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여대생에게 ‘성희롱성 여성 비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2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본인의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경찰 취재에는 ‘여’기자가 유리하다?
“황 기자, 오늘 강력2팀에 성폭행 사건있나보더라. 아직 기자들 모르는 것 같던데 한번 확인해봐”
<한겨레>에 갓 입사해 경찰서에서 먹고자며 붙박이생활을 하던 수습기자시절. 사회부 사건팀 선배들과 수습 동기들이 함께 모여 술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을 때였다. 이미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 평소 친분이 있었던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해당 경찰서가 쉬쉬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사건을 몰래 ‘찔러’주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
지나가던 개미가 밟혀 죽었다는 ‘찌질한’ 사건도 다른 기자들보다 먼저 알아내면 ‘영웅’이 되던 수습시절, 경찰의 ‘자발적’ 제보 전화는 그야말로 ‘웬떡’이었다. “선배, 오늘 ○○경찰서에 성폭행 사건이 접수됐답니다. 경찰이 전화가 왔는데, 아직 다른 기자들은 모르고 있다는데요?” 선배의 칭찬을 ‘잔뜩!!’ 기대하고 사건을 보고했다. “이 시간에 형님이 제보전화도 해주냐? 역시 이래서 경찰서를 돌 땐 여기자가 유리하다니까!” 이날 술자리에서 수습기자가 경찰서를 돌 때, 경찰이 여기자를 대하는 태도와 남기자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그래서 결국 취재를 하는데 상대적으로 남기자가 얼마나 불리한지에 대해 한 동안 이야기를 한동안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예쁜 여기자의 유리함에 대한 이야기도…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생각해야하는데 그럴 수 있겠냐” “대통령이 너만 보더라. 사모님(대통령부인 김윤옥씨)만 없었으면 네 번호도 따갔을 거다” 지난 한주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16일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술을 마시며 한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성희롱 논란을 빚었다. 언론보도 뒤 사건을 ‘물 먹은’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날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대학동기부터 친구의 친구, 선·후배, 선·후배의 친구·선배·후배 그리고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를 동원한 취재가 시작됐다.
연락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자들의 전화에 당황해 전화를 받지 않거나, 휴대전화를 꺼버리기 일쑤였고, 통화가 된다한들 “제가 당사자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직 사회에 첫 발을 내딛지도 않은 학생들이 현직 여당 국회의원의 성희롱 발언에 연루됐으니 그 당혹스러움은 적잖았을 것이다. 특히 그날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어서, 앞으로 있을 언론사 공채시험에서 혹시 이번일로 불이익을 받게 되진 않을까 현실적 두려움도 컸을테다.
강용석 의원은 아나운서계 음지를 폭로한 용자인가?
사건 취재 내내 나는 몇 개의 불편과 시선과 마주했다. 특히 그동안 여성을 향해 숨겨왔던 남성들의 편협한 성의식이 그러했다. 학생들의 연락처 취재를 부탁했던 한 친구는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 피해여학생이 대통령이 반할만큼 예쁘냐는 질문을 해댔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강 의원이 실언을 하긴 했지만, 아나운서들이 외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 사실인 만큼 강 의원의 발언이 큰 틀에서 틀린 말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강 의원의 행동을 비판하는데 매몰될 게 아니라 외모로-강 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다 줘야’하는 무언가를 포함한- 승부보려는 아나운서계의 음지(?)를 바로잡아야한다는 어이없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지난 20일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발언 보도를 접한 뒤 문득 수습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던 건 그 때문이다. “여기자여서 형님-기자들은 경찰을 형님이라고 부른다-취재에 유리하다”는 말과 “아나운서로 성공하기 위해선 다줘야 한다”는 말은 다른가. 두 인식 모두 여성의 성공·성취는 늘 남성의 도움을 기반으로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여성의 상당수가 외모를 이용해 성공하려 한다는 철처히 남성중심적 해석이다. 다만 그걸 얼마나 노골화했는지가 다를 뿐이다. 강 의원 한국 주류 남성 정치인의 저열한 성의식 고백 아나운서들이 ‘몸으로 승부본다’는 강 의원의 인식, 남성의 시각은 ‘사실’로 봐야하는가. 섹시한 박근혜라는 박 전대표에 대한 평가부터, 전현희 의원과 밥을 먹기 위해 60대 정치인들이 줄을 선다는 발언, 나경원 의원은 키가 작아 볼품이 없다는 총평까지… 사실 그동안 강 의원은 직업을 불문하고 모든 여성은 ‘외모’로 일괄평가해왔다. 그 스스로도 고백하지 않았나.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고. 강 의원의 ‘용기있는(?)’ 폭로는 아나운서계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줄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다만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뻐야한다는 한국 주류 남성 정치인들의 저열한 성의식과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자기 고백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같은 잣대는 모든 여성에게 적용된다. 