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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땅 떠날수가 없는데…왜 이런 공포에 시달리는지”

등록 2010-11-26 21:01수정 2010-11-26 22:53

교동도·파주 등 서해 접경지역 긴장 고조
군·경 외지인 출입 엄격통제
주민들 “평화롭게 살았으면”
오는 28일 서해상에서 한-미 군사훈련이 예정된 탓에, 연평도 이외의 서해 접경지역에서도 북한의 추가 군사 도발에 대한 우려와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26일 인천 강화군 창후리 해상여객터미널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70여대의 차량이 빼곡하게 들어서 ‘교동도’로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을 때이지만, 교동도를 찾는 외지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둘째 넷째주 토요일은 ‘노는 토요일’이라 가족 단위로 교동도에 많이 들어가는데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발길이 뚝 끊어졌어. 있는 사람도 나가려는 판인데 뭐….” 5년째 터미널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오아무개(47)씨는 교동도를 찾는 사람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했다. 교동도는 황해도와 8㎞ 떨어진 지역으로, 해군 100여명과 주민 2700여명이 살고 있다. 강화도보다는 외려 북한과 가깝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교동도에는 한결 긴장감이 높아졌다. 민통선 지역인 교동도에 들어가려면 승선신고서를 적어내고 군인의 검문을 받아야 하는데, 북한 포격 이후 외지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대합실에는 ‘교동도에 연고가 없는 사람은 승선신고서의 연고지란에 ‘농협·면사무소 등을 기재하면 된다’고 적혀 있지만, 선착장 앞에서 검문하던 군인은 “얼마전까진 그게 가능했지만, 연평도 사건 이후 반드시 5일 전에 해병대 보안과에 신고를 하고 허가증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며 출입을 막았다. 케이(K)2 소총을 어깨에 멘 군인은 “지금은 비상이 걸려 안에 방탄조끼도 입었다”고 했다.

불안하긴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교동도에서 태어나 한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는 이충상(88)씨는 “6·25전쟁도 겪어 봤지만 그 이후로 섬이 이렇게 불안하긴 처음”이라며 “그나마 교동도는 연평도만큼 군사시설이 많지는 않으니까 북한이 여길 공격하진 않을 거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28일 서해상에서 있을 한·미연합훈련이 북한의 도발을 부를까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엔 “운명에 맡겨야지. 별 수가 있겠냐”고 대꾸했다.

섬을 떠날 수 없는 주민들은 빨리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혁유(76)씨는 “내가 이 땅을 떠날 수가 없는데 가장 좋은 건 평화롭게 사는 거 아니겠냐”며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우릴 철저하게 막아주는 방법도 있겠지만, 연평도처럼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나게 해주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같은 날, 곳곳에 군사분계선을 알리는 철책을 맞댄 파주시 일대 분위기도 계절보다 더 을씨년스러웠다. ‘북한의 연평도 해안포 공격에 따라 제3땅굴·도라역·도라전망대 등 ‘안보관광’은 무기한 제한됐습니다.’ 이미 군은 이 지역의 주요 ‘안보관광’ 지역을 모두 차단하고, 이를 파주시 누리집 등을 통해 알린 상황이었다. 이 일대를 관할하는 육군 1사단 관계자는 “국가 안보와 시민 안전을 위해 군사 위협 가능성이 있는 모든 지점에 민간인 접근을 차단했다”며 “위기 상황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무기한 통제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도라전망대에는 1㎞가량 아래쪽 입구부터 ‘출입금지’라고 쓰인 팻말과 함께 바리게이드가 단단히 둘러쳐져 있었다. 이 지역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남아무개씨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오히려 위험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원주민들은 연평도에 갑자기 포탄이 떨어진 모습을 보면서 드러낼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며 “갑자기 뭐가 떨어질지 모르는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정아무개씨도 “바로 눈앞에 북한이 보이는데, 갑자기 저기서 포탄이 날아온다는 상상을 하면 자려고 누워도 불안감이 든다”며 “남북이 대결하는 모습이 사라져서 우리같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임진각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선 군·경이 바리게이드를 치고 삼엄한 감시를 폈다. 임진각 들머리에는 군과 경찰의 통제에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이곳에서 열리던 ‘파주 장단콩 축제’도 ‘연평도 포격 사태에 따라 부득이 문화행사를 취소한다’는 펼침막이 걸린 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가까스로 진행됐다.


천안함 사건으로 이미 한차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백령도 주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주민 배종진씨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연평도 사건이 터지자마자 포구에 조업 금지를 알리는 ‘빨간 깃발’이 걸렸고, 주민들에겐 방공호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며 “천안함 때보다 관광객도 더 발을 끊으니까 고립된 곳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실제보다 접경 지역 인근의 위기감이 과장돼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파주출판도시에서 근무하는 박아무개씨는 “같은 회사에 파주에 거주하면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상당수는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는 것만큼 큰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며 “사실과 달리 불필요한 위기감을 조성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든다”고 했다.

강화도, 임진각/황춘화 홍석재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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