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의 민방위 특별대피훈련이 열린 15일,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의 시민들이 지하철역 쪽으로 대피하고 있다. 영상 갈무리.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15일 오후 2시 민방위 특별대피훈련이 실시됐다. 전국민이 실제로 안전시설로 대피하는 훈련이 실시되기는 1975년 민방위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이다. <한겨레>는 이날 오후 서울역 앞에 나가 거리표정과 시민들 반응을 알아봤다.
영하의 날씨 속에 칼바람이 부는 서울역 앞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민방위 대피훈련이 얼마남지 않은 1시50분쯤 시민들은 추워서인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종종 걸음을 했다.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훈련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달리던 차량들이 일제히 길가에 멈춰섰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평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차 안에 있던 운전자와 승객들은 내리지 않고 그대로 차 안에 머물렀다. 일부 시민들은 인근 지하철역 안으로 대피하지 않고 버스 정류소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역 안으로 들어가자 시민들이 어두운 지하철역 안에서 물끄러미 훈련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 서울역 대합실 안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여행객들이 지하 대피 시설로 대피하지 않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방방제청은 이날 가상 적기인 KF16 등 12대의 전투기를 서울,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 상공에 띄워 공습 상황을 연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전투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서울역 근처에서 만난 시민들은 이날 훈련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매년 하는 것”이라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소방방재청이 14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실제 상황에 대처하기위해 전국 동시 민방공 특별대피훈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시민들은 훈련을 “불편”해 했다. 김성만(49 버시기사)씨는 “어릴때부터 훈련을 해서 몸에 베어있다”면서 “새삼스럽지도 않다”고 말했다. 민방위훈련을 하는 것 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충북 영동에서 온 김상현(영동고 3)군은 “병원에 다니러 왔는데, 민방위 훈련하는 줄 몰랐다”면서 “대피요령도 몰라 싸이렌 울리면 그냥 가만히 있겠다”고 말했다. 오성철(32 회사원)씨는 “훈련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어 잘 모르겠다”면서 “사이렌이 울려도 대피하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민족이고 하니 좋게 통일하는 것이 좋다”면서 “계속 이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안좋을 것”이라며 앞으로 상황을 걱정했다.
시민들은 민방위 훈련을 불편해 했다. 지방에서 업무차 올라온 강원철(46 회사원)씨는 “교통이 통제되니 많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사회적 위기감이 높아지는데 대비는 해야한다”며 걱정했다. 시민들은 올 들어 가장 추운날 훈련을 하는 데 불만스러워했다. 서나래(19 대학생)씨는 “북한이 연평도 포격을 해서 시기가 이러니 (훈련을) 하니까 참여 한다”면서 “오늘 날씨도 무척 추운데 지하철역 안에 이렇게 서 있는데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못마땅해 했다.
한국의 이같은 훈련 모습이 ‘이방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영국에서 유학을 온 토마스씨(26 학생)는 “한국은 아직까지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어 그런 것”이라면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북한이 한국 연평도를 공격했으니 준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불편하다”고 밝혔다.
민방위훈련이 끝난 후 누리꾼들도 트위터와 페이스북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이트에 ‘민방위 훈련평’을 올렸다. 한 누리꾼은 “민방위 훈련 하는둥 마는둥”이라며 형식적인 훈련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다”고 개의치 않았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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