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등 한국 작품들을 번역해 온 아오야기 유코가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수서동 수서중학교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 지진피해를 당한 센다이지역 일본 학생들에게 한국 학생들이 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오야기 유코, 수서중 일일교사로
센다이에 집…서울왔다 발묶여
한국 학생들과 진솔한 대화
센다이에 집…서울왔다 발묶여
한국 학생들과 진솔한 대화
1일 오전 11시께 서울 강남구 수서중학교 안 모둠학습 공간에 일일교사 아오야기 유코(61)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학생들 앞에 섰다. 60여명의 학생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칠판 위에는 시인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가 적혀 있었다. “김기림 시인은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 센다이 도호쿠제국대학에서 유학했지만, 시에는 일본 대도시나 일본인들이 단 한 차례도 드러나지 않아요. 그가 일제에 저항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일본인이자 한국문학 전문가인 아오야기의 이날 강의는 시인 김기림에 대한 것이었지만, 수업은 자연스럽게 현재 한국 사회의 뜨거운 관심사인 ‘교과서 문제’와 ‘대지진 피해’라는 두 주제로 흘러갔다. 그리고 ‘일일교사’와 학생들은 교과서 문제에 대한 ‘분노’와, 대지진 피해에 대한 ‘공감’을 함께 나눴다.
“교과서 문제는 너무 분하죠. 일본 정부가 왜 그렇게 한심한 일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오야기의 진솔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처음엔 주저하던 학생들이 서로 손을 들어 “독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냐”며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전인 1905년에 협약이 있었어요. 일본이 한국을 폭력으로 지배하려던 상황에서 조약을 맺었다면 그 조약은 무효죠. 일본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태도가 바뀔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날 그의 수업을 듣고 난 심형보(13)군은 “일본에도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아오야기는 한일 출판교류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10일 한국에 왔다가 11일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으로 서울에 발이 묶였고, 이날은 한 지인의 소개로 수서중에 일일교사로 나선 것이다. 그는 조선대와 한일장신대 교수로 92년부터 12년 동안 한국에서 일본문학을 가르치기도 했고,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 <바리데기>를 번역해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다. 남편 아오야기 준이치(62)도 민주화기념사업회와 5·18기념재단 관련 일을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서 두 권을 일본어로 번역한 대표적인 지한파 사회운동가이다.
아오야기는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센다이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탓에, 이날 수업에서는 지진 피해를 당한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아오야기 부부의 집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내부는 엉망이 됐고, 한국에 출발하기 전 공항에 세워둔 자동차는 해일에 쓸려갔다.
수업 말미에 학생들은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 학생들을 위해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박정현(13)양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 잘되리라 믿어. 나중엔 고난을 이겨낸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거야”라고 자신이 쓴 편지를 읽었고, 아오야기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는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데도 한국 학생들은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을 걱정해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더 많이 교류해 서로의 역사를 바로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의 편지를 꼬옥 품에 안았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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