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본관 1층 농성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영상 갈무리.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홍대 미화노조 농성 현장
담요와 전기난로가 전부…“그래도 응원 덕에 버텨”
학교 쪽 “대학은 교육사업하는 곳” 사회책임 ‘모르쇠’
담요와 전기난로가 전부…“그래도 응원 덕에 버텨”
학교 쪽 “대학은 교육사업하는 곳” 사회책임 ‘모르쇠’
지난 10일, 홍익대학교는 강추위에 얼어붙었다. 이날 서울 아침 기온은 영하 11도로 전날보다 뚝 떨어졌다. 교정의 쓰레기통은 배를 가득 채우고 테이크아웃 커피잔, 담배꽁초 따위를 뱉어놨다. 50대 아주머니들이 얼어붙은 쓰레기를 치우느라 분주했지만 손에 익지 않은 듯 우왕좌왕했다. 이들은 “오늘 처음 왔다”며 자세한 이야기는 피했다.
원래 홍익대 환경을 관리하던 미화·시설 용역 노동자들은 지난 3일부터 일손을 놓고 농성중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초 용역업체와 재계약을 앞두고 임금 현실화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학교는 노동자들이 속한 용역업체와 계약 해지를 선언했다. 쫓겨날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은 학교가 문제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노동자들이 8일째 점거에 들어간 홍익대 본관(문헌관)은 찬바람이 막혀 비교적 아늑했다. 140여 명의 조합원과 조합이 속한 민주노총 서울경인지역 공공서비스지부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건물 1층 로비와 사무실에서 밤새 점거 농성중이다. 이들의 온기가 찬 바닥을 데우고 있었다.
‘개념배우’ 김여진 등 지지 방문…벽엔 응원 글로 ‘빼곡’
“우리와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의 응원 덕분에 버티고 있어요.”
기자를 맞으며 이숙희 공공노조 홍익대지부 분회장이 말했다. 로비에는 방문자들이 남긴 응원 글이 벽마다 빼곡했다. 한쪽 편에는 단체와 시민들이 보내온 쌀, 라면, 핫팩 등이 쌓여 있었다. 지난 4일 트위터에 지원을 요청하는 홍대 노조의 트윗이 올라가자 6일 만에 1300여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개념 배우’ 김여진의 지지 발언은 큰 화제를 낳았다. 홍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은 사회적 연대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날도 낮부터 밤까지 지지 방문이 이어졌다. 홍대 졸업생 이정순(34·교사)씨는 큰 봉지 가득 라면을 담아왔다. 이씨는 “1997년 학교 주차관리 알바를 하면서 어머님, 아버님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 되었다”며 “소식을 듣고 속상해 찾았다”고 말했다. 홍대생 양희진(경영학3)씨는 초코파이 세 상자를 들고 찾았다. 그는 “대학생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는 정동영·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노조원들은 이렇게 찾는 ‘손님’들을 따뜻한 끼니로 맞았다. 노조원과 방문자들을 먹일 200인분가량의 밥을 매끼 챙기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무실 안쪽에 마련한 임시 부엌에서 ‘당번’을 정해 쉼 없이 밥을 지어냈다. 이날 저녁 메뉴는 카레였다. 음식을 준비하고 ‘학교 이사장 흉’을 보는 아주머니들의 풍경이 시골마을 아낙들을 떠올리게 했다.
많은 성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50~60대인 이들에게 콘크리트 바닥에서 보내는 겨울밤은 가혹한 형벌이다. 은색 단열재와 담요, 소형 전기난로 정도에 기대 노숙과 다름없는 환경에서 밤을 지내야 한다. 함께 농성중인 홍대 미화노동자 김아무개씨는 “가장 힘든 것이 잠”이라며 “밤이 되면 농성장이 엄청나게 춥다”고 말했다. 이숙희 분회장은 “우리 아주머니 절반은 혈압약을 먹을 정도로 건강이 원래 좋지 않다”며 “찬 바닥에서 주무시는 게 가장 불안하다”고 말했다.
총학생회 여전히 ‘외부세력’과 홍대 청소 노동자 분리
그러나 학교 쪽이 “용역업체와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농성은 장기화할 우려마저 낳고 있다. 전성표 홍익대 사무처장은 “이분들은 업체와 고용관계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학교가 나서서 대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순수하게 과거에 일해오던 미화원분들이 애로사항을 말하면 신규업체에 권유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 처장은 ‘대학이 사회적 책임 면에서 문제해결에 나설 의지는 없느냐’는 질문에 “대학은 수익사업이 아닌 교육사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함부로 재원을 쓸 수 없다”며 “외주 업체에 지출하는 인건비를 조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또, ‘재단적립금 등 재원은 여유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교육·시설 투자 등 정해진 용도가 있는 돈”이라고 답했다.
한편, 이날 늦은 오후에는 홍익대 총학생회에서 마련한 토론회도 있었다. 홍대 학생들 앞에서 노조, 학교, 총학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홍대생들이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학교 쪽에서는 참석하지 않았다. 노조에서는 5명의 조합원이 참석했으나 총학에서 내놓은 토론 질문지를 보고 토론회장에서 나갔다. 홍대 미화·시설 노동자들과 ‘외부 세력’을 분리하는 총학의 기존 논리가 여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총학은 홍익대 청소·시설 노동자 노조가 결성되면서 결합한 민주노총 관계자 등을 ‘외부 세력’으로 보고 이들과 분리해 ‘순수 노동자’와 홍대생들이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날 저녁 홍대 정문에서는 홍대 미화·시설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부 세력’ 등 300여 명이 함께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에 참석한 장주성(서울방송고3) 군은 “홍대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에서 같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앞으로 내가 갈 대학도 이런 모습일까 걱정된다”며 “청소년의 적은 힘이지만 보태려 나왔다”고 말했다. 홍대 졸업생 이동훈(국문98)씨는 “후배들 사이에 이념논쟁처럼 번져 안타깝다. 어머님들 처우개선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밤 공기는 뼛속까지 얼릴 정도로 추웠지만 함께 노래하고 웃는 ‘어머니’, ‘아버지’들의 얼굴은 촛불 불빛에 반짝였다. 그렇게 홍대 청소 미화원들의 8일째 농성의 밤이 저물고 있었다.
글 권오성 기자 영상 김도성 피디 sage5th@hani.co.kr
농성장 한켠에는 쌀과 라면, 반찬 거리 등 시민들의 후원 물품이 쌓여 있다. 이들의 투쟁 소식은 트위터 등을 타고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영상 갈무리.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농성장 곳곳에는 시민들의 응원 메시지가 붙어 있다. 시민들은 스스로를 ‘외부 세력’이라 칭하며 총학생회를 비꼬고 있다. 영상 갈무리.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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