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 100만명 거리응원
‘캡틴 박’(박지성)이 두 명의 수비수를 달고 질주하자, 고막이 터질 듯한 함성이 달아올랐다. 그의 발을 떠난 ‘자블라니’가 골키퍼를 스쳐 마침내 그물을 흔들었을 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천둥 소리를 내며 한 몸으로 출렁였다. 서울광장에 온종일 내리던 굵은 빗방울도 그 순간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흥에 겨운 시민들은 이날 경기 전 응원 공연을 펼친 가수 크라잉넛의 노래 ‘말 달리자’를 합창했고, 이내 터질듯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남자친구와 함께 이날 서울광장을 찾은 김은지(20)씨는 “너무나 재미있는 경기였고, 응원도 최고였다”며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일 밤부터 13일 새벽까지 1박2일 동안 온나라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경기가 끝나고도 좀체 자리를 뜨지 못했다. 거리에서 쉰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면, 지나던 차량들이 경적으로 ‘빠~빰빰빰빰’ 소리를 내며 호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풍경이 재연되는 듯했다.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시청한 시민들도 인터넷에서 경기 주요 장면을 다시 찾아보거나, 이튿날 새벽에 열린 잉글랜드-미국전 등을 시청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국제축구연맹(피파)의 공식 누리집(www.fifa.com)에도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축하하는 축구팬들의 글이 밤새 이어졌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은 12일 오전부터 대규모 거리 응원이 예고된 서울광장과 강남 코엑스 앞(영동대로) 등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굵은 빗방울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아리 친구들과 서울광장을 찾은 대학생 김근태(26)씨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군 복무중이어서 거리응원을 못했는데, 이번에 소원을 풀게 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 4시께부터 서울광장 등에는 대형화면이 잘 보이는 ‘명당’을 잡으려는 인파가 몰려들며 북적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고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머리띠에 달린 두 개의 뿔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8시30분, 경기 시작과 동시에 폭죽이 터졌고 불과 7분 만에 이정수 선수의 선제골이 터지자 모두 일어나 펄쩍펄쩍 뛰었다.
후반 7분 승부에 쐐기를 박는 박지성 선수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처음 보는 옆 사람과도 대여섯 명씩 어깨를 겯고 둥글게 원을 그렸으며, 승리를 예감하는 5만명의 함성이 서울광장을 뒤흔들었다. 젊은이들 틈에서 응원하던 정희영(52)씨 부부는 “이 정도면, 16강 아니라 4강까지 갈 것 같다”며 “다음 경기에서도 한국 팀이 선전하기를 바란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청은 이날 거리응원에 나선 응원인파가 전국 289곳에서 100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13일 밝혔다. 서울에서는 서울광장에 5만명, 코엑스 앞 영동대로에 5만5천명 등 20만9천여명이 모였으며, 부산에는 13만3천여명의 응원 인파가 몰렸다.
거리응원이 펼쳐진 곳에서는 대기업들의 상업적인 마케팅 활동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며, 대신 붉은 셔츠와 응원도구, 간식거리를 파는 20대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코엑스 앞에선 경기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쓰레기를 스스로 치우고 가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거리응원이 펼쳐진 곳에서는 대기업들의 상업적인 마케팅 활동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며, 대신 붉은 셔츠와 응원도구, 간식거리를 파는 20대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코엑스 앞에선 경기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쓰레기를 스스로 치우고 가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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