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리한 증빙 자료 요구
농가 “조사했으면서…” 불만
농가 “조사했으면서…” 불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구제역으로 가축을 매몰한 축산농민들에게 사육일지 등 구체적 증빙자료를 요구하며 보상금 지급을 미뤄 농민들이 급박했던 매몰작업 당시 상황을 외면한 ‘탁상 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9일 축산농민단체 등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가축을 살처분한 농민들에게 보상금의 50%는 매몰 직후 지급했지만, 나머지 50%는 사육·소독 일지 등의 증빙서류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농가에 지급을 미루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매몰 가축의 증빙자료가 미흡할 경우 보상금을 20%에서 최대 60%까지 감액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이런 방침에 맞춰 보상금 지급 실무를 맡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축산농민들에게 가축 교배일·분만일 등이 세세하게 기록된 사육 일지, 약품·소독·사료 관련 일지 등의 완벽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곳곳에서 축산농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대한양돈협회 이용복 여주지부장은 “정부가 터무니없는 증빙자료를 요구하면서 보상금 지급을 계속 미뤄 농가들이 다시 일어서려 해도 돈이 없어 재입식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지부장은 “매몰 당시 여주군청의 평가단이 와서 사육일지를 대조해가며 가축의 마릿수와 중량 등을 확인하고 내 서명을 받아갔다”며 “확인 작업을 마친 뒤 오염물질로 분류된 서류들을 지시에 따라 모두 태웠는데 이제 와서 없는 것을 다시 만들어 내놓으라니, 우리를 문서 위조범으로 만들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자료 요구 수준이 구제역 확산을 막으려 급박하게 움직였던 당시 축산농가 상황을 고려할 때 무리한 것이라는 지적에 일선 공무원들도 동의하고 있다. 경기도 한 기초자치단체의 담당 공무원은 “매몰 당시 현장에서는 서둘러 파묻기에 급급했다”며 “정부 기준에 따라 농장 일지 등을 다시 요구하고는 있지만, 다 태워버린 줄 아는 마당에 난감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농식품부가 현실적이고 명확한 보상평가 기준을 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에서 사육일지를 태우도록 지시했다면, 보상금을 다 줄 것인지 감액할 것인지 지자체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이라며 “보상금 지급을 신속히 하라는 공문을 지자체에 보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며 “감사원은 이들의 직무유기부터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지난주 농식품부 등에 대해 예비 감사를 했으며, 다음달부터 강도높은 구제역 감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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