여성아나운서, 여기자의 눈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자. 최소한 내가 아는 여기자들 가운데 ‘여’기자로써 평가받고 싶어하는 기자들은 없다. 오히려 취재원들이 끊임없이 이들에게 씌우는 ‘여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고자 늘 몸부림친다. 경찰이 자신을 “아가씨”라고 부르자 책상을 뒤집어 엎은 여기자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수습시절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하고, 1시간 쪽잠잔 뒤 눈곱떼고 나온 여기자가 예뻐야 얼마나 예쁘겠나. 어쩌면 좀더 뛰어났을 지도 모를 여기자의 ‘사건 물어오기’는 여기자여서가 아니라, ‘여자는 어떻다더라’는 기존의 선입견을 뛰어넘기 위해 발버둥쳤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수습기자 첫달. 나는 경찰과 친해지기 위해 매일밤 종이컵 가득담긴 소주를 원샷했고, 경찰이 부르면 일주일에 하루 쉬는 토요일에도 달려나갔으며, 턱밑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오도록 경찰서를 돌았다. 그달 택시비로 지출한 비용만 180만원이었다. ‘술자리에서 개념줄 놓고 한 말인데 뭘 그렇게 정색하나’ 누군가 또 묻는다. 하지만 술자리였기 때문에 더 정색하련다. 그야말로 국회의원이라는 계급 떼고 체면 버리고 가식없이 평소 자신의 생각을 말한 자리였을테니까. 누구의 변명처럼 폭탄주를 과하게 먹어 여기자 가슴 만진 최연희 의원처럼 강 의원이 앞뒤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 않는가.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사건 취재 내내 나는 몇 개의 불편과 시선과 마주했다. 특히 그동안 여성을 향해 숨겨왔던 남성들의 편협한 성의식이 그러했다. 학생들의 연락처 취재를 부탁했던 한 친구는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 피해여학생이 대통령이 반할만큼 예쁘냐는 질문을 해댔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강 의원이 실언을 하긴 했지만, 아나운서들이 외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 사실인 만큼 강 의원의 발언이 큰 틀에서 틀린 말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강 의원의 행동을 비판하는데 매몰될 게 아니라 외모로-강 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다 줘야’하는 무언가를 포함한- 승부보려는 아나운서계의 음지(?)를 바로잡아야한다는 어이없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지난 20일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발언 보도를 접한 뒤 문득 수습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던 건 그 때문이다. “여기자여서 형님-기자들은 경찰을 형님이라고 부른다-취재에 유리하다”는 말과 “아나운서로 성공하기 위해선 다줘야 한다”는 말은 다른가. 두 인식 모두 여성의 성공·성취는 늘 남성의 도움을 기반으로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여성의 상당수가 외모를 이용해 성공하려 한다는 철처히 남성중심적 해석이다. 다만 그걸 얼마나 노골화했는지가 다를 뿐이다. 강 의원 한국 주류 남성 정치인의 저열한 성의식 고백 아나운서들이 ‘몸으로 승부본다’는 강 의원의 인식, 남성의 시각은 ‘사실’로 봐야하는가. 섹시한 박근혜라는 박 전대표에 대한 평가부터, 전현희 의원과 밥을 먹기 위해 60대 정치인들이 줄을 선다는 발언, 나경원 의원은 키가 작아 볼품이 없다는 총평까지… 사실 그동안 강 의원은 직업을 불문하고 모든 여성은 ‘외모’로 일괄평가해왔다. 그 스스로도 고백하지 않았나.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고. 강 의원의 ‘용기있는(?)’ 폭로는 아나운서계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줄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다만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뻐야한다는 한국 주류 남성 정치인들의 저열한 성의식과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자기 고백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같은 잣대는 모든 여성에게 적용된다. 여성아나운서, 여기자의 눈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자. 최소한 내가 아는 여기자들 가운데 ‘여’기자로써 평가받고 싶어하는 기자들은 없다. 오히려 취재원들이 끊임없이 이들에게 씌우는 ‘여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고자 늘 몸부림친다. 경찰이 자신을 “아가씨”라고 부르자 책상을 뒤집어 엎은 여기자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수습시절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하고, 1시간 쪽잠잔 뒤 눈곱떼고 나온 여기자가 예뻐야 얼마나 예쁘겠나. 어쩌면 좀더 뛰어났을 지도 모를 여기자의 ‘사건 물어오기’는 여기자여서가 아니라, ‘여자는 어떻다더라’는 기존의 선입견을 뛰어넘기 위해 발버둥쳤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수습기자 첫달. 나는 경찰과 친해지기 위해 매일밤 종이컵 가득담긴 소주를 원샷했고, 경찰이 부르면 일주일에 하루 쉬는 토요일에도 달려나갔으며, 턱밑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오도록 경찰서를 돌았다. 그달 택시비로 지출한 비용만 180만원이었다. ‘술자리에서 개념줄 놓고 한 말인데 뭘 그렇게 정색하나’ 누군가 또 묻는다. 하지만 술자리였기 때문에 더 정색하련다. 그야말로 국회의원이라는 계급 떼고 체면 버리고 가식없이 평소 자신의 생각을 말한 자리였을테니까. 누구의 변명처럼 폭탄주를 과하게 먹어 여기자 가슴 만진 최연희 의원처럼 강 의원이 앞뒤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 않는가.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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