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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학문보다 돈벌이 치중 우려” 방학 잊은 ‘법안폐기 운동’

등록 2011-01-18 20:00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며 30일째 농성하고 있는 서울대 학생들이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 천막농성장에서 최영찬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오른쪽 둘째)의 강의를 듣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며 30일째 농성하고 있는 서울대 학생들이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 천막농성장에서 최영찬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오른쪽 둘째)의 강의를 듣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현장] ‘서울대 법인화 반대’ 천막농성 한달
학생·교수·교직원 ‘교대 농성’

얼어버린 생수통을 난로에 쬐어봤지만 좀처럼 녹지 않았다. 플라스틱 병에 든 콜라도 꽁꽁 언 채 바닥에 굴러다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본관 앞에 들어선 파란색 천막 안에 설치된 전기장판과 난로 등은 천막을 파고드는 찬바람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이 학교 교수와 교직원·학생들은 이 천막에서 한달째 ‘서울대 법인화 반대’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8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서울대 법인화 법안을 충분한 논의 없이 강행처리한 뒤, 서울대 법인화 반대에 뜻을 같이하는 학내 구성원들이 모여 12월20일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월~목요일은 학생들이, 금요일은 교수들이, 주말엔 교직원들이 교대로 당번을 서며 지금껏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천막을 지켰다. 매일 낮 12시에 20~30명이 모여 학내 구성원들을 상대로 홍보활동도 벌였다. 학내 구성원 3000명의 서명을 받아, 3월3일에는 서울대 법인화 법안 폐지를 위한 대규모 집회도 열 계획이다.

18일 오전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최정배(23·사회학4)씨는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등록금이 인상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대학이 기업화되는 게 훨씬 우려된다”며 “춥고 힘들지만 지금 법인화 법안을 되돌리지 않으면 대학의 공공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막농성과 홍보 활동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는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서울대법인화저지 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는 “교수와 학생뿐 아니라 교직원들까지 함께 나선 것은 드문 경우”라며 “서울대 법인화는 서울대 구성원들뿐 아니라 다른 국립대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법인화된 서울대가 연구·교육보다 ‘돈벌이’에 골몰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최 교수는 “대학이 기업화되면 비인기 기초학문 연구가 소홀해지고, 재정이 어려워지면 자연히 등록금도 인상된다”며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이 보여줬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마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명환 교수(영어영문학)도 “성균관대의 경우 삼성의 지원을 받으면서 문과대 교수가 70명에서 53명으로 줄었다”며 “가랑비에 옷 젖듯이 기초학문 분야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인화법 내부토론도 없이 날치기

장관추천 이사들로 자율화 되겠나”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법인화 자체도 문제이지만,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돼 지난해 12월27일 공포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서울대 법인화법)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법률의 일부 조항에 대해선 서울대 법인화에 찬성했던 교수들조차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대 법인화법은 우선 절차적으로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김명환 교수는 “대학본부는 공청회나 간담회를 거쳤다고 하지만 구성원들의 동의 투표는 물론이고 내부 토론조차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학생들과 함께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한정숙 교수(서양사학)도 “서울대 법인화에 대해 찬반 의견이 나뉘는 것은 이해하지만, 관련 법이 아무런 논의도 없이 국회 날치기라는 비지성적인 방법으로 생겨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법인화법에는 대학의 자율성 침해가 염려되는 부분도 포함돼 있다. 최대 15명으로 구성하는 서울대 이사회의 경우 절반 이상이 외부인사여야 하는데, 여기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하는 차관 1명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지정하는 차관 1명이 들어가도록 돼 있다. 박배균 교수(지리교육)는 “그런 구성이라면 대학의 정부 눈치보기가 더 심해져 법인화에 찬성하는 이들이 주장해온 ‘자율화’도 사실상 이룰 수 없다”고 밝혔다.

등록금 인상 가능성도 높아졌다. 서울대 법인화법에 딸려 있는 비용추계서를 보면, ‘세입 전망’ 부분에 산학협력단과 발전기금을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각각 868억원, 400억원씩 크게 늘리도록 계획돼 있다. 최갑수 교수는 “서울대는 이미 재정의 70% 이상을 산학협력과 발전기금으로 채우고 있는데, 앞으로 무엇을 통해 이를 더 늘린다는 것인지 불투명하다”며 “세입 전망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재정을 채울 수 있는 방안은 등록금 인상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설사 외부에서 자금이 충분히 들어오더라도 이는 다른 국립대로 가야 할 몫을 서울대가 빼앗는 격이어서 다른 국립대가 고사해 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서울대 법인화에 찬성했던 서울대 교수협의회도 이번에 통과된 법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교수협의회 회장인 호문혁 교수(법대)는 “이번에 공포된 서울대 법인화법은 정부에서 매년 예산을 타 쓰도록 돼 있어 사실상 자율화 확보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호 교수는 또 “특히 두 명의 감사 가운데 한 명이 교과부 장관이 추천하는 ‘상근’ 감사여야 한다는 조항은, 교과부 장관이 서울대를 장악하겠다는 뜻이 담긴 독소조항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최갑수 교수는 “서울대가 서울대 법인화법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해 놓고도 국회의 날치기 처리에 유감을 표명하지 않고 환영 의사를 밝힌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며 “이번 천막농성을 통해 서울대 법인화법이 폐기되고 한국 고등교육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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