업부문의 최고경영자가 되고, 전무이사는 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지도사업의 최고경영자 권한을 행사하도록 했다. 중앙회장의 역할은 한달에 한번 열리는 이사회 의장을 맡고, 대외업무 등에서 농협을 대표하는 일에 국한됐다.
2009년 6월 농협법이 한 차례 더 개정됐다. 각 사업 대표의 인사 추천권을 쥔 중앙회장이 여전히 실질적인 인사 및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회장의 인사추천권을 이사회에서 설치한 인사추천위원회로 넘기고, 중앙회장 직선제를 대의원 간선제로 바꾼 것이 이때 법 개정의 뼈대였다. 중앙회장의 임기는 4년 단임으로 제한됐다.
문제는 그 뒤에도 농협중앙회장의 권한 집중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산 사고가 난 뒤에도 기자회견장에 나온 최 회장은 “나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며 실무자를 질책하는 등 경영의 일상사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농협 관계자는 “중앙회장은 실제로 상근하고 있고, 각 사업부문 간부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말만 비상근이지, 농협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옷과 몸이 따로 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앙회장이 책임을 져야지, 왜 전무가 물러나느냐”는 언론의 의구심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는 성명을 내어 “농협의 회장-대표이사 제도가 원활하게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일선조합의 대의원과 임원, 조합장의 리더십을 잘 육성해 중앙회장을 제대로 견제하고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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