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사립대 ‘본고사형’도입…
일반고 수업은 “학원 들러리”
“예를 들어 봅시다. 물리학 이론을 다룬 고난도의 영어 지문 두 개를 내준 뒤, 지문에 제시된 이론을 적용해 수식이 포함된 문제를 풀게 하고, 제시된 지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라는 유형의 통합교과형 논술 문제를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가르친다면 누가 담당할 수 있을까요? 국어 선생님입니까, 영어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과학 선생님입니까? 과연 학교가 논술·구술 강의로 먹고사는 강사들이 팀을 짜서 대학별·영역별로 맞춤형 수업을 하는 학원과 경쟁할 수 있을까요?”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들이 2008 학년도 입시에서 도입키로 한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벌써부터 일선 고교 현장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특히 통합교과형 논술은 내신 강화를 통해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목표로 한 교육혁신위의 새 대학입시 개혁안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고교 교사들은 우선 “말이 통합교과형 논술이지, 결국 영어·수학 중심의 변형된 본고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홍창범 교사(서울 경복고)는 “학교의 정규 수업으로는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비할 수 없다”며 “논술·구술 전문학원과 비교되면서, 학교가 또다시 교육에서 들러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윤 교사(서울 잠신고)도 “앞으로 ‘논술 대비반’ 형태의 보충수업이나 특강 등이 중요해지고, 정규 수업은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방 고교의 위기의식은 훨씬 심각했다. 임광찬 교사(목포 영흥고)는 “지금도 대부분의 지방 고교들은 논술과 심층면접 준비에 손을 놓다시피하고 있고, 막강한 정보망과 자본을 앞세운 사교육 기관은 각종 인성·적성문제, 논술·구술문제를 들이대며 학교와 학부모들을 ‘협박’하고 있다”며 “통합교과형 논술이 강화되면 학교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속수무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고교 교사는 “이대로 가면 토요일마다 서울에서 논술·구술 전문 강사들을 모셔와 학생들에게 과외를 받게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며 “교사들이 논술 과외 중개 구실을 해야 할 판”이라고 푸념했다. 학교에서 그나마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토론·탐구 수업의 싹이 잘려 나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임덕준 교사(서울 진명여고)는 “독서와 토론, 탐구활동 등 교육 본질에 맞는 활동을 부추기고, 창의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는 논술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영문 혼합 논술, 수리논술 등과 같은 변형된 본고사가 시행되면 문제 유형을 반복적으로 익히는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것”이리고 지적했다. 반면, 특목고는 통합교과형 논술 강화 방침을 반겼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교사는 “평소에 학교에서 학원 수준의 심화 논술·구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외고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내신 비중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대신 논술·구술의 비중을 높인 주요 대학들의 입시안에 대해 다들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일반고 수업은 “학원 들러리”
“예를 들어 봅시다. 물리학 이론을 다룬 고난도의 영어 지문 두 개를 내준 뒤, 지문에 제시된 이론을 적용해 수식이 포함된 문제를 풀게 하고, 제시된 지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라는 유형의 통합교과형 논술 문제를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가르친다면 누가 담당할 수 있을까요? 국어 선생님입니까, 영어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과학 선생님입니까? 과연 학교가 논술·구술 강의로 먹고사는 강사들이 팀을 짜서 대학별·영역별로 맞춤형 수업을 하는 학원과 경쟁할 수 있을까요?”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들이 2008 학년도 입시에서 도입키로 한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벌써부터 일선 고교 현장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특히 통합교과형 논술은 내신 강화를 통해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목표로 한 교육혁신위의 새 대학입시 개혁안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고교 교사들은 우선 “말이 통합교과형 논술이지, 결국 영어·수학 중심의 변형된 본고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홍창범 교사(서울 경복고)는 “학교의 정규 수업으로는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비할 수 없다”며 “논술·구술 전문학원과 비교되면서, 학교가 또다시 교육에서 들러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윤 교사(서울 잠신고)도 “앞으로 ‘논술 대비반’ 형태의 보충수업이나 특강 등이 중요해지고, 정규 수업은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방 고교의 위기의식은 훨씬 심각했다. 임광찬 교사(목포 영흥고)는 “지금도 대부분의 지방 고교들은 논술과 심층면접 준비에 손을 놓다시피하고 있고, 막강한 정보망과 자본을 앞세운 사교육 기관은 각종 인성·적성문제, 논술·구술문제를 들이대며 학교와 학부모들을 ‘협박’하고 있다”며 “통합교과형 논술이 강화되면 학교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속수무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고교 교사는 “이대로 가면 토요일마다 서울에서 논술·구술 전문 강사들을 모셔와 학생들에게 과외를 받게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며 “교사들이 논술 과외 중개 구실을 해야 할 판”이라고 푸념했다. 학교에서 그나마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토론·탐구 수업의 싹이 잘려 나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임덕준 교사(서울 진명여고)는 “독서와 토론, 탐구활동 등 교육 본질에 맞는 활동을 부추기고, 창의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는 논술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영문 혼합 논술, 수리논술 등과 같은 변형된 본고사가 시행되면 문제 유형을 반복적으로 익히는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것”이리고 지적했다. 반면, 특목고는 통합교과형 논술 강화 방침을 반겼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교사는 “평소에 학교에서 학원 수준의 심화 논술·구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외고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내신 비중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대신 논술·구술의 비중을 높인 주요 대학들의 입시안에 대해 다들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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