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기에 앞서 한 총리실 관계자가 머리를 다듬어주자 멋쩍게 웃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 연루 의혹을 받아온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오른쪽)이 함께 웃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너무 늦은 압수수색 탓 증거인멸 못 막아
특별수사 경험없는 팀 구성 문제 지적도
새 물증 확보에 주력…큰 기대는 어려워
특별수사 경험없는 팀 구성 문제 지적도
새 물증 확보에 주력…큰 기대는 어려워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긴 하지만 ‘검찰이 기소하면 죄가 있는 것은 맞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한명숙 5만달러 무죄’ 사건으로 그런 믿음이 깨졌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검찰이 일단 수사에 나서면 어느 정도의 사실 관계는 규명한다’는 믿음마저 깨져버린 것 같다.”
11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수사 중간발표를 접한 한 특수통 검사의 말이다. 수사팀 구성 뒤 38일 만에 내놓은 결과물이란 게, 언론보도로 기정사실화된 김종익(56·전 엔에스한마음 대표)씨에 대한 사찰이 있었음을 재확인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핵심이랄 수 있는 △지원관실의 김씨 사찰 경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윗선’ 지시·보고 의혹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 너무 늦은 압수수색…팀 구성도 문제 검찰의 초라한 성적표는 너무 늦은 압수수색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간인 사찰 의혹은 지난 6월21일 정치권에서 처음 제기됐으며, 총리실은 자체 조사를 거쳐 7월5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의뢰 당일 특별수사팀이 꾸려졌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은 4일 뒤인 7월9일에야 이뤄졌다. 사안의 성격상 관련자들이 입을 맞춰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커 물증 확보가 긴요했는데도 이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수사의뢰 뒤 최대한 빨리 피해자·참고인 조사를 거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며 “수사의뢰와 동시에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적법절차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특수통 검사는 “영장 발부에 필요한 범죄의 소명은 총리실이 수사의뢰 때 건넨 조사자료로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조심스럽긴 하지만 초기 판단 미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압수수색이 신속히 이뤄졌다 해도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안이한 판단으로 증거인멸의 기회를 준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형사부에 사건을 배당한 것부터가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오정돈 팀장은 평소 경찰에서 넘어온 송치사건을 다뤄 이번과 같은 특별수사와는 무관한 이력을 지녔고, 신경식 1차장검사도 특별수사 경험이 거의 없는 기획통이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니 청와대와 조율해 형사부에 맡긴 것 아니겠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사전에 조율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형사부에 사건을 준 것은 김준규 검찰총장의 뜻”이라고 말했다.
■ 당사자 심경변화, 확실한 물증 확보 기대 물론 검찰 수사에 성과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총리실의 주장과 달리 김종익씨 사찰이 7월에 시작됐고, 남경필 의원 부인 주변을 알아본 또다른 불법 사찰 사례도 밝혀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계획적으로 증거인멸에 나선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향후 검찰 수사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간인 사찰의 지시·보고 라인이나 사찰배경을 설명해줄 물증이 나오거나, 관련자들이 진술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시간을 두고 의외의 제보자나 물증 확보에 주력할 전망이다.
이순혁 노현웅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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